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은 패션도 바꾼다

혁명은 낡은 모든 것을 새로운 것으로 대체한다. 사람들이 맺는 관계와 사고방식, 삶의 태도 심지어 패션까지도. 18세기 말에 일어난 프랑스 혁명은 정치적으로는 물론이거니와 패션에서도 일대 ‘혁명’을 가져왔다. 혁명을 이끈 부르주아들은 귀족들이 입었던 퀼로뜨라는 반바지 대신 상퀼로뜨라는 긴바지를 착용했던 것이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귀족과 새로운 사회의 주인이 된 자신들을 구별하기 위한 패션이었다. 화려함의 극치를 추구하던 사치스러운 귀족의 패션은 사라지고 전반적으로 단정하고 검소한 패션이 유행했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이 자유, 평등, 박애의 정신 중 자유만을 성취하는 데에 그쳤듯이 패션도 완전하게 민주화되지는 않았다.
19세기의 패션은 한눈에 그가 속한 계급을 알 수 있을 만큼 뚜렷한 차이를 보였는데 남성 부르주아들이 허리가 잘록하게 들어가고 길이가 무릎을 덮는 긴 프록코트를 입은 반면, 남성 노동자들은 헐렁한 덧옷인 스목과 나막신을 신고 다녔다. 게다가 남성 부르주아들 사이에서는 각종 액세서리가 크게 유행하여 지팡이와 장갑 없이는 길거리에 나가지 않을 정도였다. 남성 노동자들은 일을 해야 하는 주중에는 길이가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스목을 입고 다녔고, 일요일에는 남성 부르주아들과 비슷한 차림을 했으나 지팡이와 장갑 없이 생활했다.
여성의 경우 그 계급적 차이는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집에서 꼼짝도 않고 하녀를 부렸던 여성 부르주아들의 패션은 허리를 꼭 죄는 코르셋과 우산처럼 치마를 빵빵하게 부풀리는 크리놀린으로 대표된다. 새로운 염료의 보급으로 옷의 색깔은 밝고 화사했으며 반질반질 윤이 나는 실크나 벨벳을 재료로 삼았다. 그러나 여성 노동자들의 경우는 대개 모직물로 된 검은색 치마 위에 하얀 앞치마를 두른 것이 패션의 전부였다. 장신구라고 해봤자 여성 부르주아들처럼 양산이나 부채를 가질 만한 여유가 없었으므로 고작 손수건을 지니고 다닐 뿐이었다. 여성 노동자들은 부족한 돈으로 남편과 아이들의 옷을 챙겨주느라 자신의 옷은 거의 신경 쓰지 못했으므로 한없이 간소했다.
19세기 부르주아의 패션이 몸에 꼭 맞는 형태였다면 노동자의 패션은 일하기에 적합한 헐렁한 형태였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패션의 계급적 차이는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점차 사라지고 대신 제복이 등장하여 부르주아와 노동자를 구별 짓고 통제하게 된다. 특히 제복은 같은 직종 내에서도 그 위계질서에 따라 다르게 착용되어 또 다른 차별 질서를 만들어낸다. 얼마 전 KTX 여승무원들이 사복 투쟁을 진행하였는데 이는 이러한 제복의 힘을 파악하고 거부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가격표에 0이 여덟, 아홉 개씩은 예사로 붙는 명품이 있기는 하지만 이제 소비문화와 대중문화의 발달로 패션의 계급적 차이는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투쟁의 현장에서 우리는 지나가는 시민과 투쟁에 나선 동지들을 단번에 구별해낼 수 있는데 바로 투쟁조끼 덕분이다. 소속과 구호가 적힌 남색, 적색 투쟁조끼와 붉은 머리띠는 투쟁하는 노동자의 패션이라 할 만하다. 1870년 사회주의자들은 프록코트나 오버코트가 부르주아의 허식을 뜻한다고 비판하고 두건 달린 망토를 착용하고 다녔다고 하는데, 욕망을 펌프질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투쟁하는 우리의 패션은 어떠해야하는지 한번 돌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