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8일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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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1년
혜진 고려대 학생  ㅣ  2015년 4월 8일
편집자주 ㅣ 이 글은 4월 16일 세월호 1주기 추모제와 18일 범국민대회에 참여한 한 대학생이 집회 참여과정에서 겪고 느낀 바를 정리한 것이다.

세월호의 1년

세월호 이후 1년이 흘렀다. 세월호 참사는 사회 문제가 비극적으로 드러난 사건이었다. 그리고 1년 동안 세월호가 다뤄지는 모습 또한 그랬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직후에는 분명 슬픔과 추모의 물결이 일었었다. 하지만 1년이라는 시간 동안 비극에 대한 슬픔은 ‘과한 것 같다’는 여론으로 조금씩 변해왔다.

이윤논리는 300여명의 생명을 죽음으로 몰았고, 국가는 이를 구해내지 못했다. 문제를 해결할 때는 원인을 진단하여 책임을 묻고, 이후 같은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그 원인을 없애야한다. 하지만 이를 요구하자 정부는 진압과 연행으로 반응했고, 책임을 묻기 위한 특별법 요구에는 ‘유가족들의 과도한 이기주의’라는 반응이 돌아왔다. 여타 다른 사회 문제들이 다뤄질 때처럼,‘무리한 요구’, ‘정치적’이라는 프레임이 씌워짐으로써, 사람들은 ‘안 됐지만 이건 너무 했다’던가, ‘정치적인 문제니까…’라며 판단을 유보하고 시선을 피한다. 1주기를 맞아 다시 나선 것은 이러한 이유였다.

“함께 행동하자”

학교에서 몇몇이 모여 대자보를 썼고, 피켓팅을 하며 지나가는 학생들을 향해 소리쳤다. “세월호에서 드러난 사회 부조리들을 해결하기 위해 함께 행동했으면 합니다.”라고.


추모만 하는 데 그치고 싶지 않았다. 세월호는 이윤논리에 의해 침몰했고, 이는 기업비용절감을 위한 규제완화를 통해 가능했으며, 해경과 기업의 유착으로 원활한 구조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윤논리, 규제완화를 하는 정부의 가치관, 유착이 가능케 한 구조를 돌아보아야 한다고 얘기하고 싶었다.

그리고 ‘정치적인 문제’이기에 더욱 판단하고 말해야한다고 얘기하고 싶었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함께 행동’해야 한다. 물론 집회에 몇십 명을 더 데려간다고 해서 이윤논리가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세월호가 이윤논리에 의한 참사임을 ‘알리고’, 우리의 ‘알림’에 의해 사람들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기를 바랐다. 그리고 집회에 참여하여 자기 사고의 결론을 이야기 하는 ‘정치적’ 경험을 한다면, 그 사람에게 집회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계기를 갖게 된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이 변화를 위한 ‘함께 행동’의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함께 행동”의 현실

그렇게 오십여 명이 모였고, 함께 시청광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문화제가 끝나고 행진을 시작하자마자 가로막혔다. ‘모여서 목소리를 내고 함께 행동하는’ 계기를 경찰은 가로막았다.

차벽이 온 거리를 가로막고 있었고, 경로가 막혀 고착되자 모여있던 사람들은 하나둘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남은 사람들은 다른 경로를 찾으려 이리저리 분산되었고, 온통 막아놓은 거리 곳곳에서 경찰과 소모전을 하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허탈하게 해산해야만 했던 4월 16일을 뒤로하고 18일 다시 시청을 찾았을 때에도, 여전히 차벽이 가로막고 있었다. 18일에는 광화문 현판 아래 고립된 사람들을 향해가자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음에도, 목표로 향하는 사람들에게 최루액과 물대포가 쏘아졌다. 온 힘을 다해 ‘목소리’를 막는 국가와 경찰 앞에, 할 수 있는 게 없어 허탈해지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이윤논리가 만연하게 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역할을 한 국가는, 그 이윤논리가 사람들의 생명을 위협할 때 지켜주지 못했다. 그리고 그 잘못을 인정하지도 않은 채, 몇 기업의 문제로, 몇 개인의 문제로 책임을 전가하기에 바빴다. 그리고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들은 차벽과 물대포·최루액으로 가로막았다. 분노는 집회 당시보다 집회 이후에 더 커졌다. 경찰은 ‘폭력시위로 변질되었기에 차벽을 사용했다’며 거짓 발표를 했고, 언론은 집회를 가로막는 경찰의 모습을 비추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다. 이윤논리가 큰 비극을 일으키고도 건재하고, 정부가 막나갈수록,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욱 ‘해야 하는 일’에 힘을 쏟아야 한다. 함께 분노할 한명 한명에게 설명하고 설득하는 일, 함께 행동할 한명 한명에게 계기를 만들어주는 일, 그렇게 우리 편을 하나씩 모아, 분노를 경찰에게 소모적으로 쏟아내는 것이 아니라 정부와 이윤논리를 향해 쏟을 수 있는 조직적인 행동으로 이어내는 것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 하는 일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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