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24일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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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박근혜 야권연대 환상에서 벗어날 때 노동자의 길이 보인다
황정규  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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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만 아니면 돼?


박근혜가 하고 있는 행동을 보면 기가 막히고 화가 난다. 역사를 거스르는 국사교과서 국정화, 죄진 놈이 더 성내는 꼴로 만든 한일 위안부 합의까지. 박근혜가 손대면 되던 일도 안된다. 줄줄이 하락하고 있는 경제지표는 물론이거니와 이제는 현대상선, 한진중공업 등 대기업마저 줄줄이 무너지고 있다. 이미 모건스탠리, HSBC 등 해외 금융기관들은 한국이 1%대 성장에 머물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대북정책에서도 이런 무능이 있을 수 없다. 박근혜판 벼랑끝 외교는 참담한 수준으로 동북아 정세에 전혀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며 군사적 긴장만 고조시키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다보니 총선을 앞두고 많이 들리는 소리가 있다. “새누리당만 아니면 돼!” 즉 새누리당만 안 찍으면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근혜의 무능과 비정상적 행동을 보면 전혀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지만, 반박근혜 정치로 모두 몰아가는 게 정말 올바른 해답인지는 곱씹어 볼 상황이다.


한국에는 왜 여당만 있고 야당은 없는가?


사실 정치판이 돌아가는 꼴을 보고 있노라면 누구나 반박근혜 전선으로만 가기에는 꺼림칙한 것이 너무 많다고 생각할 것이다. 왜냐하면 박근혜와 새누리당이 아닌 다른 정치세력을 선택하려고 해도 그 놈이 그 놈이고 그 나물에 그 밥이기 때문이다.


특히 413 총선을 앞두고 여야를 막론한 정치세력들이 보이는 행태는 막장드라마보다도 더 막장이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세상이 모두 제 것 마냥 기고만장해져서 소수의 인사들이 선출직 공무원 후보를 선정하는 데 무소불위의 칼을 휘두른다. 민주주의는 실종되어 박근혜에 대한 충성심을 후보선정 기준으로 삼으며 ‘친박’에서 ‘진박’으로, 다시 ‘눈밖’으로 퇴행하고 있다. 야당인 더민주는 새누리당과의 근친교배를 통해 자신이 새누리당과 별 차이 없는 정당이라는 점을 스스로 확인시켜주고 있다. 박근혜 ‘눈밖’에 나 새누리당에서 튕겨져 나온 김종인을 비대위원장에 앉히고, 마찬가지로 눈밖에 난 진영을 영입하는 모습, 그런 김종인이 버젓이 비례대표 2번으로 셀프 공천하는 모습은 대표적 사례라 하겠다. 새누리당, 더민주에서 떨어진 이삭을 줍는데 모든 관심이 가 있는 국민의당은 더 이야기해서 무엇하겠는가. 


이렇게 돌아가는 정치판이다 보니 “새누리당만 아니면 돼”라는 주장이 무기력하게만 들릴 수밖에 없다. 오히려 이런 질문을 해볼 수 있다. 반동적인 독재의 후예일 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무능함을 노정하고 있는 박근혜가 왜 여전히 권력을 유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적반하장 식으로 기고만장해 있는 것일까? 바로 박근혜에 맞서 싸울 대안적 정치세력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주요 야당은 사실상 노동자민중보다는 박근혜와 새누리당과 더 가까운 자본가 정당이다. 이들은 경제위기가 심각해지고 노동자민중의 삶이 악화일로에 있는 상황에서도 노동자민중의 편에 서서 민중의 삶을 개선시키는 것보다 자신의 계급적 본성에 맞게 여당 새누리당과의 근친성을 드러내며 선거를 통해 한 자리를 차지하고 권력을 나눠가지는 데 관심이 더 있는 것이다.


이렇게 주요 야당의 계급적 속성을 이해한다면, 이들이 왜 세계정치의 전반적 흐름에 역행하는 모습을 보이는지도 이해된다. 샌더스가 미 대선 경선에서 뜨자 야당 지도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한국의 샌더스를 자처했다. 그러나 샌더스와 같이 미국 정치를 좌선회하려는 실천을 본받으려는 인물은 하나도 없었다. 말만 샌더스 샌더스 했지, 행동은 우경화, 우경화하는 게 이들의 실제 모습이었다. 이들이 우경화, 우경화하면서 노동자민중과 이들의 거리는 더욱 커져만 갔고, 이제는 박근혜가 밉다고 이들을 찍어주기도 뭐한 지경에 이르렀다.

 

사회주의로 노동자의 독자적 정치세력화가 답이다


노동자민중이 투표당일 찍을 놈 하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은 노동자의 독자적 정치세력화가 실패하였기 때문이다. 96‧97년 총파업 이후 가시화된 정치세력화의 결과인 민주노동당이 정치적으로 소멸한 이후, 다양한 정치세력들이 난립하고 있지만, 노동자들의 이해를 대변하고 노동자들이 주체가 되는 정치를 실현할 수 있는 정당은 존재하고 있지 않는 실정이다.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실패하고 난 자리는 더욱 공고해진 양당구조가 차지하게 되었고 이른바 진보정당 역시 우경화로 일매진하며 이 양당구조의 말단으로 포섭되어 갔다. 따라서 현재의 답답한 정치적 상황을 헤쳐나갈 방도는 노동자가 자유주의 세력의 후위에 머무는 게 아니라 독자적 정치세력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노동자의 독자적 정치세력화가 단순히 과거와 같은 진보정당 건설을 답습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2008년 세계대공황 이후 자본주의의 위기가 심각해졌고, 올 해 들어 이 위기는 더욱 악화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노동자 민중의 인간다운 삶과 이윤만을 추구하는 자본주의가 서로 공존할 수 없다는 사실 역시 분명해지고 있다. 따라서 반자본주의 정치를 분명히 하고 대안사회로서 사회주의를 주장하는 정치세력의 등장은 현재의 정치지형을 혁파하고 노동자민중에게 희망의 빛을 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모든 정치세력이 우경화를 향한 무한 질주를 하고 있는 한국 현실에서 이것은 요원한 일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세계의 제국인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살펴보면 아주 요원한 것도 아니다. 2015년 4월 갤럽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47%가 사회주의 대통령 후보가 나오면 찍을 의향이 있다고 응답하였고, 사회주의 정책에는 57%가 지지를 보냈다. 2010년 여론조사에서 36%가 사회주의에 대해 긍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다고 응답한 것에 비하면 크게 증가한 수치이다. 이것은 미국 자본주의에 대한 미국 민중의 좌절과 분노를 드러내는 것이고, 미국 정치의 급진화는 이런 변화에 의거하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과 달리 한국의 민중은 우경화된 정치만 가져야 하는가? 이에 대한 답은 아니오이다. 단 이제 반박근혜 야권연대 정치가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는 환상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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