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무중 속으로 빠진 독일 총선

최근 9월 18일에는 독일 총선이 있었다. 사회주의 정치신문에서 남의 나라 총선이야기까지 왈가왈부하려고 하는 것은 이번 독일 총선이 흥미로운 결과를 내놓았기 때문이다.
우선 결과를 살펴놓고 보면 기민-기사연합이 전체 투표수의 35.2%를 득표해 225석을 차지했고, 집권여당인 사민당은 34.2%의 득표로 222석을 차지했다. 독일의 대표적 양당의 득표는 아슬아슬하게 비슷한 상태로 야당인 기민-기사연합이 3석차이로 앞서고 있다. 그렇지만 이것도 10월 2일로 연기된 드레스덴 지역의 선거가 종료되면 양당 모두 동수의 의석을 확보하는 진풍경이 일어날 가능성도 점쳐진다. 원내에서 50%이상을 확보해야 안정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는 의회정치의 구조상 다양한 합종연횡이 논의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미 기민, 사민 양당 안팎으로 연정구상이 여러 가지로 나오고 있다. 그러나 자메이카연정이니, 신호등 연정이니 말은 많지만, 8.1%의 지지율을 획득한 녹색당이 환경정책에서 사민당과 갈등관계에 있고, 사민당에서 탈당한 라퐁텐이 이끄는 좌파당(8.7%)은 사민당과 경쟁관계에 있기 때문에 연정에 불참하겠다고 천명한 상태여서 칼자루를 쥐고 있는 사민당으로서는 선택의 폭이 사실은 많지 않다. 결국 추진되고 있는 것이 기민-기사연합과의 대연정인데, 이 방안이 현재 급물살을 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양당사이에서 수상자리를 가지고 자리싸움을 하고 있지만 말이다.


조기총선의 배경 : 경제위기와 실업으로 고통받는 독일민중

그러나 흡사 노무현이 바라던 대연정이 독일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듯한 묘한 상황에서, 정작 우리가 바라볼 것은 자본가 정당 사이의 연애놀음은 아니다. 오히려 주목해볼 것은 임기가 1년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조기총선”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양당의 지지율 하락과 좌파당의 약진이라는 총선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총선의 가장 큰 맥락을 말하자면, 정체상태에 놓인 경제성장과 고실업의 고통이라고 할 수 있다. 슈뢰더 총리 집권기간 경제는 0%대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으며, 실업률은 2000년 9.6%에서 2004년 10.2%로 증가했다. 구동독지역으로 가면 실업률은 더욱 심각해지는데 구서독지역보다 실업률이 2배에 달하며, 50대 이상 노년층 실업자의 경우 구서독지역은 15%, 구동독지역은 25%이다. 게다가 1년이상 장기 실업자가 전체실업자의 1/3이상이라니 독일의 실업문제가 심각한 수준을 이미 넘어서고 있다.

이런 경제적 상황에 대해서 사민당의 대응은 슈뢰더가 주도한 우경화된 시장화 정책으로 대응했다. 복지국가의 기본틀을 만들었던 정당이 자신의 손으로 그 목을 조르는 상황이 도래했다. 경제성장은 철저히 기업을 살리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기업을 살리면 국민전체의 삶이 나아진다는 허무맹랑한 믿음은 독일에서도 통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선 조세개혁을 했다. 복지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조세규모가 크고, 이것이 기업의 비용부담을 가중시킨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2001년 제출된 세제개혁안의 내용은 법인세제의 대폭 인하와 기업양도세 비과세 조치였다.
노동시장에 대한 개혁(?)작업도 진행되었는데, 2002년 3월 6일 폴크스바겐사의 인사담당위원장인 Peter Hartz를 중심으로 노동시장개혁을 위한 위원회가 만들어져 개혁안을 작성했는데, 이것을 “하르츠법안”이라고 부르고 “하르츠 Ⅰ～Ⅳ”로 이루어져 단계적으로 시행되었다. 이것은 전반적으로 김대중 정권 시절의 “생산적 복지”와 내용을 같이하지만,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하르츠 Ⅳ법안으로 이 법안은 실업수당의 단계적인 축소를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것이 시행되면 실업자 수가 엄청난 독일 노동계급에게 치명적인 타격이 올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이런 친자본 시장화 개혁은 결정판인 “아젠다 2010”로 드러나서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개혁(!)이 추진되면서 당연스럽지만, 사민당에 대한 지지도는 지속적으로 하락되었고, 경제문제가 해결될 기미 또한 보이지 않고 있다.
이제는 사민당 정부에 대해 축적되어 온 불만이 행동으로 나오고 있다. “월요 시위”라는 형식으로 노동자들의 불만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구동독지역의 마그데부르크시에서 시작된 “월요 시위”는 이제 독일 전역으로 확산되어 사민당의 전통적 지지지역인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에서만 20여 도시에서 매주 월요일이면 사람들이 모여 사민당 정부를 비판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독일총선의 의미 : 부르조아 정당으로는 안된다!

이런 현실은 부르주아 정치판에서도 드러나게 되었는데, 2002연 재집권이후 사민당은 11차례의 지방선거 패배했고 야당은 16개주 중 11개주의 주정부를 장악하였다. 사민당은 경제적, 정치적 위기를 맞이하여 조기선거라는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선거는 세금감면, 복지축소라는 정책에 대한 거부를 보여주었다. 사민당은 2002년 선거보다 4.2% 지지율 하락에 직면했다. 그러나 사민당 정책에 대한 반대가 기민-기사연합에 대한 동의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 선거운동 초기에 사민당에 대한 불만 때문에 높은 지지를 얻었던 기민-기사연합도 실제 뚜껑을 열어보니 35.2%에 불과했으며 이것도 3년 전에 비하면 3.3%나 지지율이 하락된 것이었다. 기민-기사연합의 정책 또한 친자본 시장화 정책이라는 점에서 많은 지지를 획득할 수 없게 한 요인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사민, 기민 양당에 대한 환멸과 부정이 현재 우스운 정치지형을 낳게 된 것이다.
반면 사민당을 탈당한 전 사민당 당수 라퐁텐과 “선거대안과 사회정의” 세력, 동독지역이 주기반인 민사당이 통합해서 만든 “좌파당”은 8.7%라는 약진을 이루었다. 이것은 3년전 선거에서 민사당이 5%를 밑도는 지지율로 의회진출에 실패한 것이 비하면 비약적인 발전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좌파당이 사회주의를 명확히 하는 정당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라퐁텐은 전통적 사민주의자에 가깝고, 민사당 또한 구동독을 지배한 스탈린주의 정당에 연원을 두고 있다. 그러나 하르츠 법안과 아젠다 2010에 올곧게 반대해온 정당이 민사당 하나뿐이라는 이유만으로 민사당의 성장이 확대되고 있다. 친자본적 시장화 공세가 계속되서 민중의 삶이 파괴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이것에 대한 반대만으로도 민중은 엄청난 지지를 보내줄 수 있는 것이다.


대중은 분명한 내용의 사회주의 정당을 선택한다

사실 독일 총선의 전후과정을 보면 우리나라의 상황을 떠올리게 된다. 신자유주의적 시장화 정책을 추구하고 노동시장에 대한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은 우리나라에서도 쉽사리 목적할 수 있는 모습이다. 그리고 자신이 추진한 신자유주의의 추구에 의해 자신의 지지기반을 스스로 허물어트리는 과정 또한 슈뢰더와 노무현이 닮은 모습일 것이다. 연정제안은 어찌보면 독일에 있는 자기 형제를 보면서 살길을 나름대로 찾으려는 시도인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심화된 경제적 파탄 상황에서 자본가정권이라는 성격이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는 한 정권의 위기는 사라지지 않는 것이 불변의 진리이다.
한편 좌파당의 ‘약진’은 그 자체로 의미있는 것이지만, 여기에 평가를 한정해서는 안된다. 사실 8%대 지지율는 턱없이 낮은 지지율이다. 오히려 주목할 것은 시장제약, 분배정의 실현, 민중의 자율적 삶을 일관되게 옹호하는 것만으로도 노동계급의 지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보다 적극적이고 총체적인 사회주의적 대안을 가지고 전사회적으로 자기 주장을 힘있게 전개하는 것이 대중들에게 호소력을 가질 수 있고, 보다 많은 노동계급을 자신의 품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 좌파당의 약진이 보여주는 교훈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