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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유령이 칠레에 떠돌고 있다
문창호  ㅣ  2011년10월21일(금)

칠레의 겨울이 Hot하다. 지난 5월 12일, 중등학교와 대학교 학생들이 전국 저항의 날을 선포하고 십만 명 이상이 교육개혁을 요구하며 거리로 쏟아져 나온 이후로, 6개월째 투쟁이 멈추지 않고 있다. 동맹휴업, 학교점거, 노총의 지지총파업, 백만 명이나 되는 인원이 참여한 거리시위 등의 스펙터클을 연출해오더니, 이제는 남미 으뜸의 신자유주의 모리배들과 무상교육을 놓고 끝장투쟁을 벌일 기세다.


“우리의 미래를 팔지 말라.”


이는 칠레 교육투쟁의 핵심 슬로건 중의 하나이며, 칠레 교육투쟁의 비전을 압축하고 있다. 칠레 학생들이 공교육 강화, 무상교육을 요구하자 정부 관료들은 “돈이 없다”는 만국 관료 공통의 귀차니즘적 예산 타령을 했다. 이에 대한 학생들의 답변이 바로 저 슬로건인데, 칠레의 천연자원에 대한 초국적자본의 수탈을 막고 광산을 국유화한다면 무상교육, 나아가 다른 사회적 권리의 보장까지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구체적 묘사와 통계수치를 생략하고 칠레 교육투쟁의 배경을 간명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교육의 상품화, 시장화 → 교육비 상승 → 경제적 격차에 따른 교육 격차 심화(중산층 이하에서의 고등교육 기회 감소) → 경제적 불평등의 확대재생산 → 무능한 정당정치에 대한 불신 확대 → 대중운동 점화’ 이는 이해하기가 참 쉬운데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바로 한국의 이야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악순환을 끊기 위한 필수불가결의 조치 중 첫째가 불행의 시작인 ‘교육의 무제한적인 상품화’에 대한 규제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반값등록금, 정부장학제도 확대 등은 이런 노력의 일환이다. 이런 노력이 실제로 성공을 거둘 수 있다면 ‘교육 기회의 균등화 → 경제적 불평등 완화’라는 새로운 선순환이 칠레와 한국의 절망적 현실을 대신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칠레 교육투쟁이 놀랍고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종류의 개혁적 전망을 스스로 거부한다는 데 있다. 칠레 정부는 운동의 지속성과 규모에 놀라 장학금 확대, 등록금 대부이자 삭감, 교육예산 인상의 양보조치들을 발표했지만, 학생들은 이와 타협하지 않았다. 그들이 원하는 변화는 보다 근본적인 것이다.


“우리는 이 체제를 개선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변화되어야만 한다.”


정부가 양보의 제스처를 취하자 학생대표인 카밀라 바예호는 이처럼 응수했다. 얼마간의 개선으로는 해결될 수 없을 정도로 곪아 있는 현실, 더군다나 그 ‘얼마’조차 현 체제 자체에 의해 억압당한다는 인식이 ‘근본적인 변화’라는 유령을 칠레로 불러들이고 있다. 피노체트에 의해 도입되어 뒤이은 민주연합에 의해 공고화된 30년간의 신자유주의 교육시스템은 교육을 상품으로, 사학의 돈벌이로 철저하게 전락시켜 놓았다. 그리고 이 30년 간 형성된 국민적 체험은 교육이 시장과 자본축적의 논리에 종속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에 대한 각성이었다. 시장과 자본의 논리는 평등을 명백하게 저해했다.

“교육의 기회는 당신 호주머니에 비례한다”는 신자유주의 교육시스템 대신 칠레 청년, 학생, 민중이 원하는 바는 ‘공교육’과 ‘무상교육’, ‘조세개혁과 산업국유화를 통한 재정확보’이다. 이러한 요구들은 우연적이지 않다. 이들 요구는 하나가 다른 하나를 불러일으키는 유기적 관계를 이루고 있다. 또한 하나의 정신이 이들을 관통하고 있는데, 그것은 “사회가 교육을 책임져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사회가 그 수단을 소유하고 운영해야 한다”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주의적 신념이 실현된 사회에서만이 청년은 비로소 상품으로서의 자기계발이라는 강박에서 벗어나 자신의 요구대로 배우고 익힐 것이고, 교육 역시 비로소 본래의 목적과 가치를 회복할 것이다.
이러한 변화야말로 진정한 진보이며 혁명이다! 칠레는 이를 꿈꾸기 시작했다. 우리는 언제쯤 꿈꾸기 시작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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