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18일 95
해방 > 95호 > 쟁점

[민중총궐기를 평가하다 ②] 궐기가 끝나고 난 뒤
기범 고려대 학생  ㅣ  2015년 12월 18일



두 번의 궐기, 공통의 한계

11월 14일,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분위기는 복잡했다. 10만 민중이 점거한 거리에는 생존에 대한 절박한 심정, 변화에 대한 막연한 설렘, 탄압에 대한 두려움, 이렇다 저렇다 한마디로는 형용할 수 없는 복합된 감정들이 응어리진 채로 있었다. 그러나 답답한 응어리가 해소될 여지도 없이, 광화문 사거리는 차벽으로 꽉 막혀 있었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차벽에 가로막힌 채 붕 떠있는 사람들을 향해 앞장서서 행진을 독려했지만, 가혹한 물대포에 사람들은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지지부진한 소모전이 몇 시간 동안 거듭되자 그날의 궐기는 해산을 선언하였다. 사람들은 응어리진 답답함을 그대로 쥐며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날의 거리에는 을씨년스러운 무기력만 남겨져 있었다.

12월 5일, 두 번째 궐기를 위해 약 5만의 인파가 시청광장으로 모여들었다. 그날의 군집은 총궐기를 구실로 성사되었지만, 결말은 ‘백남기 농민 쾌유기원 국가폭력 규탄 범국민대회’로 굳어졌다. 요점부터 이야기하자면, ‘쾌유기원과 국가폭력 규탄’은 집회의 종점이 아닌 기점이 되어야 했다. 백남기 농민이 처한 상황이 국가의 백색폭력으로부터 야기되었다는 것을 상기해본다면, 폭력이 발발하게 된 맥락, 위험을 무릅쓰고 폭력에 맞선 그의 동기를 재조명하는 차원까지 나아가야 했다. 궁극적으로는 그의 동기와 연결되는, 각자의 행위에 대한 이유와 동기를 되짚어봄으로써 궐기에 대한 공통적인 문제의식을 형성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했다.

그런데, 두 번의 궐기가 진행된 가운데 언론은 폭력 아니면 평화에만 힘을 실었고, 논의의 틀도 그렇게 협소해져 갔다. 궐기가 끝난 뒤 발화된 논의들 가운데, 사람들이 거리로 향한 이유가 무엇인지, 거리에 표출된 분노와 위기감이 어떻게 공통된 문제의식으로 승화될 수 있을지, 그 가운데 궐기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관한, 즉 궐기 자체의 의의와 전망을 깊게 다루고자 하는 논의는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러한 의미에서 11월 14일의 무기력한 결말과 12월 5일의 닫힌 결말은 공통된 한계를 내포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제는 본격적으로 이야기해야 할 차례다. 운동이 무기력해지는 원인과 그것을 극복할 방향에 대해.

되풀이되는 공허함을 극복하기 위해

사실 지금의 수세적 상황은 단순히 어제오늘 일로만 치부할 수 없다. 그만큼 오래전부터 무원칙한 행동주의가 운동의 고질병으로 굳어졌다는 이야기다. 원인은 멀지않은 곳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최근 운동의 흐름을 살펴보자. 총파업을 선언했던 9월 23일의 돌연적 집회 해산부터, 11월 14일의 첫 궐기, 그 직후 한상균 위원장의 조계사 피신, ‘평화’의 울타리에 갇혔던 두 번째 궐기와 얼마 뒤 한 위원장의 자진출두까지. 투쟁의 모든 책임을 진 듯 굳은 결의를 선언한 지도부의 겉모습과는 다르게, 투쟁의 양상은 이미 끝에 다다른 것같이 위태롭다. 이것을 단순히 정부의 탄압이 강화되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만은 없다.

민주노총이 가져야 하는 것은 투쟁에 대한 굳은 결의뿐만이 아니다. 이미 오른쪽으로 기울어진 판에서 거듭되는 공회전은 결과적으로 우회전만 부추길 뿐이다. 숨도 못 쉬게 가해지는 국가와 자본의 조직적 탄압에 맞서기 위해서는, 투쟁에 임하는 태도뿐만 아니라 짜임새 있는 청사진을 그려낼 실천적 고민이 수반되어야 한다. 이는 현실의 객관적 모순이 터져 나오는 양상과 그것을 맞닥뜨리는 민중의 주체적 의식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기초로 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분석은커녕, 각자의 감상과 인식을 토로할 공간조차 매우 협소하며, 개별적 차원에서의 구체적 모순을 꿰뚫는, 공통의 전위적인 의식조차 부재하다.

오늘날의 사회적 모순이 초래한 온갖 고통은 민중에게 전가되고 있다. 국가의 손바닥은 사회가 처한 모순의 기원을 감춤으로써 고통의 전가를 정당화시키고 있다. 그러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다. 거리로 뛰쳐나온 사람들이 그것을 증명한다. 이제는 단순한 위기감을 넘어, 무언가 바뀌어야 한다는 인식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모두의 시선을 손바닥에 집중시키는, 따라서 문제의 본질을 은폐하려는 시도가 계속된다면, 이제는 손바닥 뒤에 숨겨진 본질을 이야기해야 할 때다. 그런데 문제의 본질은 각자가 느끼는 모순 속에 있으며, 서로의 모순을 이야기함으로써 형성되는 연결고리를 통해, 하나의 상승하는 계급적 의식이 만들어진다. 그때 비로소 우리의 투쟁은 공허함과 결별할 수 있으며 결과가 아닌 결과의 근본적 원인과 싸우는 투쟁이 될 것이다.

관련기사

기사평쓰기
번호 제목 평점 작성자 작성일 조회수
등록된 게시물이 없습니다.

HTML코드 복사하기 (블로그나 카페에 바로 붙여넣기 하실 수 있습니다)


[민중총궐기를 평가하다 ①] 투쟁은 스스로 결정하는 것
[민중총궐기를 평가하다 ②] 궐기가 끝나고 난 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