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아픈데 소화제 주는 격인 민간의보 활성화 논의

건강보험과 관련해 일각에서는 최근 6개월 동안 건강보험 재정적자가 6,655억 원에 달한다며, 그 원인으로 정부가 순차적으로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한 것을 문제 삼는다. 재경부를 비롯해 보험개발원과 금융개발원, 금융감독위원회 등 경제부처와 병원/보험자본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건강보험료를 매해 3-6% 이상 인상해야 하는데 이것은 국민들의 저항 때문에 힘드니, 민간의료보험을 더욱 활성화하여 늘어나는 의료서비스 수요에 대한 부담을 민간영역으로 넘기자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것은 문제점과 그 해결책을 모두 왜곡하는 이야기다. 건강보험 적자보다 더 문제인 것은 여전히 건강보험으로 보장되는 부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작년 9월부터 중증질환 치료에 대한 본인부담률이 20%에서 10%로 감면되었고, 올 들어 6세미만 입원아동 본인부담금 면제, 일부질환 CT촬영 비용의 건강보험지원, 입원환자 식대 건강보험지원 등이 실시되며 일부 개선되었다. 하지만 중증질환 진료에 대한 환자부담 경감은 겨우 30일만 적용될 뿐이고, 고가 의료서비스는 건강보험 적자를 우려해 일부만 보조해 줄 뿐이다. 경제수준이 비슷한 이웃 대만에서조차 건강보험 보장성(총 진료비 중 건강보험에서 부담하는 진료비의 비율)이 80%에 이르는데, 한국은 보장성이 60% 초반에 그치고 있다. 아픈 사람이 돈 걱정 없이 치료받아야 하는 당연한 권리를 보장해주기 위해서는, 별도로 민간보험에 가입할 여력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건강보험이 보장해주는 범위를 모든 질병으로 넓히는 것이 당연한 순리다. 이를 위해서는 건강보험 적자를 메우는 것을 해소하기 위해 소득 누진을 적용해 조세를 추가로 걷거나 국가재정을 집중 투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민간의보 활성화는 다수 노동자의 건강 악화로 직결된다

민간의보 도입으로 건강보험 재정의 적자 누적을 해결하고자 했던 대표적인 사례로 칠레가 있다. 1981년 피노체트 정부는 신자유주의 개혁의 일환으로 기존 공공 건강보험과는 별도로 중간계층과 상위계층 임금소득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민간의료보험제도를 만들었다. 민간의보를 각 지역별로 분산시켜 가입자에게 공공 건강보험에 비해 다양한 급여를 제공하며 민간 병원 및 약국과 계약을 맺어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식의 재편이 이루어졌다. 민간의료보험료는 건강보험에 비해 4배 이상이었고 이것은 중간수준의 임금소득자들에게조차 버거운 액수였다. 10년이 지난 후에는 칠레 인구의 16%만이 민간의보에 가입해 그나마 나은 의료서비스를 제공받고 있었고, 젊고 건강해 납부하는 보험료에 비해 급여를 덜 받아 보험재정에 도움이 되는 사람들이 민간의보로 몰리면서 의료수요가 많은 노인들과 빈곤층으로만 구성된 건강보험은 국민건강을 보호하는 기능을 거의 상실했다. 지금 한국 상황에서 민간의보 활성화는 고소득자들이 민간의보로 빠져나가는 결과를 초래해 건강보험의 재정악화를 더욱 부추기는 결과만 낳을 것이다.

의료보험과 의료 및 제약자본에 대한 노동자 통제를 강화하고, 건강보험 보장성을 100%로 높여가자

공공 건강보험이 무조건 비효율적이라는 사람들의 인식은 사실과 다르다. 건강보험 재정에서 새어나가는 부분은 주로 병원자본과 제약자본의 이익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가령 대다수 병원은 이익을 취하고자 필요 이상으로 약을 처방한다. 그리고 제약회사들은 리베이트를 지급해 병원과 약국이 약효는 같더라도 더 비싼 약을 사용하도록 이끈다. 그 결과 2001년에는 건강보험 재정 지출의 15%였던 약값 지원 부분이 2005년에는 30%로 두 배 증가했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낭비분만 줄여도 건강보험 재정 적자가 문제라는 비판은 무력해진다. (가령, 2004년 기준 건강보험료 수입 약 19조 원 중 15%는 2조 8500억 원이다.) 이외에도 고가장비, 특진료 지출 등으로 건강보험 재정에서 비효율적으로 새어나가는 부분들을 철저히 감시함으로써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높일 수 있다. 이를 위해 건강보험공단 노동자들과 건강보험 가입자들로 구성된 감시기구를 만들고, 진료비와 관련된 병원, 제약회사, 보험회사 및 보험공단의 모든 회계장부 공개를 의무로 만들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서는 건강보험에 가입하는 것만으로 모든 질병을 무료로 치료받을 수 있도록 건강보험 보장성을 100%로 늘리는 것을 추진하며 이를 위한 재정을 국가가 확보하도록 요구하는 투쟁을 벌일 필요가 있다. 한 사회 구성원의 건강은 기본적으로 그 사회가 책임져줘야 한다는 기본적인 사회 운영 원리를 관철시켜 나감으로써 야만적인 한국사회를 인간다운 연대와 우애의 정이 살아 있는 사회로 변화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 [민간의보 활성화 저지! 기획기사(1)] 민간의보 도입 = 사회보험 노동자 절반은 구조조정 대상!
→ [민간의보 활성화 저지! 기획기사(3)] 건강한 집행부만이 조합원을 지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