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정권에 도전하고 투쟁했던 학생사회가 분화하면서 민중문화가 등장했고 그 선두에는 노래가 있었다. 즉 운동권학생이라 불리는 대중과 비운동권이라 불리는 한심한 부류로 나누어지면서 운동권들의 문화가 확보되기 시작한 것이다. 80년대에 들어서는 광주민중항쟁과 반미의식의 성장을 반영하는 상당히 많은 수의 노래가 만들어지면서 반독재투쟁, 반미투쟁의 선명한 기치를 대중들이 이해하는데 많은 공헌을 했다.
그러나 87년 노동대투쟁이 전개되자 학생운동내에 활동하던 노래운동 주체들은 갑자기 생산력이 저하되었다. 안치환의 “철의 노동자” 정도가 노동의 시대를 적극적으로 인정한 학생운동 세대의 성공작이었다.
이때 혜성같이 등장해 수많은 노동가요를 작곡한 사람이 나타났으니 그 사람이 바로 김호철이다. “민중권력쟁취가”나 “무노동 무임금을 자본가에게”, “파업가”와 같은 노래는 아직도 우리 주변에서 널리 불려지고 있다. 문화(노래)는 대중의 의식수준을 반영하지만 한편으로는 문화생산자들의 지향이 대중을 통해 확인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즉 매시기 대중이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는데 필요한 의식의 정수를 제시하고 이것을 대중이 적극 수용하는 과정이다.
예를 들어 “무노동무임금을 자본가에게” 같은 노래는 정부가 파업기간 동안 임금지급을 금지하는 무노동 무임금 정책을 강요하면서 노동자들의 투쟁이 주춤거리자 이를 타개하기 위한 노력과 함께 등장했다. “민중권력 쟁취가”는 노동해방의 구호가 일반화되고 노동운동의 급진화가 진전되면서, 노동해방의 전망을 보다 구체화하여, 권력장악의 문제로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노동가요는 무엇보다도 자본가와 철저히 갈라치는 정서를 적극적으로 표현할 것을 요구받는다. 김호철의 파업가는 이것에 매우 충실한 노래다. “해골 두쪽나도 지킨다”라는 구절은 파업대오의 견결함과 자본가에 대한 적대감을 표현하는데 매우 적절했다. 이런 가사는 고된 노동과정을 통해 욕설로 혹은 분으로 간헐적으로 분출되는 대중의 정서를 공유해 보지 않으면 쉽게 나오지 않는다. 군대에서 상당수의 군가를 작곡한 것으로 알려진 김호철은 적지 않은 노동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이러한 정서를 행진곡풍의 장중한 노래로 작품화하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무노동 무임금을 자본가에게” 중에 등장하는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 자본가여 (처)먹지 말라”는 성공적인 계급적 갈라치기이며 동시에 대중의 정치의식을 순식간에 한단계 끌어올리는 효과를 주는 정치교육의 성공작이다.
실제 김호철은 한때 형제가 운영하는 '사당의원'에서 허드렛일을 하면서 이런 노래를 작곡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차장 한켠에서 눈을 번뜩이며 이런 가사를 만든 작가의 치열함을 생각하면 재미도 있지만 숙연한 느낌도 든다. 브레히트의 말대로 위대한 사상은 초라한 오두막에서 걸어 나오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