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5일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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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를 점령하라] 보라, 이것은 세계를 뒤흔드는 노동자계급의 투쟁이다!
황정규  ㅣ  2011년11월11일

하나의 불씨는 작아 보이지만 결국은 온산을 불살라버린다.

시작은 미약했다. 9월 초, 캐나다 뱅쿠버 소재의 조직인 “adbusters media foundation”은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는 제목의 시위를 9월 17일에 진행할 것을 제안하였다. 이날 시위에 수만명이 참여할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수백명의 시위참가자들이 모였을 뿐이었다. 그러나 몇 주도 되지 않아 “월가를 점령하라”는 운동은 전세계를 뒤흔드는 운동이 되었다.

다양한 참가자, 그들은 99%였다.

참가자는 탐욕과 부패한 1%에 맞서 99%의 목소리를 내고자 한다. 이 운동의 주요 구호는 “Occupy X(X를 점령하라)”와 “우리는 99%다”이다. “월가를 점령하라” 행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정치적 무당파, 보수주의자, 자유주의자, 무정부주의자, 사회주의자 등 매우 다양하다. 그러나 이러한 다양한 색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본주의 체제에 의해 고통받고 있는 자들이고, 자본에 의해 자신의 목소리를 잃어버린 사람들이다. 이제 그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고 있다.

주코티 광장에서 리버티광장으로, 자본의 이름에서 민중의 이름으로

주코티 광장의 원래 이름은 “리버티 프라자”, 즉 해방광장이다. 이 “리버티 프라자”는 911 테러로 붕괴한 세계무역센터 빌딩 맞은 편에 있었던 사유공원이다. 911테러 이후 공원을 재건하면서 공원의 지주인 Brookfield Office Properties의 회장 존 주코티의 이름을 따 주코티광장으로 개명되었다. 그러나 이번 월스트리트 점령 이후, 공원이름은 점거자들에 의해 “해방광장”이라는 원래의 이름을 되찾게 되었다.

민중의 상상력은 무한하다

새로운 운동은 모든 낡은 것을 타파한다. “월가를 점령하라”운동은 민주주의가 확대되는 새로운 운동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곳의 집회는 한국과 같이 정해진 연사들이 연달아 하는 발언을 수동적으로 듣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집회는 총회(General Assembly)이다. 그들은 집회에서 모든 주제에 대해 스스로 발언하고 스스로 결정한다.


새로운 운동은 앞에 놓인 장애를 모두 극복해낸다. 뉴욕시 당국이 맨하튼에서 확성기의 사용을 금지하자, 시위참가자들은 “민중의 마이크(people's microphone)”라는 소통방식을 개발하였다. 발언하는 사람이 짧게 이야기 하면 이를 다른 시위대들이 따라하여, 서로의 의사를 다른 이들에게 전달한다. 이러한 소통방식은 한국에서는 “소리통”이라고 불리는 매우 익숙한 것이다.

새로운 운동은 배우면서 투쟁한다. 그들은 세상에 대해, 스스로가 행하고 있는 이 운동에 대해 다 아는 것처럼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열공모드이다. “Teach-in”이라는 거리강좌를 마련하여 그들이 고통받는 모순의 본질을 이해하고자 노력한다. 10월 4일부터는 “학습강화(Education and Enpowerment)”라는 위원회를 만들어 강좌를 기획하고, 매일 저녁 6시 공개포럼을 개최하고 있다. 9월 22일에는 공산당선언을 읽는 거리강좌를 진행하기도 하였다.

노동자계급의 투쟁과 결합하는 점거운동


“월가를 점령하라” 운동은 점점 더 노동자계급의 투쟁과 결합되고 있다. 가장 큰 결정적 계기는 10월 5일이었다. 이날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대와 조직 노동자들의 대규모 시위가 진행되었다. 총 15개 노동조합 조직에서 참여한 2만명이 대규모 시위를 진행하였다.

뉴욕의 노동자들은 10월 14일 경찰의 점거운동 탄압을 분쇄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경찰은 이날 오후 6시 리버티 광장을 철거하겠다고 통보하자, 조직노동자들은 오후 5시까지 광장에 모이라는 지침을 내렸고, 십만명의 대오가 타임스퀘어에 집결하여 경찰의 철거를 철회시켰다.

이와 함께 “월가를 점령하라”운동은 노동운동과의 연계를 위해 “노동연락위원회”를 구성하였고 현재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노동자투쟁에 결합하고 있다. 다른 도시의 점거운동 역시 “노동연락위원회”가 구성되고 있다.

소더비 경매장 하역노동자 해고에 맞선 투쟁

소더비 경매장은 지난해만 7억7400만달러의 수입을 벌어들였다. 그러나 비용절감이라는 명목으로 노동자의 연금을 없애고 이곳에서 일하는 43명의 운수노동자를 해고한 후 이 업무를 외주화하려고 하였다. 이에 맞서 팀스터 814지회는 점거 시위자들과 함께 소더비 경매 방해, 이사진이 경영하는 레스토랑 타격 등의 투쟁을 전개하였다.


버라이즌 노동자 투쟁에 대한 연대


버라이즌은 미국의 거대 통신회사로 버라이즌 노동조합은 이미 8월, 임단협 개악에 맞서 두주간 파업을 한 바 있다. 버라이즌은 2010년 한해에만 100억 달러의 이윤을 냈지만, 노동자들에게 10억 달러 규모의 양보를 요구하고 있다. 10월 20일, 월가의 시위자들은 버라이즌 노동조합의 투쟁에 연대하여 함께 투쟁하였다.

10월 25일부터 시작된 탄압


10월 24, 25일을 기해 미국의 자본가계급은 점거운동에 대한 대대적 탄압으로 돌입하였다. 오클랜드, 애틀란타, 올랜도, 샌디에고에서 시위자에 대한 연행과 점거장소에 대한 철거가 경찰에 의해 자행되고 있다.

탄압과 함께 거대한 저항도 시작되었다. 경찰의 침탈을 받은 각지에서는 긴급집회 등이 개최되고 경찰의 탄압을 규탄하는 저항이 조직되었다.


또 다른 투쟁의 중심이 된 오클랜드와 11월 2일 도시 총파업


오클랜드는 이 저항의 중심이 되었다. 25일 오후 대대적인 거리시위가 전개되었고, 경찰은 최루탄과 섬광탄, 고무총으로 잔인한 탄압을 진행하였다. 이 과정에서 평화운동에 매진하던 참전용사인 스콧 올슨이 머리에 최루탄을 맞아 혼수상태에 빠지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10월 26일, 오클랜드의 점거시위 참가자들은 시청 앞 오스카 그랜드 프라자를 재점거한 후, 총회를 열어 1,484 대 46으로 11월 2일 오클랜드 도시총파업을 결의하였다. 1946년 도시총파업의 경험을 가진 오클랜드가 이제 “월가를 점령하라” 운동의 새로운 장을 여는 순간이었다. 11월 2일 오클랜드 총파업은 노동자계급의 대대적 참여와 지원으로 성공할 수 있었다. 교사, 항만노동자, 보건노동자 등 무수한 지역의 조직노동자들이 도시 총파업을 조직하고 지지하였다.

이제 도시 총파업은 새로운 투쟁방식이 되었고, 점거운동에 새로운 에너지를 부여하고 있다. 댈라스의 점거운동은 오클랜드의 길을 따라, 11월 30일 도시총파업을 계획하고 있다.

이것은 자본주의를 넘어선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려는 노동자계급의 투쟁이다!

“월가를 점령하라” 운동, 많은 한계가 있다. 참가자 구성의 다종다양함, 조직구조, 지도부, 명확한 요구의 부재 등의 한계가 거론된다. 조직노동의 경우에는 민주당을 지지하는 성향, 운동을 통제하려는 조합상층부의 경향 등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여전히 99%가 겪는 고통의 원인이 자본주의에 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자각하지 못하고 금융자본의 탐욕과 부패에 얽매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를 뚫고 대중은 자신의 목소리를 찾고 있으며, 행동에 나서고 있다. 노동자계급은 점거운동의 곳곳에서 시기시기마다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고, 노동자계급 기층에서부터 노동운동은 점거운동 과정에서 살아나고 있으며, 99%를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있는 원인은 바로 자본주의에 있음을 자각해가고 있다. 제국의 그늘 밑에서 무기력하게 신음하던 신민이었던 미국의 노동자계급이 전진하고 있다. 그들은 한달만에 전세계적인 운동을 창출해낸 것이다.

이제는 미국 노동자계급의 전진에 대해서 우리가 답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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