당 내외적으로 많은 관심을 모았던 민주노동당 제5차 중앙위원회가 끝났다. 이번 중앙위가 관심의 초점이 되었던 이유는 내년에 있을 당지도부 선거와 관련해서 선거일정 및 투표제도와 당직공직 겸직금지 여부 등 핵심적인 틀을 결정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당 지도부 선거일정은 내년 1월 20일부터 1월 24일까지로 확정되었으며 겸직금지와 더불어 또 하나의 쟁점이었던 투표제도는 대표, 사무총장, 정책위의장, 노동농민할당을 제외한 일반최고위원의 경우 일반명부 및 여성명부별 각 1인1표제가 압도적인 표차로 결정되었다. 이는 지난 당지도부 선거 때처럼 1인7표를 행사하게 함으로써 이른바 ‘세팅선거’를 통해 당내 다수파의 독식을 가능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이 반영된 결과이다. 1인1표제가 채택됨으로써 최소한 일반최고위원의 경우 특정정파의 ‘세팅’이 불가능하게 되었으며, 소수파도 일정정도는 지도부에 선출될 수 있게 됨으로써 집단지도체제의 원리에 보다 충실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쟁점은 당직공직 겸직금지의 존속여부였다. 민주노동당은 지난 2004년 원내진출 이후, 의원단 대표를 제외하고는 국회의원이 당대표 등 선출직 당직을 맡지 못하도록 하는 겸직금지제도를 실시해왔다. 이는 당의 지도력이 원내로 집중되는 것을 막고 원내투쟁 중심의 의회주의 정당이 아니라 원외의 대중투쟁과 함께 성장하는 사회운동정당으로서 자신을 자리매김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진보정당이 있어야 할 곳은 의회의 연단이 아니라 광범위한 원외의 투쟁현장이며, 대중운동과 함께 할 때만이 당의 장기적인 성장과 변혁성이 담보될 수 있다는 인식을 담고 있는 당의 핵심제도 중 하나였다.

그런데, 운동정당보다는 대중정당적인 성격을 더 강조해온 당내 일부세력들은 이 제도가 당의 대중적 지도력을 분산시킨다는 이유로 겸직금지규정을 풀 것을 주장해왔고 최소한 당대표만이라도 겸직금지를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이번 중앙위에서는 겸직을 전면적으로 허용하자는 안이 제출되었으며, 당대표에 한해서 허용하자는 수정안 또한 현장에서 제출되었다. 그러나 치열한 토론과 표결 끝에 겸직전면허용안 및 대표허용안이 모두 부결됨으로써 겸직금지는 현행대로 유지되게 되었다.

이는 중앙위원들이 시행된지 채 2년도 되지 않은 제도를 다시 변경할 경우 당이 급속히 원내정당화되어 의회주의의 늪에 빠져들 것을 우려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아직까지는 대중운동을 중시하는 건강한 흐름이 당내에 강력하게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층부와는 달리 당의 핵심활동가들은 아직까지 기본적인 건강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당일 토론에서도 지적되었듯이, 제도가 곧바로 운동성을 담보해주는 것은 아니다. 사실 겸직금지제도는 의회주의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일 뿐이며, 형식적인 제도만 유지하고 실제 내용이 담보되지 못할 경우 이것만으로 원내정당화를 막지는 못한다. 솔직히 말해서, 그간 당 소속의원들의 각종 발언 및 행동이나 당의 제반 활동들을 보면 겸직만 금지되었을 뿐 의회 내에서의 활동이나 각종 협상에만 치중하고 사회경제적-변혁적 과제를 대중적으로 의제화하고 대중운동을 불러일으키는 것에는 거의 손을 놓은 실정이다. 즉, 내용을 따져보면 당은 이미 사실상 원내정당화되어 있는 것이다.

이제 당은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유지하는 것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과감하게 보다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의원단의 활동을 실질적으로 통제함으로써, 의회를 자기들끼리의 정치협상장이 아니라 각종 사회경제적-변혁적 과제를 대중적으로 선전하는 장소로 만들어야 한다. 원내활동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현장의 대중투쟁과 함께하고 나아가 광범위한 대중운동을 불러일으키는 과제에 의원들이 제대로 복무하게끔 만들 때만이, 당은 진정으로 의회주의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