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 15일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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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 치료제를 만들 수 없는 자본주의, 스스로 치료도 불가능한 자본주의
김광수  ㅣ  2015년 7월 15일



정권의 무능이 낳은 참사, 메르스

6월초부터 나라를 뒤흔든 메르스 공포가 7월이 넘어서야 잦아지기 시작했다. 그 동안 수십명이 목숨을 잃고 일시적이라도 격리되었던 사람이 2만 명을 넘어섰으며 병원들이 문을 닫았다. 중동국가도 아닌 곳에서 메르스로 수십 명이 죽은 곳은 이 나라가 유일하다는 사실, 그리고 사태를 이 지경으로 내몬 주원인이 감염자가 나온 병원 이름을 꼭꼭 숨기고 어물쩍 사태를 봉합하려던 무능과 불통에 있었다는 사실 때문에 사람들의 분노는 끓어올랐다. 더욱이 단일병원으로는 세계최대병원이라는 삼성서울병원과 복지부 관료들의 유착이 사태를 더욱 약화시켰다는 사실은 말 그대로 이 사회의 민낯을 아주 낱낱이 보여주었다.

무능한 정권에 맞서 사람들은 자구책을 강구했고, 이 틈에 박원순과 같은 영민한 축들은 대중의 분노와 불안감을 대변해 정치적 관심을 끌기도 했다. 모두가 불행해도 몇 명은 행운을 줍는 경우가 있기 마련이다. 수십 명이 사망하고 심지어 메르스 때문에 폐업한 병원까지 나왔지만 정권과 공무원에게는 언제나 다행스럽게도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조금씩 공포와 분노를 잊어간다. 그래서 아이들은 다시 학교로 가고 지하철은 붐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일상은 순식간에 복원되었지만 메르스사태가 보여준 자본주의 체제의 취약성은 쉽게 가려지지 않는다.

질병에 취약한 체제

메르스 참사가 일어나자 인류역사에 등장했던 역병-전염병 때문에 인간사회가 격어야 했던 커다란 변화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등장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격변에는 전염병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식이다. 아테네나 로마도 전염병으로 멸망했다는 주장도 그 중 하나다. 허나 이는 관념적 주장이 대게 그렇듯 지나친 비약이다.

인류가 가축을 기르기 시작하고 점점 많은 숲을 뒤지고 다니면서 스스로 면역이 되지 않은 세균이나 바이러스를 만나 전염병이 유행한 일은 여러 번이다. 그리고 그런 전염병이 늘 체제를 위협한 것도 아니다. 특정시기에 전염병이 그렇게 큰 결과를 낳은 것은 단지 사람들이 질병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거나 위생관념이 부족해서가 아니라-사실 우리는 언제나 그랬다-체제가 그러한 질병에 의해 사회 한쪽이 무너져 내릴 만큼 내부모순이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대개는 불평등과 빈곤, 그리고 취약해진 지배계급의 도덕적 기강, 혼란 등이 원인이 되었다. 메르스 사태에서 이 나라가 보여준 것이 바로 그런 것이다. 메르스가 강력해서가 아니라 보수골통들이 집권하고 있는 이 체제가 너무 취약했을 따름이다.

전염병 치료제를 만들 수 없는 체제

이번 메르스 사태를 보면서 가장 경악스러운 일은 지구에서 이 메르스 치료제가 나올 확률이 “0”에 가깝다는 사실일 거다. 이미 메르스가 코로나 바이러스의 일종이라고 그 정체가 알려졌고, 그리고 충분한 기술이 있음에도 치료제가 나올 가능성이 없다고 한다.  

메르스 치료제가 나오지 않는 까닭은 제약회사들이 치료제를 만들어 돈 벌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즉 치료제 개발과 생산도 이윤을 위한 개발과 생산이기 때문이다. 제약회사들이 몇 년 전 사스가 유행할 때 약 좀 팔리겠구나 생각하고 수십억 달러 들여서 치료제를 만들었더니, 얼씨구 이놈의 사스가 갑자기 사라졌다. 덕분에 제약회사들은 쪽박을 차게 되었다는 전설 같은 사실은 메르스 치료제의 “치”자도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진짜 이유다. 세상은 넓고 전염병은 많아도 치료제로 돈 버는 건 쉽지 않다. 적어도 200만 명 쯤 감염이 되어, 마트에서 하니버터칩 찾는 것처럼 사람들이 치료제를 구하려 아우성을 쳐야 제약회사가 돈을 벌 수 있다.

자본주의에서는 모든 것이 똑 같다. 필요에 의한 생산이 아니라 이윤을 위한 생산이기 때문에 인류의 필요가 뒷전으로 무시된다. 그래서 아무리 좋은 자본주의 국가라도 이 법칙을 거슬러 무언가를 이룰 수는 없다.

근본적인 치료제가 없는 것은 자본주의체제 또한 마찬가지다

2008년 세계공황때 이미 확진판정을 받았고, 상태가 불안정해진지 꽤 오래된 이 자본주의체제는 치료제가 없는 메르스 환자에게 하듯 증상을 완화시키는 일에만 매달리지 근본적인 사태해결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다. 돈을 찍어서 빚을 갚고, 이자를 내려서 빚 부담을 덜고, 그 짓도 안 통하면 만만한 채무국가 팔을 비틀어서 연금 깎고, 보조금 줄이고 세금 늘려 빚 갚게 하는 게 불안정한 환자, 자본주의체제에게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치료, 아니 관리 조치다.

노동자를 두들겨 패서,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노동조합도 약화시켜서, 자기들에게 덤빌 수 있는 세력들을 모조리 짓밟아 지들 멋대로 세상을 만들었다가 공황이 터진 거다. 이제 와서 가계소득이 높아져야 한다느니, 내수중심의 성장을 해야 한다느니 하며 근본적인 치료가 가능한 것처럼 말하는 건 기만에 불과하다.

그들의 주장이 헛소리라는 것은 불황 때 사회적으로 분배가 개선된 적도 없고, 분배가 개선되지 않으니 그들의 논리대로 경기가 회복될 리도 없고, 갑자기 호황이 올 가능성도 없다는 것이다. 현재의 생활조건이 개선될 것이라는 희망으로 사람들을 움직일 가능성, 즉 점진적 개량의 가능성은 자본주의체제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오로지 절망과 분노, 그리고 행동만이 세상을 바꾸는 근본적인 동력이 될 것이다. 아직도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어서 세상이 바뀔 거라고 믿는 많은 사람들에게 메르스는 또 한 번 자각의 망치를 내리쳤다. 돈이 주인인 세상에서 주인의 목을 조르지 않는 한 돈 때문에 막힌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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