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조운동 현실 드러낸 대우조선 참사

노동자의 무덤, 조선소
대우조선에서는 새해 벽두부터 중대재해가 잇따랐다. 한 달 사이 무려 네 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은 것이다. 지난 달 2일에 건조 중인 선박 안에서 일하던 하청업체 노동자 두 명이 누출된 아르곤가스에 질식사한 것이 시작이었다. 그리고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선박 승강용 타워가 추락해 한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고 두 명이 다쳤다(8일). 20일에는 도장작업을 하던 하청업체 노동자가 폭발사고로 사망했다.
참혹한 일이다. 그런데 분노가 치미는 것은 이러한 참사가 과거에도 이미 수차례나 있어왔다는 점이다. 고질적으로 발생하는 동종사고로 수많은 노동자들이 죽어나가자 회사는 작년에야 재발방지조치(아르곤 질식사고를 막기 위한 가스벨브 설치, 밀폐구역 환기구 설치)를 노조와 합의했었다. 그런데 합의사항을 1년이 다 되도록 이행하지 않다가, 이번에 참사가 터진 것이다. 겨우 푼돈 들어가는 가스벨브, 환기구 설치조차 하지 않아 사람이 죽었다. 가히 개죽음이고, 이는 자본의 인명경시가 빚어낸 명백한 살인이다.
잇따른 중대재해, 무엇이 문제인가?
조선업종에서 중대재해가 계속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기본적인 안전시설조차 갖추지 않은 채 돈벌이에만 몰두하는 자본이 문제이고, 이러한 자본에 대한 관리감독의 의무를 내팽개친 정부도 공범이다. 2006년부터 시행된 노사자율안전관리를 빌미로 노동부는 사실상 관리감독을 전혀 해오지 않고 있다. 노사자율안전관리의 실태는 조선업이 타 업종에 비해 재해율이 몇 배나 높다는 점에서 드러난다. 사실상 노동자 참여가 배제된, ‘회사’자율안전관리로 조선업에서는 매 달 수 명의 노동자가 죽는 등의 중대재해가 끊이지 않고 있다.
한편, 대우조선 참사의 경우 노조의 노동안전 활동에도 문제점이 발견된다. 가스벨브, 환기구 설치 등의 재발방지조치가 노조와 사측 사이에 이미 합의된 사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1년이 다 되도록 이행되지 않다가 참사가 터진 것이다. 노조는 노동자 안전권을 행사하는 데 그 역할을 다 하지 못했고, 성실 의무를 저버린 셈이다. 안전조치가 확보되지 않은 작업장의 경우, 산안법에도 명시되어 있는 작업중지권을 행사해 작업을 거부하는 능동적인 투쟁 등의 지속적인 요구와 활동으로 회사를 압박하여 현장을 바꿔냈어야 했다. 이번 참사는 노조의 노동자 안전권에 대한 인식과 실천 부족을 보여준다.
비정규직 연대, 이대로는 안 된다
또한, 이번 참사를 비롯해 그간의 중대재해의 피해자 다수가 비정규직이라는 사실에서도 현재 민주노조운동의 심각한 문제점을 암시해준다. 정규직이 회피하는 위험작업에 비정규직이 투입되고 있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왔다. 자본의 부당한 처사에 비정규직 노동자와 연대해 함께 투쟁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이러한 일들을 용인하는 노동운동은 산 노동운동이랄 수 없다. 대우조선 현장활동가가 전하는 말로는 참사 이후의 현장분위기가 더 이상 옛날 같지 않다고 한다. 억울한 죽음에 대한 공감도 분노도 없이, 형식적인 문제제기만 남았다고 한다. 이래서야 보수언론이 그토록 선동질 해대는 소위 ‘정규직 이기주의’를 스스로 입증하는 꼴이 아닌가! 제대로 된 추모제 하나 없이 침묵으로 일관하는 이기주의를 걷어차야 한다.
이러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뜻 있는 현장의 활동가들이 앞서서 행동해야 한다. 노조를 통하는 것이 어렵다면 기다리지 말고,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자율적인 정규직-비정규직 연대를 실천하는 것을 고민해야 한다. 노동자의 안전권, 건강권 쟁취를 위한 정규직, 비정규직의 공동의 투쟁위원회가 그 시작이 될 수도 있다. 우리의 현실은 행동을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