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 9일 99
해방 > 99호 >

점령하라, 이 질서와 위계와 분업을 그리고 빼앗아 버려라
김광수  ㅣ  2011년10월21일(금)

모두 점령하라!


전 세계가 “점령하라” 열풍에 휩싸였다. 이집트의 젊은이들을 쫒아, 스페인의 청년들이 광장을 점거했고, 영국에서는 폭동이, 마침내 자본주의 대형, 미국에서 월 스트리트가 점거를 당했다. 지난 15일에는 세계 80여개 1,000여개 도시에서 벌어진 국제행동의 날에 맞추어 서울에서도 집회가 개최되었다. 적어도 수백명이 자본주의 철폐하자고 외치는 근래 보기 드문 대중적 반자본주의 투쟁이 마침내 서울 한 복판에서 벌어졌다. 한편 아직도 낡은 신자유주의 반대를 외치던 주최 측이나 일부단체들은 대오 속에서 자연스럽게 터진 자본주의 철폐하자란 구호에 압도당하고 머쓱해졌다. 집회에서 보인 야권연대에 충성스러운 진보정당이나 단체들의 깃발은 반자본주의 구호 앞에서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전 세계에서 행동의 날을 주도하고 있는 사람들은 젊은이들이다. 어디에 소속되어 있는지 상관없이 이들은 2008년 이후 공황을 맞이한 자본주의가 지키려고 하는 질서가 무엇인지 똑똑히 보았고, 그 질서가 자신들에게 무엇을 뜻하는지 깨닫게 된 사람들이다. 시위대는 말이 아니라 자신들의 행동을 통해 이 질서의 재생산이 무탈하게 진행되는 것에 저항하고 있다. 그 질서라는 것이 금융가에겐 끝없이 탐욕의 기회를 제공하고, 젊은이는 실업과 비정규직으로 험난한 날을 보내면서 끽소리 못하는 질서인 것이다. 이제 미래를 강탈하는 이 체제에 대해 시위대는 점령을 통해 이 질서를 흔들고 있다.

세상에 공짜는 없고, 뒤탈 없는 사고도 없다

프란츠 파농의 말처럼 사람들은 더 이상 못 견뎌서 혁명에 나서는 것이다. 아랍 속담에 낙타 등을 부러트리는 것은 마지막에 올려놓은 바늘이라고 한다. 튀니지에서 노점을 하던 한 젊은이의 죽음이 임계점에 다다른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분질러 놓았다. 그리고 임계점에 달한 자본주의 모순은 다름 아닌 2008년부터 시작된 세계공황이라는 건 이제 상식이 되었다. 각국이 돈을 풀어 임기응변으로 대충 막았던 경제위기의 둑이 2011년 다시 터지기 시작하자 각국이 정치위기를 동반하며 요동하고 있다. 모순이 마침내 동시다발로 폭발한 것이다.


그렇다 이것은 정치의 위기가 아니다. 도덕의 위기는 더더욱 아니다. 이 위기는 바로 돈 문제, 경제로부터 왔다. 생산하고 소비하는 방식의 전근대성, 높아진 생산력에 비해 이미 낡아버린 소유의 방식 때문에 왔다. 각국의 시위대가 많은 이야기를 쏟아놓고 있지만 정작 그들은 한 이야기를 다르게 말하고 있을 뿐이다. 문제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인 것이다. 역사적 수명을 다해 단말마적인 고통에 비틀어지고 추악해진 자본주의, 그것이다. 

민주주의 위기, 빈부격차의 위기, 청년실업의 위기라 쓰고 자본주의 위기라고 읽는다!  

어떻게 자본주의 재생산에 저항할 것인가?

야권연대로 대중들의 정치의식 발전에 대항해 박스아웃(농구경기에서 수비수들이 골 근처에 촘촘히 서 공격자들의 접근을 막는 플레이)을 하고 있는 한국의 자유주의자들과 진보정당들은 선거철을 맞아 정권교체가 사실은 자본주의 질서를 재생산하는 놀음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은폐하고 야권연대로 정권교체하는 것이 세상의 전부인 냥 꾸며왔다.

그러나 85호 크레인의 김진숙 동지가 상징하는 것은 나쁜 정리해고에 대한 싸움이 가능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는 언제든 이땅의 노동자라면 어떤 정권에서라도 올라갈 수밖에 없다는 현실이다. 그것이 이 자본주의 질서가 요구하는 분업인 것이다. 조남호 회장의 자리는 언제나 조남호지만 크레인은 정리해고된 노동자를 위해 언제나 비워져 있다는 사실은 이 분업이 지속되는 한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질서이다. 이 위계의 질서에서 가장 아래에 있는 청년들, 비정규직노동자는 자신들에게 모욕과 좌절만을 안기는 이 질서에 순응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이 질서가 재생산되는 정치놀음을 뒤집고, 치안을 위협하는 행동을 통해 스스로 정치의 주체로 나서야 한다. 이제 점령은 청년들, 비정규직노동자, 당신들의 몫이다.

점령이 아니라 수탈해야 하는 이유? 결국 소유의 문제고 민주적 통제의 문제다

전 세계적으로 “점령하라”운동은 사람들의 상상력에 새로운 자극을 주고 있다. 점거는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집단이 해야 하기에 점거를 통해 그들은 서로에게 자극받고 연대한다. 긴축재정에 토끼몰이를 당하며 분노의 대상을 찾지 못했던 미국과 유럽에서는 사람들이  금융자본을 지목했다. 아쉽게 우리는 아직 구체적인 분노의 대상을 찾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분노의 대상은 골목상권을 집어삼키며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상속재벌들, 해마다 수십조 국방비를 쓰고 수십만 젊은이들을 2년 가까이 군에서 썩게 하면서 절대빈곤국가, 이북에게 공격당했다고 자랑삼는 분단국가의 똥별들, 수천억의 재단전입금을 쌓아놓고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등록금 장사를 하는 사학재단 등 도처에 널려 있다. 그래서 이 땅에서 이제 점령은 금융가나 광장에서 끝나지 말고 작업장으로, 교실로 확장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점령은 확인과 점검의 기회가 되어야 한다. 모두의 소유여야 마땅한 것이 개인소유가 되었을 때 왜 비극이 되는지 대학과 병원, 그리고 공장과 대형마트들이 점검받고 확인되어야 한다. 만인의 “점령”은 소유변화를 위한 첫 단계가 되어야 한다. 맑스의 말대로 이제 수탈자가 수탈될 차례다. “점령하라”운동에서 주목받는 새로운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는 기존 사회주의가 결여하고 있던 것, 즉 새로운 소유의 주체가 될 사회에 대한 민주적 통제의 방법과 길을 열어주는 상상력의 물꼬가 될 것이다.

민중의 상상력은 지칠 줄 모른다. 그 민중이 젊다면야 더욱 그렇다. 화염병으로 도로에 창작물을 만들었던 80년대 젊은이가 있었다면, 점령 공간의 피켓팅으로, 그리고 점거한 공장의 담벼락 낙서로 인류의 유산을 남길 21세기의 젊은 혁명가들에게 경의와 부러움을 보낸다. 혁명 만세!

관련기사
이집트 노동자 계급은 다시 진군하고 있다
하나의 유령이 칠레에 떠돌고 있다
“새로운 자본주의”를 설교하는 체제의 수호자들

기사평쓰기
번호 제목 평점 작성자 작성일 조회수
등록된 게시물이 없습니다.

HTML코드 복사하기 (블로그나 카페에 바로 붙여넣기 하실 수 있습니다)


‘여성혐오’ 범죄에 함께 분노하며, 한 걸음 더 나아가기
남성들이 여성혐오에 맞서 싸워야 하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