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레마에 빠진 한국자본주의

IMF사태 이후 7년여의 기간동안 한국의 자본가계급은 구조조정을 강화해왔다. 현재에도 구조조정은 상시적인 형태로 계속되고 있는데 이러한 자본가계급의 구조조정은 노동자계급의 저항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우 자본가계급의 의도대로 관철되어 왔다고 할 수있다.
구조조정의 성공으로 자본가계급은 87년체제를 와해시키고 노동자계급에 대한 주도권을 강화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리고 그 결과는 부가가치중에서 자본가계급이 차지하는 비율의 상승과 노동자계급이 차지하는 비율, 노동소득분배율의 감소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의 통계자료에 의하면 IMF사태 직전인 1996년도에 63.4%였던 노동소득분배율은 2001년 59.5%, 2002년 58.2%, 2003년 59.7%로 감소하였다. 노동소득분배율의 감소는 잉여가치율의 상승을 의미하는데(잉여가치율은 1-노동소득분배율을 노동소득분배율로 나누면 거칠게 나마 그 수치가 나온다. 연도별로 이를 계산하면 잉여가치율은 96년 57.7%에서 2001년 68.1%, 2002년 71.8%, 2003년 67.5%로 상승하였다) 결국, 자본가계급은 구조조정을 통해 자신의 몫을 늘리고 잉여가치율, 착취율을 높이는 데 성공하였다.
그런데 잉여가치율 제고의 성공은 새로운 문제를 가져왔다. 그것은 만성적인 소비부진이다. 노동소득은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전혀 다른 측면을 갖고 있다. 자본가들의 관점에서 볼 때 노동소득은 임금으로 표현되는 비용을 의미하고 자본가들은 이 비용을 최대한 줄이는 데에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그러나 임금은 노동자들의 입장에서는 수입으로서 자신과 가족의 생계에 충당된다. 때문에 노동소득의 감소는 노동자계급의 생활수준의 하락을 의미하고 이는 다시 노동자계급에 의한 소비의 감소를 의미한다. 최근에 발표된 경제분석 자료들은 현재 한국경제의 최대 난관요소인 소비의 부진이 노동소득분배율의 감소와 이에 따른 소비성향감소에 있음을 입증해주고 있다. 자본가계급은 노동자계급에 대한 집요한 공세를 통해 잉여가치율을 높이는 데 성공하였지만, 노동자계급의 소비능력을 현저히 약화시켜, 국내 판매시장을 얼어붙게 만든 것이다. 이 점에서 한국자본주의는 심각한 딜레마에 빠져있다.

착각에 빠져있는 자본가계급

한국경제는 그 동안 소비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수출의 호조로 총수요의 부진을 피해갈 수 있었다. 수출은 소비의 부진을 상쇄해왔다. 그러나 달러약세의 강화로 2005년에 들어와서는 수출조차 부진하고 수출관련수익성은 이 보다도 더욱 부진한 상태이다. 다른 동아시아나라와 비슷하게 수출주도형경제가 체질화된 한국경제에 있어 수출은 경제의 상태를 가장 잘 표현하는 부분이다. 이러한 한국경제에 미국의 달러약세공세는 매우 심각한 애로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리고 이 애로요인은 미국의 막대한 경상수지 누적으로 단기간에 해소될 그런 성격의 것이 아니다. 달러약세에 이어 미국에서 주택시장거품붕괴현상이 발생하면 미국의 소비역시 현재의 상태를 지속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는 수출에서의 새로운 활로가 당분간 기대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정반대로 수출이 더욱더 심각한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때문에 소비의 부진 문제가 경제침체에 미치는 효과가, 수출이 호조를 보이던 시기와 비교하여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조건에서 한국의 자본가계급이 비정규직 양산으로 대표되는 구조조정을 계속강행하는 것은 자살행위와 같은 것이다. 이는 이미 심각한 상태에 있는 소비부진을 더욱더 악화시킬 것이다.
그러나 자본가들은 이러한 자살행위에 몰두하고 있다. 자본가들은 현재의 경제침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노동시장유연화를 더욱 가속화해야 한다고 반복해서 주장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를 급속한 속도로 강행하고 있다. 자본가계급은 노동시장유연화가 가속화되고 투자규제가 완화되면 마치 한국경제가 지금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에 빠져있으며 이 환상을 퍼뜨리는 데에 열심이다. 그러나 이는 거의 치매에 가까운 환상이다.
이 환상에 가장 깊이 빠져있는 정치세력이 한나라당이다. 한나라당은 현실로 존재하지도 않는 ‘노무현정권의 분배위주’정책이 현재의 경제위기를 가져왔기 때문에 성장위주정책으로 선회해야 한다는 얼간이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 이것이 한나라당식의 민생파탄 해결책인데 이 정책이 채택되면 한국경제는 완전히 거덜나게 될 것이다.
환상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열린우리당도 예외가 아니다. 이들이 한나라당과 다른 점은 마치 자신들이 분배와 성장을 동시에 추구하는 듯이 위장하고 이 위장에 스스로가 도취되어 있다는 점뿐이다. 얼마전 이정우 전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장이 청와대 홈페이지에 [분배와 성장은 동행]이라는 글을 게재하였는데 이글에서 이정우는 분배와 성장이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는 ‘심오한’ 진리를 밝히면서 노무현정권이 양극화를 막기 위해 노력해왔고 앞으로 이를 더욱더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정우의 주장은 실제로 진행되고 있는 구체적인 현실에서 매우 기만적인 것이다. 노무현정권이 역대 정권중 가장 비정규직화에 적극적인 정권이고 노무현정권 아래에서 과거에 전례가 없는 속도로 비정규직화가 진행되었음은 이미 현실에서 철저히 입증된 사실이다. 또한 노무현정권이 노력했다는 재분배정책은 100을 빼앗고 1을 주는 ‘무늬뿐인’ 재분배정책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 1에 해당하는 ‘일을 통한 빈곤탈출’정책이라는 것조차 기초생활보장수급자수조차 줄여나가는 반동적인 정책에 불과하다.
현재 한국의 자본가계급과 자본가 정치세력은 자신의 주술에 스스로 현혹되어 자신이 서있는 발판을 불태우고 있다. 현실의 실제와는 완전히 다르게 노동자계급의 고임금과 경직된 노동시장 때문에 한국경제가 어려움에 처해있고 이를 돌파하기 위해 구조조정을 더욱더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반복하며 이를 행동에 옮기고 있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 마치 섶을 지고 불에 뛰어들어가는 자를 보는 느낌이다.

미래는 새롭게 정치적으로 자각해가는 노동자계급만이 열어갈 수 있다

현재처럼 자본가계급이 위기를 증폭시키는 정책을 강행하는 데는 1차적으로 자본가계급의 계급적 이해가 작용하고 있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한국의 노동자계급이 체제의 틀을 벗어나는 투쟁으로까지 나아가겠는가하는 자만에 자본가들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노동자계급의 투쟁을 충분히 자신들의 통제아래 둘 수있다는 자만과 믿음을 갖고 있다.
자본가들이 이와는 다르지만 한때 유사한 믿음을 갖은 적이 있다. 1987년 대투쟁이전에 한국의 자본가들은 노동조합조차 인정하지 않는 상태가 영원히 계속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군사독재정권의 곤봉과 고문실이 노동자계급의 초보적 권리조차 철저히 봉쇄할 수 있었던 시절의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들의 믿음은 한순간에 무너지고 수많은 자본가들이 얼마전까지 머슴처럼부리던 노동자들에게 머리를 조아려야 하는 상황이 전개되었다.
현재의 침체된 노동자계급의 투쟁역량이 자본가들의 자만의 한 근거가 되고 있음은 분명하다. 노동자계급이 여전히 조합주의와 실리주의의 좁은 틀에 갇혀 있는 것도 자본가들의 자만에 일조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억압의 강화에도 불구하고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인간다운 삶에 대한 갈구는 사라지지 않으며 역사적 계기마다 새롭게 분출되어왔음을 보여준다. 87년은 그 한 계기였을 뿐이다.
새로운 계기는 역설적으로 자본가계급이 그 시기를 앞당기고 있다.
지난 7년여의 기간동안 자본가계급은 인간다운 삶의 요구에, 끊임없는 인간의 파괴로 답변해왔다. 자본가들은 수많은 경고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이기적 이해를 위해 전체사회를 황폐화시키는 행동을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강행해왔다. 이들은 자신들의 이해를 위해 ‘최소한의 나눔’도 거부하며 ‘사회적 후진국’을 전체사회에 강요해왔다. 이들은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생활악화가 한국경제의 최대난관, 소비부진을 가져왔다는 자명한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으며 이를 한사코 악화시키려는 자세를 고집하고 있다. 자본가계급의 이러한 태도는 인간다운 삶에 대한 욕구와 갈망을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폭발적으로 증폭시키고 있다.
자본가계급이야말로 제2의 87년을 만들어내고 있는 최대의 ‘공로자’이다. 사회는 기본적으로 그 사회가 얼마만큼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고 인간사이에 얼마만큼 연대의 폭을 넓혀가는가에 의해 그 발전의 정도가 판별된다. 한국의 자본가들은 자신들의 이기적 이해를 위해 지난 기간동안 사회의 발전은 고사하고, 급속하게 그리고 체계적으로 사회를 퇴보시켜왔다.
이제 노동자계급이 자본가들에게 보답할 차례이다.
자본가계급의 이기적인 이해를 위해 노동자계급이 계속되는 고통을 감내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소수의 10%를 위해 90%의 다수의 국민이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고통의 시절을 계속해야 할 이유는 더더욱이 없다. 자본가계급에 의해 강요되는 ‘사회적 후진국’한국을 노동자계급이 자신의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할 이유는 없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87년의 인간선언이 한국사회의 한단계전진을 가져왔듯이 새롭게 자본에 대항하여 제2의 인간선언운동을 전개하자!
맹목적으로 과거의 성장논리에 매달리는 시대착오적인 자본에 맞서 ‘평등과 연대의 새세상’이 당장 가능하다는 것을 선언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자본과 싸우자!
자신들만 살겠다고 전체사회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가는 자본에 맞서 노동자, 민중의 삶의 위기를 돌파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