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연금투쟁 만감(萬感)

정부와 자본가들은 공무원 노동자들의 ‘공무원 연금 개악 저지 투쟁’을 ‘귀족노조’ 논리로 매도했다. 즉 부도덕한 세력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세금으로 부족한 연금을 요구하여 국민들의 부담을 늘리고, 그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미래 세대에게도 감당 불가능한 짐을 넘겨주는 것이라는 논리이다. 그렇게 한 이유는 먼저 공무원연금을 삭감해야만 국민연금을 삭감할 명분과 근거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야는 공무원연금 개악 조건으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50%로 인상하는 것에 합의했다. 이는 양쪽이 서로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즉 공무원노조 및 공투본은 실질적 개악을 인정하면서도 명분확보(자기 것은 내어주고 받을 것은 공수표로 받은 것)를 하는 것이었다. 또한 정부의 입장에서 당연히 노동자들의 투쟁의 동력을 없애고 분열을 시키기 위해 공수표를 주고 현찰을 받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은 국민연금 도입시 70%에서, 99년에 60%로 낮추어졌고, ‘07년 다시 50%로 낮추어졌다. 그리고 ’09년부터 매년 0.5% 떨어져 2028년부터 40%로 낮출 예정이었다. 따라서 공무원연금 개악 합의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합의는 누가 보아도 정부의 협상전술에 불가하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는 일이었다. 훨씬 등치가 크고 재정부담이 많은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10%씩이나 올려 줄 수 있다면, 굳이 공무원연금 개악할 이유가 없다. 이는 삼척동자가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이러한 결과는 이미 예견된 것이다. 자본가들과 정부가 사회보장제도를 가장 먼저 도입하는 부문은 그 사회에서 가장 힘 있고 조직이 잘된 곳이다. 그래야만 노동자들의 저항을 막고 분열정책을 통하여 자신들의 지배를 공고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연금은 노동자들의 분할 통치의 좋은 수단이다. 연금은 군인, 공무원, 사학, 국민연금, 기초연금 등 나뉘어져있고 거기다가 분야별, 기업별, 개인별로 임금차이에 따라 매우 세분화 되어있다. 또한 기본적으로 고소득자에게 유리하며 비정규직, 저소득자에게 불리하다. 젊어서 좋은 직장에 다녀서 월급 많이 받은 사람들이 늙어서도 더욱 많은 연금을 받기 때문이다. 따라서 약간의 소득 재분배 기능이 있더라도 마치 개인 저축과 같은 기능을 하면서 현재의 연금은 노동자들의 연대와 통일을 갈라놓는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왜 노동자에게 사회보장이 필요한가?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지금의 연금투쟁이 노동자들 자신의 확고한 논리에 기반한 전략과 전술이 없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공무원연금 투쟁에서도 확인되는 것이지만, 자본가 정부가 주도하는 범주, 프레임, 페이스에 말려들어 겨우 방어하기에 급급하다 보니, 결국 노동자들의 투쟁의 성과물들인 사회보장제도들이 언제나 자본가들에 의해 다시 빼앗길 수밖에 없는 처지로 내몰리게 된다. 마치 매일 매일 바위를 굴려 정상을 향하지만 다음날이 되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고 마는 시지프스의 신화처럼 말이다.

자본가 정부의 모든 방해와 분열책동을 돌파하고 노동자들을 하나로 단결시킬 수 있는 제대로 된 논리가 필요하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사회보장을 요구할 정당한 권리가 있음을 확산시키고 이를 통하여 전체 노동자들을 단결시킬 수 있는 구체적 요구를 걸고 대정부 대자본가와 싸울 수 있는 전선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마치 집을 지을 때 먼저 확고한 기반 공사가 제대로 되어야만 그 위에 집을 튼튼하게 지울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 민중들이 사회보장이 필요한 까닭은 자본가들의 착취에 의해 모든 잉여가치가 자본가들의 손에 넘어가기 때문이다. 즉 노동자들이 이 사회의 모든 재화와 서비스는 창출하지만 노동자들에게는 겨우 입에 풀칠하고 생계를 유지할 정도의 생활수단이 주어지기 때문에, 사회보장이라는 사회제도를 통해 노동자의 삶을 일정수준 보장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자본가들의 노동자 착취가 사회보장이 필요하게 된 근본원인이라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노동자들의 자기 임금 일부를 따로 떼어 사회보장을 마련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애초 노동자의 임금으로는 인간다운 삶이 어렵기 때문에 사회보장이 형성된 것이다. 또한 사회의 모든 부는 노동자들이 생산한 것이며, 자본가의 호주머니 속에 있는 돈은 노동자가 생산한 부를 착취한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들을 위한 사회보장에 필요한 비용은 자본가와 국가의 호주머니에서 나와야 한다. 이것은 자본가들이 착취해간 노동자들의 땀과 결실을 다시 노동자를 위해서 쓰라고 요구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이런 생각의 전환만으로도 우리는 다른 투쟁을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