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고기 수입재개, 자동차 배기가스 기준완화, 의약품 약가 산정 문제 해결 그리고 스크린쿼터 축소 요구’ 한미 FTA 체결 내용이 아니라 협상을 시작하기 위해 미국이 요구한 선결과제들이다. 남은 임기 중 최우선 국정과제가 한미 FTA 체결이라고 공언하고 있는 노무현에게 광우병과 약가 상승으로 인한 국민 건강위협, 환경문제 등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닌 모양이다. 일사천리로 미국의 선결과제 요구들을 수용하고 마침내 FTA 협상에 돌입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선결과제를 수용하면서 FTA 체결에 목을 매고 있는 노무현 정권에게 미국은 벌써 협상에 우위를 점한 듯하다. 미국은 예비협상이 시작되자마자 ‘한국에 진출한 미국기업과 투자가들에게 미국법을 적용하는 치외법권’을 요구하는 등 경제, 사회 전반에 대한 공세를 예고하고 있다.


국가별로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는 FTA(자유무역협정)는 단지 무역 과정에서의 품목, 관세 문제 등 ‘자유무역’만을 상정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 전반의 운영원리라는 차원에서 신자유주의적 요소들을 국제적 협정을 통해 쐐기를 박겠다는 것이다. 때문에 FTA 체결은 머지않아 노동자계급 삶에 직접적인 영향으로 드러날 것이다.

초국적기업이 기업을 인수할 경우 ‘고용승계’ 의무를 가지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은 물론 해고조건 완화, 비정규직 사용 확대, 노조 문제 등 전방위적인 노동자계급 압박을 요구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심각한 고용 불안을 겪어야 하고 이를 빌미로 노동조건의 후퇴시키고 조직된 노동자를 해체시키려는 의도를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다. 특히 미국과의 FTA에서는 상품교역뿐만 아니라 금융, 의료, 교육, 공공서비스 등 사회전반에 대한 완전개방과 사유화 확대가 예견되고 있다. 지금도 공공성이 무너지고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는 공공부문들이 FTA를 빌미로 본격적인 돈벌이에 나설 것이고 이는 노동자계급의 부담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다.

물론 이러한 문제는 지금의 한미 FTA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지만, 남한 자본가계급이 가지는 미국에 대한 정치경제적 관계를 고려할 때 막대한 파장을 몰고 올 것이다.


그동안 한미 FTA 문제는 작년 말 농민들의 처절한 투쟁과 스크린쿼터 축소 문제로 영화배우들의 반대시위로 가시화된 수준이다. 그러나 한미 FTA 체결이 가져 올 막대한 파급력을 생각한다면, 노동자계급의 투쟁이 아직은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상층단위에서만 보이는 분주함과 산업공동화의 위협이 존재하는 현장 정도에서만 제한적으로 투쟁이 준비되고 있는 수준이다.

자유무역협정은 세계자본주의 체제에서 국가간 자유무역의 확대로 위기를 벗어나고자 하는 자본의 활로 찾기이자, 분업화의 심화, 고착화 과정으로 자본주의의 필연이다. 따라서 단지 현장에서 생존권 투쟁 강화나 민족적 관점으로 투쟁의 관점을 협소화시켜서는 안된다. 이는 자본가들의 ‘국익’논리조차도 제대로 맞서지 못할 것이다. FTA가 가지는 포괄성만큼이나 노동자계급의 투쟁도 자본주의라는 본질적 문제에서부터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