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별노조운동은 다수의 각성과정이다.

산별노조는 보편적인 조직에 대한 열망이 낳은 성과물이다. 미국에서 20년대 webbles라 불렸던 산별노조운동가들이 처음 등장했을 때, 당대 사회주의자들마저 이들의 성공가능성에 회의를 보냈다. 당시 AFL이라 불리던 직업별노조에 결합하고 이들을 사회주의 운동으로 끌어내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하던 사회주의자들 눈에는 조직화의 가능성이 전혀 없이 이리저리 옮겨다니는 비숙련공들을 하나의 조직으로 묶겠다는 왜블즈의 망상(?)은 극심한 조합주의로 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를 하나의 계급으로 묶는데 있어, 그리고 노동자들이 초보적인 계급의식으로 무장하기 위한 가장 유력한 수단은 노동조합이었다는 사실을 꿰뚫은 왜블즈의 통찰력은 역사적으로 입증되었다. 산별노조운동이 실패하고 기업별노조에 주저앉아 결국은 황색노조로 전락한 일본노동운동의 경험은 산별노조운동의 반면교사로서도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할 것이다. 다수의 운동으로서 집단적 통찰로 전진하는 것은 프롤레타리아운동의 본질이다. 따라서 산별노조운동은 무조건 옹호되어야 한다.


전투성과 민주성의 저하로 나타난 산별교섭

보건의료노조가 산별교섭이 깨지고 파업투쟁을 진행하던 중에 직권중재가 들어오고, 이에 대해서 지부장단 회의라는 형식을 갖추어 파업종료 선언을 하는 과정은 산별노조가 기업별노조보다 더 강력한 투쟁력을 갖고 교섭력을 극대화할거라는 기대를 접게 하였다. 산별노조는 단위노조보다 더 높은 수준의 투쟁성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소위 “국가의 공정성”에 의존해 자주적 입장을 견지할 수 있는가? 이것은 이번 투쟁이 산별조직화 운동에 던져준 첫 번째 고민이 되었다.

기업별노조 체계에서 연대파업을 할 경우, 단위노조 위원장들의 불만은 총연맹은 파업선언을 하면 그만이지만 실제 구속, 수배를 당하는 것은 단위조합이라는 것이었다. 단순논리로 생각하면 산별교섭을 할 경우는 연맹위원장 한명이 감옥가면 되니까 소위 불법파업에 대한 부담이 훨씬 덜어질 것이라는 것이 소박한 형태의 산별노조에 대한 필요성이다. 대한민국처럼 파업권이 이러저러한 경로로 원천봉쇄 되어 있는 나라에서 파업을 제대로 하고도 위원장이 무사한 경우는 지하철역에서 철로에 떨어져 무사할 확률과 비슷하다. 따라서 한번도 합법파업을 해본 적이 없는 서울지하철 노조에서 처음으로 피해자 보상규정이라는 창조적 발상으로 파업투쟁의 희생을 조직적으로 감내하려는 의지가 모아진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파업종료를 선언한 후에 직권중재 철폐투쟁을 결의하고 있지만 “희생과 고통없는 승리란 없다”는 자명한 진리를 외면한 추임새는 대중에게 진정성을 보여줄 수 없다.

이번 투쟁과정에서 던져준 두 번째 고민은 산별노조에서 의사결정과정과 조직적 책임소재의 문제다. 총파업의 결정은 대중이 한다. 따라서 파업찬반투표는 조합원총회라는 형식을 비는 것이 상식이다. 그리고 이러한 총파업의 결정이 뚜렷한 성과없이 지도부에 의해 철회되는 경우, 스스로 물러나거나 신임투표라는 방식을 빌어 지도부의 책임소재를 분명히 무는 것이 민주노조운동에서 관례처럼 굳어진 전통이다. 비록 한국의 민주노조운동이 조직형식으로는 후진적인 상태에 머물렀지만 전투성이 다른 나라의 노동운동을 압도했던 이유가 바로 조합민주주의가 상당히 높은 수준에서 유지된 데 있다. 한국노동운동의 모순은 단위노조에서 유지되는 민주주의가 지역, 연맹으로 올라올수록 저하된다는 것이었고, 이 모순은 산별노조에서 더욱 심화되는 양상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 솔직한 평가다. 작년 서울대병원지부의 징계 사태가 노동운동의 주체에게 상당한 충격을 준 것도 조합내 민주주의의 위기가 현실화되었다는 실감을 했기 때문이었다.


대중의 정치의식과 지도력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전국의 활동가들은 지금 왜 보건의료노조 지도부가 사태의 책임을 지지 않고, 민주노총이 보건의료노조의 직권중재 철회주장에 변죽을 울리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너머 분로를 갖고 있다. 당장 드는 생각은 산별노조건설과정에서 대중의 정치의식이 전진은커녕 대리주의, 실리주의로 후퇴하고 있다는 것이다. 산별노조운동은 운동의 정체가 아니라 발전으로 제기되었음에도 현실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

산별노조운동이 운동의 보편성(노동자전체를 안고 세상을 책임진다는 의미)을 확대하고 조합운동의 전투성 강화로 나가기 위해서는 대중의 정치의식이 성장하고 그에 발맞추어 높은 수준의 지도력을 갖추어야 한다. 노동조합내에서 사회주의 노동운동이 더욱 강화되고, 사회주의 운동의 당장의 실천은 대중의 정치의식을 끌어 올릴 수 있는 대중실천을 조직하는 것, 그리고 이를 주도적으로 전개하면서 성장하는 새로운 지도력을 창출해 나가는 것이다. 산별노조운동의 초입에 더욱 경계하고, 스스로의 실천을 강화하려는 사회주의자들의 분발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