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28일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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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보수는 왜 다문화를 선택했는가: 다문화정책을 통해서 본 보수의 대한민국 기획
정재국  ㅣ  2015년 5월 28일


2008년 이명박이 들어선 이후, 아니 사실은 그 이전부터, 대한민국 보수들은 “다문화”라는 보기 좋은 탑을 쾌 오랫동안 쌓아 올렸고, 대한민국 보수-우파들은 “다문화”를 소리 높여 외치기 시작했다. 이 책은 ‘다문화주의’라는 이념을 들고 보수들이 완성하려는 대한민국의 모습은 무엇인지, 그들은 어떤 목적으로 다문화주의를 정책을 통해 주입하려 하는지 말하고 있다. 또한 보수-우파가 지향하는 ‘다문화주의’가 비교적 폭넓은 이념적 스펙트럼의 어디쯤에 자리 잡고 있는지 이야기한다. 그리고 진보-좌파들이 앞으로 만들어 가야 할 다문화주의의 또 다른 모습에 대해서도 함께 다룬다. 이 책은 요즘 익숙한 “다문화” 담론을 탐색한다는 점에서 신선하지만, 김대중-노무현을 진보좌파로 인식하는 자유주의적 틀을 넘지 못한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닌다.

지난 2010년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자국의 다문화 정책이 실패했음을 천명했다. 2011년 영국의 캐머런 총리 역시 같은 주장을 했고, 뒤이어 프랑스의 사르코지도 기존의 다문화 정책에 대한 비판적 입장의 논평을 냈다. 이처럼 유럽 각 국이 다문화 정책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인 반면 이명박이 들어선 후 보수-우파들이 들고 나온 다문화 정책이 시나브로 자리잡았다. 특히 다문화 정책은 이명박의 핵심 아젠다였고 주류 언론과 방송을 통해 다문화 특집을 쏟아낼 정도였다.

2008년은 보수-우파 논객들의 화두는 민족해체였다. 뉴라이트를 중심으로 격렬하게 진행된 민족사 논쟁, 영어 공용화, 영어 집중 교육과 직간접으로 연결되었던 민족어 논쟁은 큰 그림을 놓고 보면 한승수 총리가 일갈한 ‘민족 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과 다르지 않다. 이명박이 시작한 한자교육과 동아시아 연대, 현대사 교과서, 뉴라이트와 국사학계의 지난한 논쟁 후 한국사를 선택과목으로 바꾼 일 등은 모두 ‘민족해체’로 귀결되었다.

민족해체와 다문화 정책과 관련해서 눈에 띄는 것은 삼성경제연구소의 활약이었다. 2008년 삼성경제연구소는 당시 10대 트렌드의 일곱 번째 항목으로 ‘가정과 사회의 다문화 및 글로벌화’를 꼽으며 다문화 및 글로벌화가 어떤 방식으로 사회에 뿌리 내리고 있는지를  주목할 만한 사회현상의 하나로 설명했다. 이후 삼성경제연구소는 ‘다문화’를 ‘비용’의 측면으로 접근하면서 값싼 외국인 노동자를 채용하면 기업의 투자 여력이 늘 것이고, 그러면 신규 고용 창출이 확대될 것이라고 보았다. 이무렵 삼성경제연구총서 시리즈의 하나로 민족 담론 해체를 주장하는 책도 발간 됐다. 민족과 민족주의, 이제 버릴 때가 됐다는 주장을 정리한 책이다.

보수-우파들은 글로벌화(세계화)의 현상의 하나인 다문화 담론을 강력한 이데올로기로 변신시키고, 이러한 담론을 선점하고 실천해왔다.

이에 지은이는 “새로운 다문화주의”를 요구한다. 그것은 우리라는 공동체를 만들어서 “차별없고 정의로우며 차이 속에 연대의 실천 가능성” 등이다. 의자놀이 게임할 때처럼 한 바뀌 돌때마다 한사람씩 쫓아내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비용이 들더라도 모두가 앉을 수 있는 의자를 놓자고 하는 것처럼. 지은이가 말한 보수-우파가 다문화를 선택한 이유와 그것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사실과 근거로써 말하며, 진보-좌파들에게도 조언을 잊지 않았다.

그러나 지은이의 면밀하고 세심한 분석임에도 그 분석에는 계급적 한계를 갖고 있다. 보수-우파가 지배를 위해 선택한 것은 비단 “다문화”뿐이 아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지배를 위해 선택되고 이용된 후 이것저곳으로 옮겨 버린다. 그들의 본성이 그렇고, 그것이 자본주의이다. 또한 이명박-박근혜 10년과 그 이전 김대중-노무현을 보수-우파와 진보-좌파로 구별 짖고 서로 대립적으로 놓는 것은 심각한 오류이다. 그들은 단지 야당에서 여당으로 다시 야당으로 위치이동만 했을 뿐 진보-좌파 정부라 일컬을 수 있는 근거는 손톱의 때만큼도 없었다.

이주민의 이동은 비단 한국적 상황은 아니다. 이주민의 입장에서는 더 나은 삶터, 더 나은 일자리를 찾아 때로는 생명을 각오하고서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로 밀려들어갔다. 그러나 자본가들의 입장에서 이들은 저임금의 노동자이자, 노동자들을 지배하기 위한 분할통치의 수단일 따름이다. 따라서 저들의 다문화주의를 넘어서는 것은 새로운 다문화주의는 자유주의적 윤리의 호소가 아니라 결국 노동자들의 국제적 단결, “노동자국제주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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