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1일 민주노동당 최고위원회는 이른바 ‘당직제도 개선위원회’를 구성하기로 의결했다. 의결내용에 따르면 당직제도 개선위원회는 최고위원회제도의 운영을 평가하면서 당직공직겸직금지, 최고위원 정수 및 배분, 선거시기, 선출방법 등을 논의하여 최고위원회와 중앙위원회에 ‘개선안’을 제출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이 사안들은 그동안 공개적으로 논의되지는 않았지만 심각한 위기에 처한 당의 현상태에 대한 일종의 대응방안으로서 물밑에서의 논의가 나름대로 상당히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논의를 통해 당을 진정으로 혁신하고 제대로 된 계급정당으로 거듭나기는커녕, 오히려 이것을 기화로 그나마 존재하고 있는 긍정적인 부분까지도 거꾸로 개악하려는 시도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중 대표적인 것이 당직공직겸직금지 규정을 풀어야 한다는 주장인데 이 주장 내에서도 좀 더 들어가면 나름대로 일정한 차이가 있다. 우선 규정을 푸는 정도에 있어서 전면적으로 허용하자는 안부터 대표 · 사무총장 · 정책위의장까지만 허용하자는 안, 대표만 허용하자는 안 등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한편 규정을 풀어야 하는 근거 또한 대중적 명망성을 지닌 이가 지도부가 되는 것이 대중정당의 성격에 부합한다는 우파적 논리가 있는 반면, 이른바 ‘반우파’라는 사람들 중에서도 겸직금지규정 때문에 지금과 같이 수준 이하의 당지도부가 출현했으니 이를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겸직금지를 풀자는 주장은 그 완화정도나 논거에 관계없이, 그 어떤 것도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당을 지금보다 더 악화시킬 따름이다. 겸직금지는 작년 의회진출 직전에 진보정당의 의회활동은 과연 어떠해야 하는가를 나름대로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제출되어 통과된 것이었다. 당시의 핵심적인 문제의식은 현장에서의 계급적 대중운동과 대중정치투쟁에긴밀히 결합되는 의회활동이 아니라 몇몇 소수의 의원단이 그 명망성을 이용해서 당지도부를 장악할 경우 당은 급속히 의회주의의 늪으로 빠져들 위험이 크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문제의식은 지금도 유효하다. 당의 계급적 정체성에 대한 확고한 인식조차 부족한 수준 이하의 당지도부임에도, 그리고 몰계급적 통일운동에 지나치게 관심이 경사되어 있음에도, 어쨌든 의회에서의 공방만이 아니라 나름대로 대중투쟁과 함께 하려는 노력이 미흡하나마 지속되었던 것은 바로 당직과 공직이 분리되었기 때문이다.

당이 대중정당이라는 미명 하에 대중적 명망성을 통한 선거승리에만 목을 매고, 계급적 대중운동에 의거한 변혁성을 아예 포기해버린다면 이는 이미 진보정당이 아니다. 대중성을 고려해서 겸직금지를 풀자는 우파들의 주장은 당장의 사소한 이익에 눈멀어 당을 전면적인 의회주의와 개량주의의 구렁텅이로 타락시킬 따름이다. 한편, 현 당지도부의 숱한 문제점이 겸직금지규정에 기인한다는 주장 또한 사람의 문제와 제도의 문제를 혼동한 주장일 뿐이다. 현 당지도부의 각종 오류나 무능함은 당직공직겸직금지라는 제도 때문이 아니라, 전면적인 ‘세팅선거’를 가능케 한 1인7표(일반3표, 여성4표)라는 선출방법의 문제 및 이에 따라 선출된 사람의 문제 때문이다. 당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당의 정체성과 나아갈 바에 대한 깊이있는 고민도 거의 없었던 이들이, 단지 특정정파 소속으로 함께 ‘세팅’이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지도부로 선출될 수 있게끔 만들어버린, 특정정파 독식을 가능케한 선거제도의 문제를 애꿎은 겸직금지규정의 잘못으로 돌리는 것은 번지수를 잘못 찾은 주장일 뿐이다.

따라서 제도개선특위는 현행 당직공직겸직금지 규정을 푸는 문제를 논의할 게 아니라 현재의 잘못된 선출방법을 바꾸는데 논의를 집중해야 한다. 만약 지금과 같이 대표 · 사무총장 · 정책위의장을 별도로 선출할 것이라면 나머지 최고위원들은 아예 일반명부와 여성명부에 각 1표씩만 행사할 수 있도록 해야만이 이른바 ‘세팅선거’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 나아가서는 이번기회에 아예 대표 · 사무총장 · 정책위의장을 별도로 선출하는 것 자체도 재검토해야 한다. 사실 현재 우리 당의 지도체제는 단일지도체제도 아니고 집단지도체제도 아닌 어정쩡한 것이다. 최고위원회라는 것 그 자체는 틀림없이 집단지도체제인데, 집단지도체제에서 당3역을 별도로 선출할 이유는 없다. 이미 다른 당에서 하듯이, 모든 최고위원 후보를 동일한 조건 하에서 선출해놓고 그 중 가장 많은 득표를 한 사람이 대표가 되도록 정하고 사무총장과 정책위의장은 최고위원 중에서 호선하여 중앙위의 승인을 받으면 된다. 이렇게 할 경우라면 꼭 1인 1표가 아니라 1인 3~4표 정도를 행사해도 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어느 방식을 택하든 중요한 것은 특정정파의 독식이나 과도한 패권행사를 막고 집단지도체제의 원 정신을 살리는 것이라 하겠다.

한편 차제에 노동이나 농민 등 부문할당 최고위원의 문제도 재검토해야 할 것이다. 의결기구라면 몰라도, 일종의 집행기구인 최고위원회에 굳이 부문할당을 둘 필요는 없다. 또한 부문할당으로 선출되는 최고위원은 대중조직의 단수추천을 받아 찬반투표를 거쳐 선출되는데 이는 경선을 통해 선출되는 다른 최고위원들과 형평성에도 맞지 않을뿐더러, 대중조직을 정치적으로 지도해야 할 당이 대중조직에 오히려 이끌려다니는 모양새를 자초할 뿐이다.

그리고 또 하나 쟁점이 되고 있는 것이 지도부 선출시기이다. 현재 대략 세가지 안 정도가 이야기되고 있는데, 첫째는 조기선거론으로서 제도변경논의가 끝나는대로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신규 지도부를 선출하자는 것이고 둘째는 당헌에 규정된대로 2월에 임기를 마치는 것을 전제로 12월말이나 1월 중에 선출하자는 안이며 셋째는 지방선거를 마친 후인 내년 6월에 선출하자는 안이다. 첫째 안은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신규 지도체제를 정비하여 지방선거에 대비하자는 취지이고 둘째 안은 괜히 논란벌일 것 없이 규정된대로 하자는 것이며 셋째 안은 선거결과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의미에서라도 선거 후가 타당하다는 논거이다. 이 부분은 다 나름대로 장단점이 있는만큼, 당원들의 의견을 보다 광범위하게 수렴하여 결정하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단지 당헌에 규정되었다는 이유로 2월 임기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현 지도부가 지방선거를 책임있게 치를 자신이 없다면 하루라도 빨리 신규지도부 선출을 마치는 것이 내년 지방선거를 위해서라도 더 나을 것이고, 반대로 현 지도부가 끝까지 지방선거를 책임지겠다면 그 결과를 보고 당원들이 판단하도록 하면 된다. 정치조직인 정당이 형식논리에만 너무 얽매일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당과 노동계급 전체의 대의에 얼마나 책임있게 복무하는가라는 문제 아닌가?

이제 결론을 정리하자. 당직공직겸임금지 등 당의 변혁지향성과 관련되는 사안은 철저하게 원칙을 유지해야 하며 현실을 핑계로 이를 후퇴시키려는 시도는 그 어떤 것도 잘못된 것이다. 반면 이렇게 당의 정체성과 관련된 사안이 아니라 순수한 제도나 선출시기 등의 문제라면 굳이 과거의 틀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실사구시의 자세로 무엇이 현재의 당에 가장 적합한 방식인지 폭넓고 다양하게 접근해야 한다. 강철같은 원칙과 유연한 상상력이 변증법적으로 결합될 때만이 현재의 제도개선논의는 올바른 방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