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14일 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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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자들과 독재권력에 투쟁하는 아랍민주혁명에 연대하자
김광수  ㅣ  2011년4월11일

제국주의자들의 군사개입으로 더욱 꼬인 리비아 현실

 

지금 리비아의 미래는 더욱 불투명해지고 있다. 제국주의자들의 군사개입은 카다피의 몰락이 아니라 내전의 격화를 초래했고, 전선이 교착되는 가운데 지상군 파견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 이번 군사개입으로 리비아 민주주의 혁명의 도덕적 정당성은 지극히 훼손되었으며, 리비아 민주주의의 전진은 제국주의자들의 허용범위에서만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래서 리비아 민중은 카다피와 투쟁하면서도 제국주의자들과 투쟁하지 않고는 근본적인 사회혁명으로 전진할 수 없게 되었다.


결국 리비아에 대한 비행금지구역을 선포하자고 앞장서 주장했던 남한의 진보신당이나 프랑스의 녹색당, 반자본주의신당의 반동성은 여지없이 폭로되었다. 그들의 주장처럼 리비아 반군이 민주주의 혁명을 수행한다고 믿는다면 이에 대한 제국주의자들의 어떠한 개입도 반대했어야 했다. 지금 제국주의자들은 아랍세계의 민주주의 혁명이 사회혁명으로 발전할 것을 저지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다. 4월9일 이집트 타흐리르 광장에 다시 총성이 울리고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집트 민주혁명의 잠재적 에너지는 사회혁명으로 전진하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군부가 다시 발포한 것은 아랍세계의 민주혁명을 제국주의자들이 용인하는 선에서 제한하려는 시도인 것이다. 그러므로 제국주의자들의 리비아 군사개입을 환영하고, 심지어 촉구까지 하는 것은 민주주의 혁명의 우군이 아니라 제5열, 즉 배신행위다.


리비아 내전을 제국주의자들의 음모로 바라보는 시각


대부분의 진보진영이 리비아의 내전을 민주혁명으로 바라보고 있는 반면, 일부는 리비아의 내전을 제국주의자들의 음모로 보고 있다. 그러한 입장 중의 하나인 국제민중투쟁연맹 필리핀지부의 성명서 내용 일부다. “미국이 주도하는 제국주의 강대국들의 목적은 초반동적인 친제국주의자들의 괴뢰정권을 수립하여 리비아와 리비아 민중의 석유, 가스 그리고 다른 천연자원들에 대한 해외 독점자본의 지배권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런 입장은 쿠바의 카스트로, 베네주엘라의 차베스, 그리고 남한에서는 전태일을 따르는 노동운동연구소 등이  공유하고 있다. 이들은 민주화시위가 빠른 속도로 무장봉기로 발전한 것을 근거로 사실상 제국주의자들의 계획과 음모가 있었다고 단정하고 있다. 이러한 분석은 카다피를 여전히 제국주의자들에 반대하는 투사로 만들고 있다. 그러나 카다피는 친미주의자였던 벤 알리가 튀니지 민주혁명에 의해 쫓겨날 위기에 처하자 “나는 벤알리와 튀니지에서 성취된 개혁을 알고 있다”며 “왜 당신들은 그 모든 것을 파괴하고 있느냐”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카다피는 아랍혁명의 시작부터 속이 불편했고 시위대에 무차별 탄압을 가하면서 ‘민주화시위에는 이렇게 대응하는 것이다’라는 식으로 광포한 독재자들의 모범이 되었을 뿐이다.


민주화 시위에서 봉기로 발전한 리비아 민주혁명


리비아에서 시위에 촉발되었던 첫주 2월15일부터 22일까지 리비아 전역에서 300명이 사망했다는 인권단체들의 보도가 있었다. 카다피 정권은 이런 숫자가 과장되었다고 반박하지만 시위대에 군이 발포한 것은 사실이고, 카다피의 아들도 후에 군이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 일어난 실수라는 말로 이를 간접 시인한바 있다. 군의 잔혹한 진압이 시위를 봉기로 순식간에 발전시킨 것은 역사적으로도 광주민주항쟁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아랍의 장례 전통은 기후 때문에 1일장을 지낸다. 희생자에 대한 장례식이 다음날 거행되는 관행은 시위대의 희생을 통해 시위가 더 발전할 수 있는 동력을 부여한다. 장례식장에도 총탄이 퍼부어져 또 희생자가 발생한다면 장례식은 또 시위로 발전하다. 시위에서 봉기로의 발전이 며칠안에 이루어진 리비아의 사태전개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속도가 아닌 것이다.    


리비아의 반군을 초반동적인 친제국주의자들로 보는 입장은 이번 리비아의 민중봉기를 아랍세계의 민주주의 혁명의 한 흐름으로 보는 것을 부정한다. 그러나 리비아 왼편에 있던 튀니지나 오른편에 있던 이집트, 그리고 가운데 리비아 모두 민중봉기의 이면에 가난과 실업으로 인한 좌절과 소수의 특권층과 대다수 민중들 간에 패인 골이 있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민주주의 부재의 취약한 정치체제는 사회위기가 정치위기로 발전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카다피 정권(정확히는 그들 일족)은 신자유주의개혁을 이미 88년부터 진행하였고, 서구의 사찰을 받아들인 2003년 이후에는 석유회사의 민영화, 그리고 자유무역지대를 곳곳에 설치하면서 이를 더욱 밀어붙였다. 카다피 집권이후 리비아는 중등학교까지의 무상교육을 비롯해 많은 사회개혁을 이루어 낸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개혁 이후 30%에 달하는 실업률은 리비아 사회의 80%를 차지하는 40대 이하의 인구에게 절망감을 주었다. 교육받은 젊은이들의 실업사태는 튀니지나 이집트와 마찬가지로 사회혁명의 불쏘시개와 같은 역할을 한 것이다.



주체역량이 극히 취약한 리비아 반군세력


리비아 반군들이 리비아 왕국의 국기를 흔든다는 이유를 들어 초반동적인 친제국주의자라고 단정을 내리지만 리비아 반군에 대한 정보는 극히 제한되어 있다. 심지어 이번 폭격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 프랑스, 영국조차 반군의 성격을 파악하지 못해 무기를 공급하는 것을 주저하고 있다. 음모는 정보의 독점에서 가능하다. 도대체 이렇게 어설픈 음모가 어디 있는가?


반군세력안에는 카다피 정권으로부터 이탈한 고위 관료들, 그리고 이슬람주의자, 반군장악지역의 부족대표들, 반제 민주주의 혁명세력 등 다양한 세력이 모여 있다. 그리고 서방의 군사개입이 시작됨으로써 친제국주의자들의 영향력이 커진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개입이 시작되고 상당한 시간이 흐르면서, 반군진영에서 제국주의자들에 대한 불만과 반대의 목소리도 함께 나오고 있다. 확실한 것은 여전히 반군세력의 구성은 이질적이고 주도세력을 정확히 알기 어렵다는 점이다.


카다피가 쿠데타를 일으키기 전 왕국의 수도였던 벵가지가 반군의 중심지가 된 것은 리비아 민주혁명의 복잡성을 웅변해주는 사실 중의 하나이다. 카다피 장기집권이 지역, 부족간 분리통치와 함께 진행되었다면 부족, 지역간의 갈등이 심화되었으리라는 점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혹자는 부족간 갈등이 수면위에 오르자 이를 두고 민주화운동에서 부족전쟁으로 변화했다고 폄하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카다피 40년 독재가 초래한 것이다. 박정희 18년 독재가 영호남의 지역갈등을 초래한 것과 유사한 것이다.


그리고 카다피의 입에서 그토록 많이 언급되는 알카에다 개입설은 카다피가 이슬람근본주의자들에 대해 갖고 있는 원초적 공포를 표현하고 있다. 카다피정권이 체포해 서방에 넘긴 이슬람주의자 이븐 쉐이크 알 리비의 2009년도 장례식에 수천명이 모였다. 이는 민중들의 이슬람주의자들에 대한 지지, 다시 말해 카다피 정권의 친제국주의 정책에 대한 반감을 웅변한 사건이었다. 따라서 반정부세력의 상당부분이 이슬람주의 세력이라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반군들의 구성이 다양하고 동기와 목적도 다양하다. 따라서 리비아의 민주혁명세력은 취약한 주체 역량에서도 카다피 정권과 무장투쟁을 진행하면서, 동시에 제국주의자들의 간섭과 투쟁해야 되는 이중의 과제를 짊어지고 있다. 


아랍세계의 민주혁명과 연대하고 제국주의자들의 군사개입을 저지하자 
   
제국주의자들의 군사개입은 표면적으로는 인권과 민주주의를 내세우고 있지만 결국 아랍세계의 민주혁명을 통제하는 것이 목적이고, 한편으로는 군사적 위세를 과시하는 무력시위에 불과하다.

따라서 전세계 노동자계급은 제국주의자들의 군사개입을 저지하고 아랍민주혁명 세력과 연대하는 과제를 동시에 갖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전세계 노동자계급은 제국주의자와 독재정권에 투쟁하는 실질적 지원을 하기 어려운 상태에 놓여 있다. 1936년도 스페인내전에는 국제의용군이 조직되어 나치와 파시스트 세력의 국제적 지원을 받는 프랑코에 대항하여 소설가인 헤밍웨이나 조지오웰 등도 공화파와 함께 나란히 총을 들고 싸웠다. 아랍세계의 민주혁명이 2008년도 발생한 금융공황의 여파라는 것, 즉 자본주의의 전반적 위기하에서 발생한 약한 고리의 파열이라는 것이 명백함에도 반자본주의 투쟁역량이 힘을 모으고 있지 못한 안타까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리비아의 미래는 리비아 민중들의 손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그 길에 많은 희생이 따른다하더라도, 이제까지의 희생에 답하는 사회의 근본적 변화를 위해서도 그것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전 세계 노동자계급의 리비아 민중과의 군사적, 정치적 연대를 통해서 리비아 민주혁명세력이 주체역량의 취약함을 극복하고 사회혁명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할 수 있다. 따라서 전세계 노동자계급은 리비아와 아랍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민주주의 혁명에 대한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연대를 조직해야 하고, 동시에 제국주의자들의 군사개입에 대한 제국주의 본국에서의 노동자들의 반대투쟁을 조직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자본주의의 전반적 위기에서 절망을 딛고 일어선 아랍민중의 희생에 답하는 것과 동시에 전세계적인 차원의 반자본주의 투쟁, 사회주의 건설투쟁을 촉진하는 것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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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보장요구 투쟁은 계급투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