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 28일 98
해방 > 98호 >

룰라의 바닥을 드러낸 브라질 시위
문창호  ㅣ  2013년 7월 25일

룰라의 바닥을 드러낸 브라질 시위

6월부터 계속된 브라질 시위의 시작은 버스비 인상 때문이었다. 분노한 대중들이 거리로 나섰고, 이에 대한 경찰의 폭력진압이 기름을 부으면서 백만 명이 넘게 참가하는 대규모 시위로 확산되었다. 그러면서 시위대의 요구도 교통비 인상 반대에서 열악한 공공서비스와 부정부패, 천문학적인 월드컵 개최비용 등에 대한 비판으로 확대되었다. 버스비 인상이 취소되고 지우마 대통령이 개혁안을 발표했는데도 대중의 분노가 가라않지 않고 대정부 투쟁이 계속되었다. 시위에 대한 해석이 분분한데, 세계은행 보고서나 후쿠야마 등은 소득증가와 고등교육에 힘입어 전세계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중산층이 부정부패와 권위주의에 갖는 불만이 지금 세계를 휩쓸고 있는 반정부 시위의 배경이라고 한다. 한편 신자유주의와 세계화, 불안정 노동이 탄생시킨 새로운 프롤레타리아트가 느끼는 사회불만이 세계경제위기에 의해 터져 나왔다고도 한다.

우리가 몰랐던 브라질

투쟁의 주체를 누구로 보느냐에 따라 향후 전망도 달라질 것이다. 더 민주적인 정부에 대한 요구로 남을지, 위계적이고 착취적인 사회질서를 대신하는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향한 투쟁으로 나아갈지는 구체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의 대규모 시위는 룰라의 브라질에 대한 우리의 인상을 분명 뒤집고 있다. 87%. 이 숫자는 룰라 대통령(2003~10)이 퇴임 전에 기록한 지지율이다. 그리고 룰라가 지명한 지우마 호세프가 이어서 대통령이 되었다. 실용적인 개혁노선과 안정적인 국정운영, 그리고 높은 경제성장률과 지지율이라는 실적으로 룰라와 노동자당은 새로운 좌파의 좌표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런 룰라를 계승한 정부가 유례없는 시위대와 대결하고 있는 것이다. 이점이 의미하는 건 분명하다. 룰라주의가 그 명성과는 다르게 브라질을 더 민주적으로, 더 평등한 곳으로 조성하는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룰라에 대한 대부분의 찬사는 그의 재임기간 동안의 꾸준한 경제성장에 기인한다. 그런데 2008년부터의 세계경제위기에 의해 브라질 경제의 취약성이 드러나면서 냉정한 평가가 다시 이뤄지고 있다. 위기 직후 2009년에는 -0.3%로 추락했고, 10년에는 기저효과에 기대어 7.5%를 기록했으나, 11년과 12년에는 2.7%와 0.9%에 그쳤다. 2000년대의 글로벌 원자재 수요‧가격 상승에 따른 수출호황이 종말을 맞이했고, 이를 대신할 내수가 발전하지 못한 탓이다. 특히 브라질 경제의 불평등은 세계 최고 수준일 정도로 극심한데, 최근 10년 동안 거의 개선되지 못했다. 불평등구조가 지속되면서 수출이 두 배나 증가한 호황의 이득은 부유층이 누리고, 반대로 경제위기의 비용은 중산층 이하에게 전가되고 있는 게 최근 상황을 이해하는 열쇠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룰라와 그의 계승자는 고질적인 불평등에 메스를 들이대지 못했던 것일까?

중도좌파다운 무능력

사실 룰라 정권은 개혁다운 개혁을 시도한 적조차 없었다. 룰라의 재임기간 동안 기득권을 제한하는 어떤 헌법 수정도 새로운 법령 통과도 없었고, 잘 알려진 대로 전임 카르도주 정권의 신자유주의를 온전히 계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깥에서 불어온 순풍을 타고 브라질이 잘 굴러갔다는 게 룰라의 천운일 것이다. 반대로 이러한 무개혁의 개혁이 지우마 정권에게는 지독한 불운이 되서 돌아온 셈이다. 그런데 룰라의 천운과 지우마의 불운에는 공통점이 있으니 착취의 위계에 도전하지 못하는 무능력이고, 이에는 선거라는 전술적 수단을 위해 사회주의라는 전략적 목표를 내던져버린 노동자당의 변질이 자리 잡고 있다. 집권은 했으나 거대기업들과 언론, 국가기구, 관료, 경찰, 군인들을 거느린 지배계급 앞에서 한 줌의 내각과 의원단으로만 맞서는 왜소한 처지에 겁먹은 개 처지가 된 게 룰라의 당이었다. 스스로를 득표계산기와 선거전문가들의 당으로 전락시키면서 노동자 민중의 조직화, 운동과도 분리해 제 뼈와 힘줄을 끊은 게 노동자당이었다. 기득권에는 과감한 개혁으로, 반혁명 시도에는 노동자 민중의 새로운 조직화로 맞섰던 차베스와 볼리바리안 혁명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관련기사

기사평쓰기
번호 제목 평점 작성자 작성일 조회수
등록된 게시물이 없습니다.

HTML코드 복사하기 (블로그나 카페에 바로 붙여넣기 하실 수 있습니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투쟁을 평가하다: 왜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은 패배했는가
야권연대는 자본주의 재생산을 위한 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