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8일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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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사회주의, 그 길을 묻다(5)] 오연홍 동지에게서 들어보는 연구공동체 ′뿌리′의 생각
해방  ㅣ  2015년 10월 8일
편집자주 ㅣ 자본주의의 위기가 심화되고, 자본주의가 노동자 민중의 인간다운 삶과 더 이상 양립할 수 없게 되어가고 있다. ‘사회주의냐 야만이냐’는 사회주의의 오랜 구호가 절심함을 얻고 있는 엄중한 역사적 시기인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한국의 사회주의 운동은 미력한 상태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사회주의자들 사이의 활발한 토론과 소통 역시 드물어진지 오래이다. 사회주의 정치신문 <해방>은 이러한 상태를 타개하고 사회주의자들의 다양한 고민을 자유롭게 개진할 수 있는 지면을 마련하였다. 이 지면은 조직에 속해 있든 개인으로 활동하고 있든 상관없이 “한국 사회주의, 그 길을 묻다”라는 주제로 다양한 사회주의자들의 목소리를 담고자 한다. 이번 호에서는 연구공동체 <뿌리>에서 활동중인 오연홍 동지와의 인터뷰를 지면에 싣는다.



해방
연구공동체 뿌리가 어떤 곳인지 간단히 소개해주시겠습니까?

오연홍 ‘노동자운동 연구공동체 뿌리’라는 이름에 모임의 성격이 축약돼 있습니다. 다른 계급이 아니라 노동자계급에 우리 정치의 근원을 두고, 일시적이고 부분적인 이해관계를 넘어 노동자계급 전체를 아우르는 장기적, 근본적 전망을 추구하고자 합니다. 저를 포함해 양준석, 오민규, 최영익 이렇게 네 명이 함께 정치적, 실천적 주제들에 관해 글을 쓰고 토론하며 노동자 운동의 발전에 기여하려는 작은 모임입니다.

해방
사회주의 운동의 주체상태가 매우 취약한 것이 사실입니다. 이렇게 취약한 상태에 머무르고 있는 원인을 어떻게 진단하고 있습니까?

오연홍 사회주의 운동이란 소수 지식인들이 노동자를 해방시켜주는 운동이 아니라, 노동자계급이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의식적인 운동입니다. 그러니까 이 운동의 중심 주체는 계급의식을 획득한 노동자계급의 선진층 즉 선진 노동자들이죠. 그러면 이 질문은 곧 노동자들이 계급의식을 획득하고 확산하는 과정이 왜 이토록 더딘가 하는 질문이 됩니다. 한편으로는 다른 노동자들보다 먼저 사회주의 사상을 받아들이고 운동을 시작한 사회주의 조직들이 현장 노동자들과 충분히 결합하지 못한 채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약점이 있습니다. 이와 동시에, 소규모 사회주의 조직들보다 더 강력하게 노동자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건 근본적으로 한 시기의 계급투쟁 수준이라는 점을 봐야 합니다. 87년 대투쟁이나 96~97년 총파업처럼 크고 작은 계급투쟁이 벌어졌을 때 그만큼 선진층도 더 넓고 단단하게 만들어졌고, 노동자 정치 운동 역시 어떤 형태로든 전진할 수 있었죠. 하지만 그 뒤로 노동자 투쟁이 어려움을 겪고 후퇴하자 선진층도 그만큼 약해지고, 흩어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관료화된 노동조합은 말할 것도 없고 개량 정당이나 미미한 힘을 갖고 있던 사회주의 조직들 그 어디도 계급투쟁을 재건하지 못해왔습니다. 그런 상황이 사회주의 운동의 주체상태를 약화시켰다고 봅니다.


해방 예전 사노련에서 활동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2000년대 후반 이후 사노련을 포함한 사회주의자 조직들은 사회주의노동자당 건설을 목표로 활동하였지만 실패하였습니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오연홍 일상적인 현장 정치 활동을 통해 노동자계급 속에 뿌리를 내리고 노동자 투쟁에서 조직된 힘을 발휘하는 실천적 권위를 갖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과거의 당 건설 운동은 선진적인 노동자들 다수의 적극적인 지지와 참여를 끌어내지 못했습니다. 현장분회를 조직체계의 기본 바탕으로 삼아야 한다는 초보적인 원리조차 합의하지 못할 정도로 견해 차이가 컸고, 무엇보다 투쟁하는 선진 노동자들을 통해 계급과 연결되지 못한 채 이뤄지는 당 건설 시도는 허공에 붕 뜨고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 확인된 것이죠. 이 때문에 2011년에 사노련을 해산하면서 우리는 더 이상 건설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는 기존 세력들을 통일시키려는 방식 대신, 노동자 투쟁 속에서 대안 지도력을 육성하고 새로운 주체를 형성하는 게 관건이라고 봤습니다. 그럴 때 비로소 실질적인 당 건설 운동이 재개될 수 있으며, 사회주의 조직들의 통일 역시 가능하다는 것이죠.

해방 뿌리에서는 ‘총파업’을 계속 주장하고 있고, 최근 울산에서 이 주제로 토론회도 개최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관성적으로 ‘총파업’ 주장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싶고, 그러다보니 주장이 무기력하게 느끼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런 의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오연홍 특히 올해 들어서 뿌리 칼럼 등을 통해 총파업 과제를 주요하게 다루고 있는데요, 이 시기는 이미 민주노총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총파업 일정을 선포한 국면이기도 합니다. 민주노총 노동자들이 총파업을 공약으로 내건 한상균 집행부를 선출했을 때, 그것이 곧 당장 총파업에 돌입하겠다는 결의를 뜻한 것은 아니지만, 비상한 각오로 전면적인 투쟁에 나서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런 지도부가 들어서야 한다고 조합원들이 느끼기 시작했음을 보여줍니다. 안이한 태도로 총파업 전망을 빈정거리는 자들보다 오히려 평범한 조합원들이 더 예민하게 정세의 변화를 포착한 셈이죠. 물론 민주노총 총파업이 상당히 관성적이고 부실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필요한 건 볼멘소리만 쏟아내는 게 아니라, 정당한 비판과 더불어 총파업을 총파업답게 만들어나갈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라고 봤습니다. 집행부를 향해 뭔가를 해달라고 매달리기만 하거나, 반대로 현실의 운동과 동떨어져 자족적인 정치 활동을 꿈꾸는 대신, 기층 현장에서 노동자들의 자주적 힘을 만들어낼 수 있는 모든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죠. 당연하게도 이는 노동조합 운동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계급투쟁을 어떻게 조직할 건가의 문제입니다. 이 과제를 해내는 세력만이 명실상부한 사회주의 세력이 될 수 있고, 선진 노동자들을 결집하며 사회주의 운동을 이끌어갈 수 있다고 봅니다.

해방
사회주의 운동이 전반적으로 매우 취약한 상황인데, 이를 극복하고 운동이 전진하기 위해서 어떠한 실천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오연홍 운동이 전진한다는 건 결국 계급투쟁의 활성화라는 근본 바탕을 마련해야 가능하지 않을까요? 그럴 때 노동자당 같은 선진 노동자의 정치적 재결집도 이뤄질 것이고요. 계급투쟁이 허공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은 누구나 동의할 겁니다. 요컨대 민주노총 총파업에 대해 그건 엉터리일 뿐이라고 등을 돌리는 대신, 현재 진행되는 운동 속에서 미래의 이익을 대변하며, 조각나 있는 노동자 투쟁을 하나로 연결하는 실천에서 사회주의자들이 자기 역량과 설득력을 키워가야 한다고 봅니다.


해방 연구공동체 뿌리의 경우 주로 구체적 사안에 대한 분석글이나 칼럼을 생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뿌리의 활동을 사회주의 운동의 발전 속에서 어떻게 위치 짓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오연홍 지금 강조하고 싶은 건 사회주의 운동을 투쟁하는 노동자들 자신의 운동으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뿌리 자신의 지적 성장이나 이론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도 의미 있겠지만, 노동자들의 사회주의 운동을 탄생시키고 그 일부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목표인 것이죠. 우리가 입장을 내거나 노동자들과 토론하는 것 역시, 노동자들이 보다 빠르게 정치적 운동으로 나아가고 스스로 지도자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돕기 위한 것입니다. 뿌리가 내놓는 의견들이 좀 더 많은 노동자들에게 설득력을 갖고 지지와 신뢰를 받으면 그만큼 뿌리가 사회주의 운동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여지도 넓어질 겁니다.

해방
사회주의 운동이 전반적으로 매우 취약한 상황인데,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 사회주의 사상・이론에 대한 학습과 보급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와 관련된 활동이나 계획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오연홍 우리가 발표하는 모든 칼럼과 기획글, 토론회와 이론지 《뿌리》가 결국 사회주의 사상과 이론을 익히고 보급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정치학교나 교육 프로그램, 단행본 출간 등을 병행할 필요성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뿌리의 활동이 좀 더 내실과 기반을 다지게 되면 이에 관한 계획 역시 구체화될 겁니다. 또한 노동자들이 학습 열망을 가질 수 있는 조건이 무엇인가에도 사회주의자들이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언젠가 집회장에서 한 노동자가 눈빛을 반짝이며 그날 뿌려진 모든 유인물을 모으고 여러 권의 정치 팸플릿을 구입하는 모습을 인상 깊게 본 적이 있습니다. 사상을 향한 열망이 넘쳐 보였죠. 아주 옛날이야기지만, 투쟁 분위기가 살아있던 시절에는 이런 모습을 심심치 않게 봤습니다. 하지만 노동자 운동이 후퇴하며 투쟁 물결이 대체로 가라앉은 뒤로는 이런 모습을 보기 어렵게 됐습니다. 저는 “요즘 노동자들이 너무 공부를 안 한다”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학습에 대한 열망의 근원인 계급투쟁 자체를 활성화하는 데 기여하는 방법을 찾는 게 더 낫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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