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전체의 건강을 책임지는 국민건강보험(이하 건강보험)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고 있다. 정부는 ‘건강보험 급여율이 낮아 국민에 대한 의료보장이 충분하지 못하므로, 민간의료보험의 보충적 역할이 필요하다.’며 민간의료보험 활성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미 작년 8월부터 민간 생명보험사에게 건강보험을 대체할 수 있는 실손형 의료보험 도입이 허용됐고, 이 틈을 타 DKV라는 독일계 민간의료보험사가 한국시장 진출을 선언하기도 했다. 국내외 보험회사들은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민간의보 시장규모를 점차 키워 국민들이 민간보험과 건강보험 사이에 하나를 선택해서 가입하도록 만든 후, 궁극적으로는 건강보험을 없애고 미국처럼 전적으로 민간보험에 의존하는 의료체계를 만들고자 한다. 여기에 병원자본도 가세해서, 모든 병원이 건강보험 가입자에게 의료비를 보장해줘야 하는 현 제도를 없애는 한편, 부자들에게 고급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별도의 영리병원을 허용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이것이 추진되면 돈 많은 소수의 사람들만이 질 좋은 의료서비스를 제공받고, 나머지 사람들의 의료보장수준이 하락할 것이다.
민간의보가 활성화되어 건강보험을 대체하고 건강보험 강제지정제도가 폐지될 경우,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역할이 크게 줄어들어 대규모 인원이 감축될 것은 뻔하다. 사회보험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이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작년 1월 26일 건강보험공단의 전국지사 숫자(227개)가 유사한 업무를 하는 국민연금관리공단(80개)에 비해 너무 많다고 지적했던 감사원은, 올 4월 3일부터 건강보험공단을 비롯한 95개 기관에 대한 경영혁신 추진실태 감사를 시작하며 ‘업무효율성이 낮은 기관은 지사 숫자를 줄이거나, 기관 자체의 폐지를 권고하는 등 구조조정을 실시하겠다.’고 공언했다.

민간의보 활성화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이 공단과 협상만 잘 하면 일자리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민간의보 활성화는 현재 정부가 실시하고 있는 의료정책의 핵심기조다. 노무현은 신년사에서 ‘의료서비스를 산업화하여 부가가치를 창출해야 하고, 이를 위해 과감하게 개방하고 서로 경쟁하게 해야 한다.’면서 의료서비스에서 민간부분(민간보험, 영리병원)을 활성화시켜 산업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기조를 명확히 했다.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 역시 민간의보 도입이 국민들의 의료비 지출을 크게 늘릴 것이라는 민주노동당의 지적을 인정하면서도, 민간의보 활성화는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정부의 ‘민간의보 활성화와 그에 따른 건강보험 축소’라는 핵심기조에 따라 추진되는 건강보험공단 구조조정은 더 이상 공단과 타협을 잘 해서 그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건강보험을 약화시키겠다는 기조를 그대로 둔 채, 공단과 타협해서 고용안정을 얻으려 하는 시도는 오히려 고용불안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대표적인 예가 얼마 전 콜센터의 비정규직 도입이다. 공단은 조합에게는 콜센터에 비정규직을 채용하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조합은 그를 믿고 공단의 안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공단은 실제로는 3개의 외주업체를 통해 비정규직인 파견직으로 콜센터 직원을 고용했다. 게다가 콜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낮은 기본급을 받고, 기획조정실→정규직 직원→콜센터 직원으로 이어지는 3중의 감시체계의 감시 속에서 일한 성과에 따라 성과급을 받는다. 공단은 이런 식으로 콜센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강도를 높여 다른 직원들의 업무량을 줄여 인원을 감축시킬 명분을 쌓고 있다.

건강보험은 당연한 권리인 건강하게 살 권리를 모든 국민들에게 보장해 주기 위한 최후의 보루다. 정부와 자본은 건강보험 급여율이 낮다고 비판하지만, 가입자에게 100원을 걷어 60원만 가입자에게 지출한 민간의료보험보다는, 100원을 걷어 162원을 진료비로 지출(정부와 기업의 부담 포함)한 건강보험이 훨씬 더 국민들의 기본적인 건강을 위해 효과적이다. 건강보험을 공격해 이윤을 얻고자하는 보험자본과 병원자본, 의료산업화의 장밋빛 미래를 그리며 부화뇌동하고 있는 정부에 맞서, 건강보험의 공공성을 수호할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은 사회보험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한 노동자 계급 뿐이다. 결국 사회보험 노동자들의 고용 안정 역시 건강보험의 공공성을 더욱 확대해 나감으로써 쟁취할 수 있다. 타협을 통해 자기 일자리 지키기에만 급급하다가 자본과 정부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의보 활성화를 막고 건강보험의 공공성을 확대해 나가는 적극적인 투쟁을 벌여 나가자.


→ [민간의보 활성화 저지! 기획기사(2)] 의료보험과 의료자본에 대한 민주적인 통제를 강화하자!
→ [민간의보 활성화 저지! 기획기사(3)] 건강한 집행부만이 조합원을 지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