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 9일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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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자본주의”를 설교하는 체제의 수호자들
황정규  ㅣ  2011년10월21일(금)

미국에서 시작해 전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투쟁은 망해가는 자본주의라는 배에서 뛰어내리고, 새로운 배로 갈아타고자 하는 전세계 민중의 갈망을 스스로의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다. 몰락하는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사회에 대한 상상은 이미 시작되고 있다.


“자본주의 4.0”, “새로운 자본주의”의 설교


그러나 자본주의를 넘어선 새로운 사회에 대한 민중의 상상과 염원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이를 억압하고 호도하려는 흐름이 끈질기게 나타난다. 이들은 주장한다. 자본주의는 인간이 만든 최선은 아니지만 최적의 체제이고 그렇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아닌 다른 경제체제는 상상할 수 없다. 결국 고장 난 자본주의를 수선해서, 낡은 자본주의를 버전업해서, 나쁜 자본주의를 인간적인 자본주의로 바꿔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이미 몇 달 전부터 체제의 수호자, 조선일보가 들고 나왔다. 조선일보는 “자본주의 4.0”이라는 신조어를 꺼내들었다. 사실 새로운 것을 상상할 수 없는 “낡은” 조선일보는 이 신조어조차도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영국의 자본주의 이데올로그인 아나톨 칼레츠키의 책을 그대로 인용했을 뿐이다. 자본주의 4.0은 자유방임자본주의, 수정자본주의, 신자유주의의 다음 단계인 자본주의를 지칭한다. 조선일보는 대기업의 독식을 비판하고 비정규직을 동정하고, 국민은 소득분배를 원한다고 설레발을 친다. 이러한 현실은 “사회의 건강한 통합을 파괴하고 국가라는 유기체 자체의 지속가능한 성장이 한계에 도달”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자본주의의 그늘을 해결하고” “‘시장 지상’의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근본적 반성”을 하는 “자본주의의 새로운 버전”인 “따뜻한 자본주의”, “복지자본주의”의 자본주의 4.0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선일보의 주장은 자본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과 혁신을 요구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자본주의 체제의 영구불멸을 위한 프로젝트에 불과하다. “자본주의는 내부적인 모순을 스스로 치유하면서 성장”해왔고, “주체는 자본주의의 키플레이어, 시장과 기업이 돼야”하기 때문이다. 기업이 잘되면 연쇄적으로 다른 곳까지 긍정적 파급효과가 난다는 저 유명한 “낙수효과”와 아무런 차이가 없다. 단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길 뿐이다. 

조선일보는 원래 나쁜 놈들이라고 치자. 그러나 월스트리트 시위에서 철학자 지젝은 말했다. “적들에 대해서만 깨닫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과정을 희석시키기 위해 이미 행동에 들어간 잘못된 친구들에 대해서도 깨닫기 바랍니다.” 우리가 친구라고 착각하는 한겨레신문도 “새로운 자본주의”의 전도사이다. 단지 조선일보가 이론을 만들었다면, 한겨레신문은 이 이론의 사례를 제시한다. 10월 19일자 한 기사의 제목은 “탐욕없는 ‘새로운 자본주의’ 불가능은 아니다”이다. 주된 내용은 미국 국유은행인 노스다코타은행은 주민들에게 생계형 대출을 하면서 금융위기 와중에도 흑자를 냈다는 것이다. 한겨레신문은 이를 “기적”이라고 부른다. 역시 새로운 자본주의의 “전도사”다운 언어사용이다.


민중의 전진을 가로막는 체제의 수호자들


이들은 왜 “새로운 자본주의”를 말하는가! 

이 모든 것은 이들이 세계대공황과 전세계적인 대중투쟁이 자본주의를 부정하고 새로운 체제로 나아가게 되는 것을 막고, 자본주의가 인간다운 모습으로 수정될 수 있다는 환상을 불어넣어 대중들의 불만을 왜곡하고 억압하려는 것이다. 명백한 적인 조선일보뿐만 아니라 친구라고 착각하는 한겨레나 경향 역시도 자본주의체제의 충실한 수호자라는 진실은 이들이 말하는 “새로운 자본주의”로 명백해진다.

그러나 저항을 자본주의 틀로 가두려는 이들의 집요한 시도는 역설적으로 새로운 체제를 꿈꾸는 전세계 민중의 투쟁이 거센 파도로 밀려오고 있음을 방증할 뿐이다. 이제 바람의 방향은 바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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