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 9일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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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엄한 비극, 초라한 희극]전교조의 과거, 현재, 미래
박남일  ㅣ  2013년 12월 17일

지난 10월, 고용노동부가 ‘교원노조법상 노조 아님’을 통보함으로써 촉발된 전교조 설립 취소 사태는 소강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그 논란의 무대가 법정으로 옮겨진 까닭이다. 전교조는 행정법원에 ‘법외노조 통보 처분 취소 소송’과 더불어 ‘법외노조 통보 처분의 집행정지 신청’을 냈다. 그리고 ‘통보 처분의 집행정지 신청’이 받아들여짐에 따라 당장은 합법적 지위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사태 발생 초기의 요란함에 비하면 이후의 상황이 조금은 싱겁게 전개되는 느낌마저 든다.

그러나 아직 낙관하기는 이르다. ‘법외노조 통보 처분 취소’에 대한 본안 소송 결과에 따라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릴 것이다. 한편 전교조가 낸 교원노조법 위헌성의 헌법소원도 정식재판에 회부되었다. 이밖에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해직 교원도 노조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한 ‘교원노조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이다. 

애초에 사태의 발단이 된 ‘해직교원의 교원노조 가입 자격 여부’는 이제 법정에서 가려지게 됐다. 그러나 법의 저울추가 어느 쪽으로 기울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이번 사태의 배경은 그리 단순한 게 아니다. 요컨대 박근혜 정부로서는 정국의 주도권을 놓지 않기 위해서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전술을 십분 활용하고 있는 까닭이다. 요컨대 박근혜 정부로서는 법정에서 이기면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전교조를 법 밖으로 밀어낼 수 있고, 지더라도 잃을 게 없다. 이래저래 밑져봐야 본전인 셈이다.

반면 전교조는 이겨도 본전이고, 지면 법외노조로 돌아가야 한다. 그것은 역사적인 후퇴이다. 다시 합법성을 쟁취하려면 박근혜 정부와 타협을 하거나, 지난한 싸움을 벌여야 한다. 이미 노쇠 기미가 다분한 전교조로서는 방어적인 싸움에 힘을 소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전교조는 판사의 방망이 끝만 쳐다보며 기다리고 있을 수 없다. 무엇보다도 법정 판결 이후의 상황을 철저하게 대비하며 새로운 투쟁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전교조 탄생의 장엄한 역사를 돌아보며


전교조는 뜨거운 법외노조에서 시작하여 미지근한 합법노조에 머무르다가 다시 법 밖으로 밀려날 위기에 처하기까지의 지난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조직이다. 사실 그 뿌리는 전두환 독재정권 시절의 <민중교육> 사건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민중교육>은 1985년에 몇몇 교사들이 교육민주화를 갈망하며 펴낸 교육전문지로, 당시 일선 교사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하지만 군사독재정권은 이를 ‘의식화교육’으로 규정하며 김진경, 윤재철 교사를 국가보안법으로 구속하고, 10명의 교사를 파면, 7명은 강제사직을 시키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러나 독재정권의 탄압은 오히려 교사들의 저항을 확산시켰다. 일선 교사들과 학생들의 집단적 항의가 이어진 것이다. 또 YMCA 중등교육자협회를 중심으로 한 교사들의 소모임 활동이 확산되면서 전국적으로 학교 현장에서 민주화교육을 실천하려는 움직임이 활성화되었다. 이에 대해 교육당국은 강제 전보, 각서 제출 등의 방법으로 탄압을 계속했다. 그러던 1986년 5월 10일, YMCA 중등교육자협회 주최로 서울, 부산, 광주, 춘천 지회 등에서 ‘제1회 교사의 날’ 집회를 열었다. 그리고 ‘교육민주화선언’을 발표했다.
이에 놀란 정부는 교육민주화선언에 참여한 교사들에 대하여 중징계하려 했다. 그러나 종교단체, 재야단체 등까지 나서서 ‘교육민주화선언’을 적극 지지하며, 부당징계에 항의하는 바람에 교육당국은 징계 수위를 낮추며 한 발 물러났다. 하지만 전국 곳곳에서 교사들의 교육민주화선언이 줄줄이 이어졌다. 또한 ‘교육민주화실천 결의대회’도 곳곳에서 열려, 교육민주화 선언의 의미와 정신이 조직적으로 전파되었다.

한편 교육민주화선언을 이끌었던 교사들은 1987년 6월 항쟁 직후에 ‘민주교육추진 전국교사협의회(전교협)’를 결성하고 본격적인 교원단체 활동을 벌여간다. 전교협은 ‘교육민주화실현’과 ‘민족·민주·인간화교육’ 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참교육 실현과 사립학교 민주화 등 학교민주화투쟁, 그리고 교육악법 개정 투쟁에 앞장서며 교원노동조합 결성을 준비했다. 그리고 마침내 1989년 5월 28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장엄한 깃발을 올렸다.

그러나 당시 노태우 정권은 교사들이 노동조합을 만드는 것은 불법이라는 입장을 굳게 견지하며, 온갖 허위로 조작된 보도 등을 통하여 전교조 교사들을 ‘좌경 의식화교사’로 매도했다. 당연히 전교조는 합법성을 부여받지 못하고 임의단체, 즉 ‘법외노조’의 지위에 머물러야 했다. 게다가 전교조 결성으로 인하여 1,527명의 교사들이 파면당하거나, 강제 해임되는 비극적인 사태를 맞았다.
그로부터 4년이나 지난 1994년 3월. 그간 전교조는 교육의 대안세력으로 자리를 잡았지만, 김영삼 정권은 합법화를 거부했다. 대신 해직교사들에 대한 ‘조건부 복직방침’을 내놓았다. 그로써 해직교사들이 4년 만에 교단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전교조 합법화를 위해 투쟁했다. 그 결과 전교조는 김대중 정권 시절인 1999년 초에 교원노조법에 따라 6만여 조합원을 거느린 합법노조로 승인을 받게 된다. 법외노조로 출범한지 무려 10년 만이었다. 하지만 샴페인을 터뜨릴 일은 아니었다. 단체행동권이 없는 반쪽짜리 노동조합이었다.


전교조, 이런 미래를 꿈꿔본다


합법노조 이후 비교적 평탄한 길을 걸어온 전교조는 13년이 지난 지금, 다시 법 밖으로 밀려날 위기에 처해 있다. 계급국가의 지배가 엄연히 이어지는 현실에서 합법적 운동이란 종착점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위기는 더 넓은 활동영역을 쟁취하기 위해 잠시 전열을 가다듬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활동영역을 어떻게 넓힐 것인가?

첫째, 강령부터 재정비해야 한다. 전교조의 슬로건은 ‘참교육’이며, 강령의 핵심은 ‘민족, 민주, 인간화 교육’이다. 그런데 4반세기가 지난 오늘날, 이 강령은 두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먼저 민족교육을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점점 늘어가는 다문화가정 자녀들을 소외시키는 불평등성을 야기한다. 굳이 법을 빌자면 이는 헌법(憲法) 제31조 제1항의 ‘평등하게 교육받을 권리’에도 위배된다. 한편 오래된 강령에는 오늘날 한국 교육의 주요모순인 경쟁교육의 현실을 넘어서는 지향점으로써 평등교육 정신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이 시대 교육노동자들의 집합체로써 전교조가 추구해야 할 가장 중심적인 가치는 ‘평등교육’이어야 한다. 진정한 참교육은 바로 평등교육임을 주지해야 한다. 

둘째, 단체행동권을 포함한 노동기본권을 쟁취하는 게 당연한 순서이다. 교사는 기본적 권리를 가진 노동자이다. 따라서 전교조 또한 노동기본권의 핵심인 단체행동권을 보장받아야 한다. 그런데 교사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한국 사회에서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그러한 왜곡된 이데올로기의 바로잡는 일은 학교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예컨대 학교 교과과정에 노동 과목을 개설하는 것을 공론화해야 한다. 그 또한 쉽지 않겠지만 ‘노동의 신성함’이라는 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강변함으로써 명분을 삼을 수 있다. 그리하여 예비노동자들인 학생들에게 진정한 노동의 의미를 가르치고, 교사의 노동기본권을 사회적 쟁점으로 부각하여 활발한 토론의 장을 열어야 할 것이다.

셋째, ‘교사의 정치활동의 자유’를 공론화해야 한다. 교사는 미래 사회의 설계자들이다. 또한 학교라는 이데올로기의 최전선에서 싸우는 투사이기도 하다. 그런 존재들에게 정치활동의 자유를 빼앗는 것은 폭력이며 야만이다. 미국의 경우 교원단체가 '정치활동위원회'를 만들어 선거에서 활동하는 예가 있다. 사실 공무원에게 정치적 중립을 강요하는 것이야말로 매우 정치적인 행태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한국의 아이들은 사회적으로 온전한 노동자도 못 되고, 기본적인 공민권을 행사하는 주체도 되지 못하는 이상한 어른들 밑에서 배우고 있는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교사의 정치활동의 자유’는 지겹도록 사회적 쟁점으로 떠올라야 한다.

노동문제와 더불어 교육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의제로 자리를 잡고 있다. 어찌 보면 한국의 교육은 사회의 모순을 집약적으로 가두고 있는 울타리이다. 그 안에서는, 교육의 주체라고 하는 학생, 부모, 교사 모두가 괴롭다. 서열화와 입시경쟁의 늪에 빠진 학생은 당연히 괴롭고, 그 치열한 경쟁의 물적 기반을 마련하느라 부모들은 허리가 끊어질 지경이고, 교사 또한 정치활동, 노조활동에 대한 탄압으로 괴롭다. 원칙적으로는 사회적 모순이 풀려야 교육의 모순도 풀릴 터이지만, 이러한 교육의 모순이 풀림으로써 사회적 모순을 더 수월하게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

한국 자본가계급 일선의 이데올로그들은 말끝마다 전교조를 마치 '사회악'처럼 묘사한다. 그만큼 그들은 전교조를 두려워한다. 다시 말하면 그만큼 한국사회에서 전교조의 역사적 임무가 크다는 반증이다. 그런 전교조가 다시 결기를 세워, 지금의 위기를 기회로 만들고, 노동조합도 지키고, 정치활동의 자유까지도 쟁취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이러한 투쟁에 한국의 노동자계급이 적극적으로 연대하는 것은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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