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 9일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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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정치운동이 없는가
김인해  ㅣ  2011년2월1일

1. 한국이든 세계든, 자본주의가 문제다


작년말부터 한국 자본가 정치에서 이른바 ‘복지’ 논쟁이 한창이다. 정동영이 부유세를 주장하고 박근혜가 한국식 복지국가를 발표했다. 그럼 왜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여당과 야당 대선 주자들은 복지를 이 시대의 화두로 꺼냈는가.
그 이유는 간단하다. 노동자 민중, 대중의 삶이 위기이기 때문이다. 빈곤층 비율, 비정규직, 청년실업 문제, 출산율, 자살율 등등의 통계는 이를 숫자로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지금 한국에서는, 자본가 정당들도 대중의 삶의 위기를 무시할 수가 없기 때문에 일종의 해결책으로 복지라는 카드를 들고 나올 정도이다. 그럼 이처럼 대중의 삶을 위기로 만든 원인은 무엇인가. 바로 자본주의라는 체제 그 자체 때문이다.

이는 한국만이 아니다. 지금 국제정세가 심상치가 않다. 2008년 미국발 금융 위기 이후, 그리스를 시작으로 튀니지에 이어 이집트까지 세계 자본주의의 약한 고리들에서는 대중투쟁이 폭발하고 있다. 이집트 민주화 시위는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 이전에 삶의 위기가 사회적 위기, 그리고 정치적 위기로 표출된 것이다.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는 선진 제국주의 국가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그래서 프랑스에서는 작년 연금개혁반대 총파업에서 “이것은 계급투쟁이다”라며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구호가 등장했다.

2. 정작 이땅에서는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정치운동이 없다!

그런데 정작 이땅에서는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정치운동이 없다. 이상하지 않은가. 자본주의가 노동자 민중의 삶의 질곡으로 작용하는데에는 프랑스이든, 이집트이든, 한국이든 결코 그 질적인 차이가 없는데도 말이다. 왜 한국 노동자 계급은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집회 한번 하지 않는가. 대중의 생존권 요구는 있어도,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대중의 정치운동은 왜 없는가. 소련이 이미 망했기 때문에, 북이 위에 있기 때문이란 것은 그 이유가 되지 않는다.

객관적인 조건과 주체적인 조건의 비조응, 자본주의 그 자체가 삶의 위기의 원인인데 그래서 자본주의가 문제라는 것을 대중들은 더 적나라하게 체득하고 있는 반면에, 운동 주체들 다수는 전혀 이를 간파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대착오적인 낡은 운동들이 문제인 것이다.

3. 정세에 정반대로 역주행하는 진보정당들


낡은 운동은 먼저 진보정당들이다. 자본가 정당들의 좌경화와는 정반대로, 정작 노동자 정당들은 어찌된 일인지 우경화로만 화답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이나 창당 정신인 강령은 모두 자본주의에 반대한다. 하지만 정작 정치적 실천에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강령은 사문화되었다. 예를 들어 한국 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사회적 문제라는 비정규직 문제만 한번 보자. 비정규직을 철폐하자면 자본주의를 부정해야한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당이든 국참당이든 자본가 정당들은 복지는 주장할 수 있어도 비정규직 철폐는 주장할 수 없다. 문제는 진보정당들이 비정규직 철폐는 주장하지만, 그 정치적 실천에서는 자본가 정당들과 다를바가 없다는 데 그 심각성이 있다. 비정규직의 차별해소나 처우개선 정도이다. 비정규직 문제에서 자본주의에 반대한다는 정치적 실천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진보정당들은 자본가 정당의 2중대로 전락하고 말았다. 결국 자본가 정당과의 정치적 연합이자 노동자 계급의 정치적 독립성을 파괴하는 민주대연합(이른바 비판적 지지론)마저도 작년 6.2지방선거를 계기로 정식으로 선거전술로 되었다. 하지만 민주대연합 노선의 반노동자성은, 이번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파업 투쟁에서 아주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자본가 정당들과 야4당 교섭지원단을 구성하여, 불가능한 중재를 한답시고 실질적으로 파업 파괴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 진보정치대통합이니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 운운은 둘 중 하나다. 자멸에 몸부림치는 것이던가, 그렇지 않으면 민주대연합을 위한 사전 수순을 밟는 것이던가(선 진보소통합 후 민주대연합).

4. 노동자 계급의 정치적 실천을 부정하는 조합주의

그 다음으로 낡은 운동은 조합주의다. 민주노조운동의 조합주의는 ‘현장’을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오히려 노동자 계급의 정치적 실천을 부정한다는 데에 그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임단협에서 민주적이고 자주적이라고 해서 과연 조합원들의 실리주의를 극복하고 노동자 계급으로서 계급의식을 획득할 수 있도록 할 수 있겠는가. 예를 들어 대공장 정규직은 자본주의를 부정하지 않는다면 비정규직 철폐 투쟁을 할 수 없다. 그래서 자동차 업종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에서 정규직의 연대파업은 조직되지 않는 것이다.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정치적 실천으로 노동자 계급을 조직하지 않는다면, 아제국주의의 길로 나아가는 한국 자본주의에서, 종속국 노동자 계급에게 제국주의 국가의 노동자 계급인 한국 노동자 계급이 노동자 계급의 국제연대를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조합주의는 사회주의 세력들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니다. 비정규직 철폐 투쟁에서도 여전히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정치적 실천을 조직하지 못하고 있다. 자동차나 조선업종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에서 자본주의 반대는 ‘아직’이다.
심지어는 노동자 계급의 정치적 실천마저도 부정하기까지도 한다. 예를 들어 작년 천안함 사태 당시 사회주의 세력 중에는 한반도 평화라는 최소강령적 정치적 실천조차도 계급화해주의일 뿐이라면서 철저하게 조합주의에 입각해서 현장에서의 생존권 투쟁을 강조하기도 했다. 전형적인 전투적 조합주의가 아닐 수 없다.

5. 낡은 운동을 소멸시키기위해서는 새로운 운동의 격렬한 투쟁이 필요하다

변증법에서 발전이란 낡은 것에 대한 새로운 것의 격렬한 투쟁이요, 그 투쟁 결과 낡은 것은 소멸하고 새로운 것이 승리한다.
운동 역시 마찬가지이다. 자본주의 이 자체가 삶의 위기의 원인이라는 객관적 조건에 조응하지 못하고, 관성적이고 심지어는 거꾸로 가는 낡은 운동은, 소멸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새로운 운동,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운동, 사회주의 운동이 낡은 운동에 대한 격렬한 투쟁 과정 없이 낡은 운동은 저절로 소멸되지는 않는다.

사회주의자들이여, 2011년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노동자 계급의 정치운동을 실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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