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24일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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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자본가에게는 돈, 노동자에게는 독
박남일  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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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중순. 온갖 대중매체를 장악한 이슈는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총선도 아니고, 사상 최고의 청년 실업률에 대한 불안도 아니었다. 일주일 남짓한 이 기간에 대중매체와 세간의 관심을 독점한 이슈는 바로 바둑이었다. 구글 자본에서 개발한 바둑 전용 프로그램 알파고와 프로 기사 이세돌이 맞대결을 벌이게 된 것이다. 따라서 수천억 원을 들여 개발한 인공지능과 인간 최고수가 벌이는 세기의 맞대결이 국내는 물론이고 세계적으로도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처음에는 ‘누가 이길 것인가?’가 하는 데 관심이 집중되었다. 그러나 첫 대국에 이어 두 번째, 세 번째 대국에서도 연거푸 이세돌이 패하자 바둑계는 물론이고 바둑에 문외한인 소비 대중도 충격에 사로잡혔다. 더불어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하는 공상 영화나 만화 스토리가 머지않아 실제 현실이 될 것 같은 두려움이 확산되었다. 그러다가 4국에서 이세돌이 이기자 환호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온갖 매체들은 어김없이 희망 타령을 읊어댔다. 더불어 이세돌은 일약 인류를 기계의 지배에서 구해낸 영웅 같은 존재로 떠올랐다. 그러나 다섯 번째 대국이 알파고의 승리로 끝이 났고, 인간과 기계의 바둑 대결은 결국 기계의 압도적 우위로 마감되었다.


‘인간과 기계의 대결’이라는 설정의 함정


인간과 기계가 벌이는 희대의 바둑 대결에 대하여 불공정한 게임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알파고는 이세돌의 기풍을 학습할 수 있었지만 이세돌은 알파고의 기풍에 대해 학습할 겨를이 없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그런 진단이 이번 이벤트의 본질을 짚어내는 것은 아니었다. 사전에 서로 충분한 정보 교환이 있었다 해도 인간과 기계의 대결에 공정함이라는 잣대를 들이대기는 어려워 보인다. 수백 명의 프로그래머가 참여하여 천문학적인 비용을 써 가며 만들었다는 알파고는 애초에 사람을 이기도록 만들어진 기계인 까닭이다.


알파고는 하나의 개체가 아니라 1200대가 넘는 CPU가 서로 연결되어 정보를 교환하며 최적의 한 수를 가려내는 인공지능의 연합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대국 전에 이미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알파고의 5대 0 승리를 장담하는 예측이 많았다. 알파고가 이세돌에게 다섯 판 가운데서 한 판을 내준 게 오히려 주최 측의 고의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지경이다. 고의가 아니라도 알파고는 이미 인간의 두뇌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는 난공불락의 바둑 기계임이 입증되었다.


사실 기계나 인공지능이 특정한 영역에서 인간과 대결하여 이기는 것은 더 이상 놀랄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특정한 룰에 따라 벌어지는 대결에서 인간은 결코 기계를 이길 수 없다. 요컨대 백 미터 달리기 대결에서는 싸구려 자동차도 우샤인 볼트보다 빠르고, 땅 파기 대결에서는 굴삭기 한 대가 수백 명 인간의 삽질을 능가한다. 계산 능력에서도 인간은 간단한 전자계산기를 이겨낼 재간이 없다. 당연한 일이다. 사람보다 느린 자동차나 사람보다 삽질을 못하는 굴삭기나 사람보다 계산이 느린 계산기는 애초부터 개발될 이유도 없고, 세상에 존재할 이유도 없는 까닭이다.


사실 인간과 기계는 질적으로 다른 존재이다. 그런 인간과 기계가 대결을 벌이는 일은, 주먹으로 바위를 이기려는 것만큼이나 가당찮은 일이다. 따라서 인간과 기계가 대결을 벌이는 설정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다만 기계와 기술을 보유하고 통제하는 인간과 그렇지 않은 인간들 사이의 대결이 있을 뿐이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뛰어난 성능을 발휘하더라도 그것은 인간을 위한 도구일 뿐, 행위의 주체가 될 수 없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 또한 기계와 인간의 대결이 아니라 사실은 ‘맨손’의 이세돌과 ‘도구’를 가진 구글 자본의 대결로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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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은 인간을 지배할 수 있을까?


인공지능 알파고의 승리를 계기로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디스토피아에 대한 불안감도 새삼 고개를 쳐들었다. 물론 그런 논란은 오래 전부터 있었다. 게다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인간이 인공지능의 지배를 받는 디스토피아를 소재로 한 스토리가 만화, 소설, 영화의 한 장르로 자리를 잡아왔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것은 관심 받기 좋아하는 과학자들의 입을 통해서 미래학이라는 이름으로 확산되기도 했다. 전쟁에서 많은 사람들이 무기에 의해 죽고, 거리에서 자동차라는 기계에 치여 사람이 다치거나 죽는 것을 보면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하는 끔찍한 상황이 도래할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실 인공지능을 장착한 여러 가지 기계들이 함께 ‘마음’만 먹는다면 인류를 순식간에 절멸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인공지능이 장착되었다 해도 기계에는 그런 마음이 없다. 마음, 즉 의식이라는 것은 살아있는 유기체가 오랜 세월 복잡한 과정을 거쳐 진화해온 결정체이다. 앞으로도 인공지능이 마음을 가질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 바둑 기계 알파고 또한 그 주인인 구글 자본의 명령에 충실히 복종하는 기계일 뿐, 스스로의 욕망과 의도를 추구하는 마음의 주체는 아니다. 


알파고가 스스로 학습하는 능력을 가졌다고는 하지만, 그는 오직 바둑에서 이기는 방법에 한해서 학습할 뿐이다. 물론 그 학습 영역이 늘어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알파고가 의식을 가진 주체로 진화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 두뇌와 대결하여 이기고도 스스로는 어떤 보람도 느끼지 못한 채 승리의 벅찬 감동을 오롯이 주인에게 선물하는 기계들의 연합체. 인공지능 알파고의 실체는 바로 그것이다.


인공지능이 스스로 인간을 지배할 마음까지 갖게 된다면 더 이상 그것은 인공지능이 아니다. 이미 그것은 인간보다 진화한 하나의 생물종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진화의 법칙에 위배된다. 침팬지가 어느 날 갑자기 인간보다 지능이 뛰어난 생물 종으로 비약을 한다는 설정만큼이나 황당무계하다. 그럼에도 인공지능과 인간의 맞대결을 벌어지고,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할 가능성이 끊임없이 거론되는 이유는, 그것이 상업적 흥행을 일으키기에 좋은 소재이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은 자본가들의 돈벌이를 위한 도구


구글 자본은 이번 이벤트를 통하여 인공지능 분야의 기술력을 입증해보였다. 덕분에 구글의 상장 주식은 크게 올랐다. 일주일 남짓한 이벤트 기간에 구글의 시가총액은 500억 달러 가까이 늘었다고 한다. 한국 돈으로 무려 58조원에 이르는 액수이다. 구글은 20여억 원을 들여 마련한 이벤트로 보유자본의 가치를 58조 원이나 늘렸고, 액수로 환산 되지 않은 엄청난 기업 홍보 효과도 거두었다. 이는 이번 이벤트가 자율자동차(무인자동차)를 개발하고 있는 구글의 시장 선점 의도에서 비롯되었음을 의미한다. 즉 알파고는 인공지능 상품을 이용하여 거대 이윤을 축적하고자 하는 구글 자본의 첨단 도구였다.


알파고에게 패한 이세돌은 “인간이 진 것이 아니라 이세돌이 진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그리고 자유주의 언론은 이 말을 인간들에게 희망을 주는 이세돌의 어록으로 기록했다. 하지만 실상은 그 반대이다. 알파고에게 진 것은 주급 2억 원짜리 바둑을 둔 이세돌 개인이 아니라 인공지능으로 인해 이미 일자리에서 밀려난, 또는 앞으로 밀려나게 될 노동자들이다. 게다가 이세돌을 이긴 것은 알파고가 아니라 그것을 개발하고 소유한 구글 자본이다.


흔히 인공지능에는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하는 긍정적인 측면과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줄어들게 하는 등의 부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노동자들에게 대체 일자리를 마련하는 등의 대책이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체제에서 인공지능은 상품의 생산력을 높여 더 많은 이윤을 확보하려는 자본가들의 의도에 따라 개발되고 이용되는 도구일 뿐이다. 일자리 감소 등의 부정적 측면은 그에 따른 부수적인 결과이다.


인공지능은 그 자신을 위해 태어난 인격체가 아니다. 흔히 알려진 것처럼 보편적 인간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개발되는 것도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것은 철저히 자본가들의 잇속을 실현하며, 그 결과 노동자들의 삶의 조건을 오히려 악화시킨다. 그 점에서 인공지능은 자본가에게는 돈이고 노동자에게는 독이다. 인공지능에 대하여 자유주의자들이 말하지 않는 것 한 가지, 그것은 바로 인공지능에 투영된 ‘계급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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