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5년 8개월 걸쳐 해외에서 도피생활을 하던 김우중씨가 귀국하여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다. 김우중의 귀국이 있자마자 그에 대한 사면론과 함께 세계경영의 공적을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지금 김우중은 죄인으로서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지만 그는 한 때 이 땅의 노동자들에게는 우상과 같은 존재로 비춰졌다. 물론 이는 자본의 나팔수 역할을 하는 언론의 띄워주기이며, 자본의 철저한 이데올로기 공세이기도 하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자서전적인 그의 책은 베스트셀러로 시중에서 불티나게 팔리기도 했다. 김우중은 그의 책과 함께 모든 셀러리맨(노동자)의 표상이 되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한 이후 20대 후반에 한성실업이라는 무역회사에 입사하여 7년여간의 직장생활을 하다가 퇴직한 이후에 500만원이라는 소자본으로 창업을 한다. 창업 후 3년만에 당시 꽤 큰 수출기업이었던 대우실업의 사장이 된다. 그리고 대우재벌이 해체되기 이전에 자산규모로 재벌순위 2위라는 신화와 같은 성공을 거둔다.

당시 이러한 대우재벌의 성장에 대한 신화는 현재 결코 신화가 아니라는 사실이 자명해졌다. 대우라는 재벌이 성장했다가 해체되기까지의 그 이면을 들여다 보면 모든 한국재벌의 공통점인 정경유착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한국의 자본가들은 일제 식민지시대에는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하며, 미국의 군정청이 지배하던 해방 직후의 시기에는 미군에 협조하는 대가로 일본군이 남기고 간 적군의 재산인 적산(敵産)을 불하받았으며, 이승만정권 시절에는 미국의 원조물자와 차관을 이용하였고, 군사정권 시절에는 개발이권과 정치자금이라는 커넥션을 통해 부를 축적하였다.

한국재벌의 후발 주자였던 대우도 예외는 아니다. 대우는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에 급부상하게 된다. 이는 잘 알려진 바대로 김우중의 부친이 박정희대통령의 스승이었다는 인연이 크게 작용을 했다.
대우재벌은 박정희 군사정권이 노동자와 민중의 고혈을 쥐어짜던 개발독재시대의 최대 수혜자이다. 무소불위의 독재자가 부친의 제자였던 인연으로 인해 김우중의 대우라는 재벌은 급속하게 성장하게 된다. 그 당시 독재정권은 마음을 먹기에 따라서 기업 하나를 하루 아침에 문을 닫게 할 수도 있었으며, 정수장학회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정권의 힘을 빌어 개인재산을 탈취하기도 했다. 독재정권은 재벌에게 개발이권을 주며, 재벌은 정권에게 정치자금을 챙겨주는 정경유착을 통해 재벌이 성장했다는 점은 한국재벌의 공통적인 자본축적의 과정이다. 또한 이러한 정경유착을 통해 서민은 담보가 없는 상태에서는 금융기관에서 돈 한 푼 빌리기가 힘든데도 재벌은 자신의 주머니에 있는 돈을 사용하듯이 은행의 돈을 대출받아 기업을 확장시키고 부동산에 투자하여 자본을 축적하였다.

김우중의 사면을 은근히 주장하면서 대우재벌의 공적으로 내세우는 “세계경영”도 박정희식의 차입경제의 또 다른 모습일 뿐이다. 모든 은행의 돈은 대우재벌의 돈이라도 되는 듯 금융기관의 자금을 권력의 힘을 빌어 끌어다 사용하다가 금융기관이 외환위기에 몰리자 신화처럼 보이던 대우재벌도 망하게 된다. 김대중정권은 대우재벌에 30조원이라는 공적자금을 투입했으며, 지금까지 7조원 정도를 회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3조원이라는 거대한 자금은 누가 꿀컥 삼킨 것일까?
국가권력이라는 공권력은 23조원에 대해서 어떻게 조사하고 되찾을 것일까?

SK재벌의 분식회계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검찰과 사법부는 이번에도 결국은 흐지부지 시간을 끌면서 자본가와 정치인들에 제대로 된 책임을 지우지 않고 어물쩡하게 넘어갈 것이다. 대우재벌의 문제는 이미 김우중의 도피기간으로 인해 6년여의 세월이 흘러가고 있으며, 검찰과 사법부는 앞으로도 많은 시간을 허비할 것이다. 벌써 자본의 앞잡이들은 김우중의 사면을 덜먹이고 있다. 자본과 공생관계를 갖는 정권도 결코 김우중을 벌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대우사태의 해결과정을 지켜보면서 다시 한번 마음 속에 되새기는 말은 “노동자계급의 국가권력 쟁취”이다.

이제 “세계는 넓고 할 일이 많다”던 김우중은 악덕 자본가들을 위해 “세계는 넓고 숨을 곳도 많다“라는 책을 펴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