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파이 파산 이후 확인되는 미국의 기업-노조 합의구조

미국의 자동차 부품회사인 “델파이”가 10월 9일 연방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델파이는 98년 GM에서 분사한 세계 최대규모의 부품회사로 전세계적으로 18만 5천명을 고용하고 있는 초국적 거대 기업이었다.

델파이가 파산신청을 하면서 GM도 휘청이고, 미국 경제에 적신호가 오고 있다는 말들이 많아지고 있다. 실제로 GM은 정크본드 수준으로 주가가 하락한 상황이고, 올해 3/4분기에는 16억달러라는 사상 최대의 적자를 내고 있다. 게다가 델파이 파산이 GM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게 되는 이유는, 98년 분사시 GM이 120억달러에 이르는 델파이 노동자들의 연금과 의료비를 2007년까지 대신 지불해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기업이 복지를 책임지는 미국의 복지구조에서 산별노조는 기업과 조직노동자들의 복지수준을 결정하고, 연금/의료비 등의 기금을 분배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미국의 산별노조는 기업-노조 합의구조 속에서 자본주의를 유지, 재생산하는 조직으로 기능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띄고 있다.

이것은 델파이의 파산 이후, GM과 UAW(United Auto Workers, 전미자동차노조)가 맺은 타협으로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UAW는 20일(목)에 GM과 타결한 합의안을 발표하였다. 합의안의 내용 우선 조합 소속의 퇴직노동자들에 대한 보건 편의를 축소하는 것이다. 이제 GM의 퇴직자들은 X-레이와 같은 서비스에 대한 공제액, 월 보험료, 공동지불금을 지불해야만 한다. 지금까지는 의료서비스에 대해 단지 처방전에 대한 5달러의 공동지불금이 전부였다. 새로운 동의안에 의하면, 공동지불금은 10～15달러로 상승한다. 또한 GM의 현역 노동자에 대해서는, 2006년부터 생계비 조정과 기계획된 임금 인상을 연기하고 시간당 1달러를 포기하기로 하였다. 여기서 나오는 돈으로 퇴직자의 의료비용을 충당한다고 한다. 이러한 합의를 통해 GM은 퇴직자들의 의료 편의를 위해 향후 지불비용을 770억달러에서 150억달러로 감소시켰다. 그리고 이후 GM에서는 노동자를 정리해고 하고 공장들을 폐쇄하는 다운사이징을 계획하고 있다. 이제 GM과의 합의안은 미국 자동차산업의 기준협약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

파산한 당사자인 델파이는 보다 더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시도하고 있다고 한다. 델파이는 대략 12000명의 미국내 퇴직자에 대한 건강, 생명 보험을 포기하고, 35000명에 달하는 노동자들의 임금을 50% 이하인 시간당 10달러로 삭감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시간당 10달러의 임금은 1914년 포드자동차의 노동자들이 받던 평균 임금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한다. 델파이의 구조조정안은 파산이후 법원의 명령으로 강제되고 있는 상황이니, 미국 노동자계급의 상태가 심각하게 악화될 것이 분명해지고 있다.


자본의 위기극복책은 저임금=노동자의 생존권 공격일뿐

GM의 위기로 대두되고 있는 미국 자동차 산업의 위기는 과잉생산구조가 되어버린 세계 자동차 산업의 현실이 바탕에 깔려있는 것이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 자동차 메이저들은 인수/합병을 추진하거나, 새로운 거대시장인 중국을 공략하거나, 고급화전략을 추진하는 방식 등 다양한 방식을 모색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들로는 자본의 위기를 극복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델파이의 경우도 중국 현지공장에서는 높은 수익을 내고 있지만, 미국내 수익성 악화로 결국 파산신청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포화상태의 세계자동차 시장에서도 흔들림없이 높은 수익을 구가하고 있는 회사도 있다. 렉서스로 대표되는 “도요타”가 바로 이런 사례일 것이다. 현재 도요타는 연간 수익을 10조원을 넘고 있으며, GM이 매각한 자회사까지 인수하면서 사업규모를 늘리고 있다. 업계 2위인 도요타가 1위로 등극하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라고 한다.

그렇다면 도요타는 불황 속에서도 어떻게 자동차 메이저인 미국의 자동차 3사를 제치고 높은 수익성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이 요인에는 “렉서스”로 대변되는 시장전략이나 선도적인 하이브리드 차량의 개발같은 선도적 기술개발 등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도요타의 승승장구 뒤에는 저임금, 저비용 구조가 도사리고 있다. 파업을 언제 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한 노동조합은 올해도 앞장서서 임금동결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도요타가 실행했던 “JIT(Just In Time)” 시스템, "TQC(Total Quality Control, 종합적 품질관리)" 체계 등은 모든 부분에서 낭비 “제로”를 추구하면서 노동유연화와 저임금 구조를 그 핵심에 두고 있었다.

GM과 미국의 자동차 산업이 택한 길도 저임금을 통해 비용을 감소시키는 전략으로 가고자 하는 것이다. 따라서 기업부담의 복지구조 속에서 기업이 담당하고 있던 퇴직자의 연금, 현역노동자의 임금, 양측 모두에 제공된 의료 편의, 일시 실직자에 대한 실업 수당 제공 등 일체의 것들을 모두 “legacy costs”, 즉 과거유산에서 오는 비용이라고 부르며 축소! 폐지! 삭감!을 외치고 있다.


국가경쟁력/기업경쟁력 이데올로기에 갇혀버린 거대노조

이 속에서 노동조합은 자본의 공세에 반대하거나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오히려 자본의 괜찮은 협상대상이 되어서, 자본이 추구하는 조치들에 손을 들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UAW에서는, 노동자들의 상태를 심각하게 악화시키는 합의안이 조합간부들에 의해 박수 짝짝짝 치고 통과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자본이 취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공격에 무저항적으로 투항하는 모습은 미국의 노동운동이 처한 상황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노동조합은 이미 관료화되어 있고, 자본의 도구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노조의 반대파도 노조상층부, 관료들이 가지고 있는 것과 비슷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 우선 UAW 내부의 혁신 집단의 활동을 들여다보자. 반대파들은 “델파이 현장노동자”들의 모임을 제안해서 11월 7일 미시간주 컴스톡에서 첫 만남을 가졌다. 이 모음의 중심인물은 그렉 숏웰이라고 하는데 델파이의 쿠퍼스타운 공장에 있는 UAW 2151지부 집행위원으로, UAW내 “신지도력(New direction)” 그룹의 멤버이면서 Labor Notes와 International Socialist Organization(ISO)의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 혁신 모임은 외부단체가 참여하면 현장노동자들이 자유롭게 토론할 수 없게 된다며, 외부의 참여를 막으며, “정치적인 것(!)”을 배제해야 한다고 하고 있다.

UAW든 AFL-CIO든, 관료집단과 하부의 반대파 모두에게, 자본주의의 근본적 한계를 극복하는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다. 이들은 미국산업이 회생해야 노동자가 산다, 혹은 회사가 살아야 노동자가 산다는 사고방식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AFL-CIO가 보여주었던 국수주의 애국주의적 색채와, 중요한 자본의 위기 때마다 아낌없이 싸인해주는 모습에서 계속 드러난다. UAW 위원장 론 게틀핑거와 GM담당 교섭책임자 리차드 쇼메이커는 “임시 동의안이, GM이 다가올 수십년동안 높은 임금과 편의를 지속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경쟁력있고 재정이 건전한 회사라는 것을 보장해주는, 필수불가결한 단계라고 믿는다”고 인터뷰하기도 하였다.

반대파도 숏웰의 경우에서처럼 노조를 조합적 틀안에 가두면서, 간에 기별도 안가는 “준법투쟁(work-to-rule)"을 제안하고, “활동성을 상실한 물체(즉 UAW)를 움직이게 하는 유일한 방법은 멈추지 않는 강제(즉 현장의 전투성)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현장의 전투성도 기업경쟁력, 국가경쟁력으로 드러나는 자본의 논리를 넘어서는 내용에 기반하지 않으면 결국 주저앉고 말 운명이다.


노동자들의 선택 : 코포라티즘 VS 사회주의

노동조합은 자본주의의 임금/이윤제도를 극복하는 전망과 결합하지 않는다면, 결국 끊임없이 체제의 논리에 의해 파괴되고 굴복할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의 공황기에는 이러한 측면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게 된다. 호황기에는 투쟁과 교섭을 통해 노동자들의 임금과 복지조건을 어느 정도 확보할 수 있었지만, 공황기에는 노동자들의 소소한 요구조차 자본주의체제가 받아들이기 힘들게 된다.

그렇다면 자본주의를 극복하겠다는 정치적 전망이 부재한 노동운동에 가능한 것은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결국 사그라들고 마는 기층의 산발적 투쟁과 자본에게 투항하게 되는 노동운동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합의주의, 타협주의는 자본주의의 임금/이윤제도를 허용하는 한 계속 제기될 수밖에 없는 문제인 것이다. 결국 미국 노동운동의 모습은 사회주의 정치를 전면화/대중화 하지 못하면, 노동운동은 타협의 길로 가고 노동자들을 배신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