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18일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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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이 진정 승리할 길
황정규  ㅣ  2015년 12월 18일



조계사에 의탁한 노동자들의 대표

지난 12월 10일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은 25일간의 조계사 은신생활을 마치고 조계사에 나와 경찰에 체포되었다. 그가 걸어 나오면서 말한 “저는 살인범도 파렴치범도, 강도범죄, 폭동을 일으킨 사람도 아닙니다. 저는 해고노동자입니다”라는 기자회견 내용은 많은 사람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이와 함께 한상균 위원장을 경찰에 넘긴 것이나 마찬가지가 된 조계사에 대한 사람들의 비난도 들끓었다. 요컨대 이것이 ‘화쟁실천’이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왜 애초 노동자들의 대표가 조계사라는 종교기관에 의탁하게 되었는가를 냉철히 따져 묻지 않을 수 없다. 많은 사람이 조계사의 배신에 분노하지만, 종교가 이런 행태를 보인 것은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한상균 위원장은 거센 노동개악과 정권의 탄압에 맞서 민주노총의 투쟁을 이끌어야 할 시점에 조계사에 들어갔다. 더욱이 한상균 위원장은 스스로 조계사에 “의탁”했다는 표현을 썼다. 이는 자신의 힘이 약하고 내몰려서 힘이 되는 다른 곳에 몸을 맡겼음을 의미한다. 체포영장 발부 이후 정권의 압박이 거세졌다 하더라도 한상균 위원장은 조계사 안에서 계속 민주노총의 총파업에 대한 강한 의지를 표출하였다. 이렇게 내몰리고 내몰려 노동자들의 대표가 종교기관에 의탁(!)하고 있는 상황, 그러다 결국 그 의탁한 종교기관에서도 내몰려 경찰에 체포된 상황에서 총파업을 하겠다는 주장이 얼마나 현실적인 주장으로 다가올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진심으로 원한 총파업, 그러나 결과는

작년 12월, 민주노총에서는 십년간 미뤄왔던 임원 직선제가 처음으로 실시되었다. 이 선거는 그동안의 정파 구도를 깨고 총파업을 내건 한상균 위원장 후보조가 당선되는 이변을 가져왔다. 한상균 집행부의 핵심 기조는 “총파업”이었다. 그는 당선 직후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박근혜 정부를 향한 승리는 총파업으로 쟁취할 수밖에 없다. 정부와의 투쟁에서 금속, 의료 등 산별연맹으로는 승부를 볼 수 없다. 이제는 전체 노동자의 명운을 건 투쟁이어야만 한다. 그걸 우리는 총파업으로 규정하고 있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그리고 올 한 해 민주노총의 투쟁은 총파업에서 시작해 총파업으로 끝났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과거와 달리 제대로 된 총파업을 조직하기 위해 임기를 시작한 직후부터 조직 전체를 총파업에 맞추어 운영해왔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올해 총파업이라는 이름으로 전개된 투쟁 중에서 정말 총파업이라고 할 만한 투쟁은 전혀 없었다. 4월 24일 총파업 투쟁의 경우, 공무원연금 개악이 핵심 사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공무원노조는 기백명 참여하는 수준에 불과하였다. 그 후 사이사이 결의대회에 다름 아닌 총파업투쟁이 있었다. 한국노총과 박근혜정부의 노사정야합이 있은 직후 열린 9월 23일 총파업투쟁은 무기력하게 깃발을 내리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언제쯤 총파업을 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이 들리다가 다시 그 시기가 가까워지면 총파업이 연기되었다는 소식이 들리기 일쑤였다. 12월 16일 총파업 역시 힘있게 되기는 힘든 상황으로 보인다.

한상균 위원장은 당선 직후 ‘노동과 세계’ 인터뷰에서 뻥파업이라는 오명을 씻어내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리고 이번 집행부만큼 진심으로 총파업을 조직하기 위해 헌신한 집행부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어떠했는가? 이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민주노총은 어느 길에 서 있는가?

이제 왜 이런 결과가 발생하였는지 질문하고 그 답을 찾아야 한다. 진심을 가지고 총파업 조직을 위해 노력하였다는 것만으로 상황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한낱 티비 예능에서도 열심히 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잘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떠들지 않는가! 정말 총파업이 절박하게 요구된다면 노동자의 상황과 조직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총파업을 현실화하기 위한 조건을 확보해나갔어야 했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은 별로 없었다.

우선 관료주의화하고 상당부분 자본의 관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민주노총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노력은 보이지 않았다. 단지 노동개악, 임금피크제, 연금개악 등 자본과 정권의 공세에 노동자들이 심각한 상황에 내몰리기 있기 때문에, 총파업으로 이것을 막아야 한다는 당위적 주장만이 있었다. 울산 현대차 정문 앞에서 성실히 총파업 선동을 하고 있는 한 동지는, 총파업이 대의이기 때문에 최선을 다하지만 현대차 노동자 열에 일곱은 골프를 치고 있다고 한탄을 한다.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이 속한 서울지하철노조는 제2차 민중총궐기 일주일 전 임금피크제에 합의해주었다. 이러한 기 막히는 현실은 부지기수이지만, 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별로 나오지 않고 총파업을 하자는 목소리만 들린다.

더 중요한 것은 민주노총이 노동자들에게 어떠한 정치적 메시지를 주고 있는가 하는 부분이다. 한국 노동자계급의 구심체인 민주노총은 한상균 집행부가 들어서서도 노동자들에게 어떠한 길을 가야 할지 제시하지 못 하였다. 자본과 정권의 거센 탄압과 공세를 이야기했지만, 이러한 탄압과 공세가 바로 위기에 빠진 자본주의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공공연히 이야기하지 못하였다.

오히려 지금의 민주노총 투쟁은 겉보기에는 처연하고 절박하지만, 자본이 쳐놓은 지배질서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렇다보니 한상균 위원장조차 제2차 민중총궐기 대회사에서 한편에서는 총파업의 성사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고 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내년 총선에서 우리는 600만표(!)가 얼마나 무서운지 오만한 정권에게 보여주어야”한다거나 “대선에서는 대단결(!)로 파쇼정권을 누리는 유신부활을 막아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총파업이란 강력한 투쟁 수단을 이야기하지만, 자유주의 자본가정당과의 민주대연합과는 단절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자본주의는 계속 미증유의 위기로 빠져들고 있고, 이 속에서 자본가들은 죽기 살기로 덤비고 있는데, 노동자들의 의식은 둘째 치고 민주노조의 구심체인 민조노총은 낡은 의식과 낡은 운동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한 형국이다.

자본에 대항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은 노동자의 의식이다. 노동해방 사상으로 무장한 노동자, 우리의 삶을 파탄내는 자본주의를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노동자가 많아져야 강력한 투쟁이 가능해진다. 그러나 민주노총의 실천에는 이것이 보이지 않는다. 정말 강력한 투쟁을 만들고자 한다면, 이제 노동자의 의식을 날카롭게 벼려 나가기 위한 실천을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현재의 어려운 민주노조운동 상황에 대해 많은 동지들이 고민을 갖고 있을 것이다. 이 글이 이런 고민을 발전시키는데 일조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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