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13일부터 18일까지 WTO　홍콩 각료회의가 개최되었다. 이번 회의는 회의의 내용보다는 세계 민중들, 특히 그 중에서도 한국 노동자와 농민들의 시위로 세계인들의 관심을 끌었다. 홍콩경찰은 유례없이 한국인을 포함하여 각국 민중들 1,150여명을 한꺼번에 강제 연행하였다. 홍콩경찰은 WTO 회의장을 지키기 위해 세계 민중들에게 폭력을 행사하였으며, 시위 참가자들을 강제로 연행한 이후에도 비인격적으로 처우를 하였다. 홍콩 당국은 시위에 대한 책임을 물어 한국인 11명을 재판에 회부하였다.
WTO에 대한 반대는 이번 홍콩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 시애틀과 멕시코 칸쿤에서도 그러했던 것처럼 왜 세계 민중들은 WTO에 대해서 극렬하게 반대하고 있는가? 도대체 WTO가 무엇이길래 이번 홍콩의 경우와 같이 남의 나라에까지 찾아가 WTO에 대해 반대를 하는 것일까?
WTO(The World Trade Organization), 즉 세계무역기구는 자본주의 국가들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본주의 국가들의 무역질서를 유지했던 GATT체제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80년대부터 논의하기 시작하여 1995년 1월에 정식으로 발족한 무역규범을 다루는 국제기구이다.
WTO는 역사적으로 GATT(관세 및 무역 일반협정)에서 발전한 국제기구이다. GATT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본주의 국가들이 자유무역을 위해 무역협정을 체결한 것이다. 세계대전 이후에 세계 자본주의 경제는 전후 복구를 하느라 경제가 지속적으로 활황을 유지했으며, 특히 미국경제는 눈부시게 발전하였다. 이러한 기조는 70년대까지 어느 정도 유지되었으며, 이 때는 GATT체제가 별다른 무리없이 유지되었다. 그러나 생산력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자본간의 경쟁이 심화되면서 자본축적의 위기가 닥쳐왔으며, 두 차례의 세계적인 석유파동은 자본주의 경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이처럼 세계경제가 어려워지자 각국은 보호무역을 강화하기 시작했으며,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와 같은 지역적인 경제블록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편 자본주의 국가들은 국가재정에서 복지예산을 대폭적으로 삭감했으며, 심화되는 자본축적의 위기를 모면하고 손쉽게 이윤을 축적하기 위한 방편으로써 독과점 형태의 국영기업을 자본에게 넘기는 민영화를 대대적으로 실시했다. 이로 인해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도 자본과 노동의 계급투쟁이 격화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전지구적인 경제의 활황으로 인해 자본과 노동의 계급적 대립은 자본의 물질적 양보를 통해서 자본주의체제가 순탄하게 유지되었지만 세계경제가 불황으로 접어들게 되면서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도 노동과 자본의 대립은 격화될 수 밖에 없었다. 자본은 대외적으로는 자국 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제3세계국가인 개발도상국 시장에 대한 진출과 제국주의적 수탈을 강화하였다. 이러한 제국주의의 수탈에 맞서 개발도상국에서는 노동자.민중의 저항이 거세게 일어났으며, 결국 개발도상국가들도 점점 보호무역을 강화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자본주의 제국들은 소련과 중국이라는 현실사회주의 국가들이 존재하는 한 개발도상국들에게 섣불리 새로운 무역질서를 강요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변화는 1975년 베트남 전쟁의 종전을 전후로 미국 자본의 축적위기가 계속되자 미국자본의 입장도 변화가 시작되었다. 미국은 자본주의 시장을 확보하기 위해 베트남에서 15년간 전쟁을 했지만 승리하지 못했다. 미국은 베트남전쟁의 종결을 위해 1972년 닉슨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여 사전작업을 했으며, 결국 15년간의 베트남전쟁을 승리하지 못한 채 1975년에 마무리했다. 미국은 1979년에 중국과 정식으로 수교관계를 맺는다. 이러한 와중에 세계 2차대전의 패전국이었던 일본과 독일은 전후 유일한 패권국의 역할을 담당한 미국과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경쟁관계로 발전하는 자본주의 국가로 성장한다.

1947년에 체결된 자본주의 국가들의 관세 및 무역 일반협정(GATT)은 이미 1970년대부터 그 한계를 노정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GATT체제를 대신할 새로운 무역규범은 1979년 미.중 수교, 1980년대 폴란드, 헝가리, 체코 등 동유럽 국가의 소련으로부터의 이탈 등으로 탈냉전의 분위기가 무르익자 자본주의 국가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다자간 협상이라는 형태로 논의되기 시작한다. 1990년대에 접어들자 세계는 1990년 10월 독일의 통일과 1991년 소련의 해체로 세계경제는 사실상 단일체제로 바뀌게 된다. 1993년에 이르러 제8차 다자간 협상인 우루과이라운드협정을 통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본주의국가들의 무역질서를 지배해 온 GATT체제는 막을 내린다. 1995년 1월에 스위스 제네바에서 WTO가 정식으로 출범함으로써 세계경제는 자본주의 경제로 단일한 새로운 무역질서가 구축된다.

이와 같이 세계 자본주의 제국들은 자본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GATT를 대체하는 WTO라는 새로운 무역규범을 만들었다. WTO체제의 목표는 각종 무역장벽을 완화·철폐하고, 기존의 국제무역규범을 보다 구체화·명료화·강화하며, 농산물 및 서비스 무역분야 등에 대한 새로운 국제무역규범을 정립하고 공정하고 객관적인 분쟁해결제도를 도입하여 다자간 무역체제를 개선·강화함으로써 세계경제를 활성화하는 것에 있다. GATT체제가 주로 상품교역만을 다루었다면 WTO체제는 농업과 지적재산권, 교육, 의료, 영화 등의 서비스업과 같은 모든 산업분야를 망라하여 다루고 있다. 미국은 1970년대부터 제조업이 자동차, 항공 등 일부 업종을 제외하고는 급격히 쇠락하면서 농업, 금융업, 서비스업에 대한 시장개방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농업은 미국이 가장 선두에서 시장개방을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농업은 자연적인 조건에 의해 원천적인 경쟁력이 달라질 수 있는데, 미국은 넓은 토지에 좋은 기후조건을 갖고 있기 때문에 농업의 생산력이 높을 수 밖에 없다. 또한 미국의 자본은 제3세계의 농업을 지배하는 다국적기업 형태로 세계농업의 생산과 유통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우리가 시장에서 싼 가격에 구입하는 바나나 등의 열대과일은 제3세계의 민중들이 생산하지만 실제적인 이익은 미국의 자본에 모두 흡수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 WTO 각료회의도 주요 의제로 농업과 서비스분야를 다루었다. 홍콩 각료회의는 관세인하를 통해 무역자유화를 이루자는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졌다. 홍콩 각료회의의 주요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2006년 12월까지 도하개발아젠다 협상을 마무리한다는 원칙을 합의했다는 점이다. 둘째, 농업분야에서 2013년까지 수출보조금을 철폐한다는 데에 합의를 했으며, 농산물 수입의 일부 품목에 대한 예외를 나라별로 지정할 수 있도록 했다.
셋째, 서비스분야에서는 협상의 큰 진전은 없었지만 양자간 협상방식을 다자간 협상으로 보완하는 방식으로 내년에 협상을 재개한다는 것이다.

이번 홍콩 각료회의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본주의 제국들은 자본의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해 상품 뿐만이 아니라 농산물, 지적재산권, 의료, 교육, 법률 등 모든 분야에서 시장의 개방을 요구하고 있다.
WTO체제의 목적은 세계의 자유무역을 실현함으로써 경제의 효율성을 높여 모든 회원국들이 성장을 이루자는 것이지만 WTO체제 그 자체는 전지구적 경제와 정치의 통합을 통해 이윤을 얻고자 하는 자본주의 제국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WTO체제는 작업장에서 노동자를, 생활세계에서 대중을 지배하는 제국의 지배방식 중의 하나이다. 시애틀 WTO 각료회담에 대한 反세계화 반대투쟁, 세계무역센터를 붕괴시킨 9ㆍ11 테러, 멕시코 칸쿤의 투쟁, 부산 APEC 정상회담 반대투쟁, 홍콩 각료회의 반대투쟁은 WTO체제가 결코 우리의 장밋빛 미래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