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8일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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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자치시대의 늪
김광수  ㅣ  2015년 4월 8일



“지조” 상실의 시대

19세기 말 프랑스 사회당의 밀레랑이 파리코뮌의 학살한 부르주아 정부의 장관으로 입각을 한 사건, 소위 밀레랑 스캔들은 당시에는 사회주의자들 사이에 광범위한 논쟁을 일으켰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일이 끊임없이 일어나게 되었고, 이러한 부르주아 정부로의 입각, 혹은 참여를 정당화하는 논리 역시 계속 등장했다.


허나 부르주아 정부에 참여한 사회주의자들, 혹은 진보정당 인사들의 변명은 그다지 다채롭지 않았다. 하나 같이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에 들어가야 한다는 식이었다. 그들이 잡으려는 호랑이가 무엇인지 조금씩 다를 뿐이었다. 그중에 제일 많이 언급되는 것 중의 하나가 진보는 행정에 무능하니, 행정을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말인즉 행정이라는 호랑이를 잡으러 부르주아 정부로 들어간다는 것이었다.

2,000년 민주노동당 활동이 본격화되기 전까지는 소위 재야인사들로 불리던 이 땅의 민중운동인사들은 부르주아 정당에 합류하는 일을 별다른 양심의 가책도 없이 척척 해냈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이 건설되고 지방정부 등에서 일정한 성과가 나타나면서, 보수정당에 빨대를 꽂는 일은 한 동안 사라졌다.

그런데 2008년 민주노동당이 해체되고, 소위 야권연대가 횡횡하면서 시계가 거꾸로 돌아가기 시작하였다. 과거에 민주대연합을 말하던 사람은 물론이고, 나름 독자노선을 주장하던 사람들도 너도나도 야권연대에, 그리고 야권이 집권하고 있는 기관에 들어가 일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풍토가 조성되었다. 더욱이 진보교육감이 대거 등장한 작년부터 너도 나도 교육청이니 구청에 진보교육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별정직 공무원들이 되시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노선의 구별을 무의미하게 한다. 

세상이 바뀌어야 교육이 바뀐다

지금 제기되고 있는 교육의제―특권학교 폐지, 입시제도 철폐 등―이 보수, 진보로 무 자르듯 구별되지 않고, 다소 애매한 부분이 있는 건 사실이다. 즉 교육의제에서 진보와 보수가 현재의 정치판도와는 다소 다른 점이 있다. 이것은 교육의제가 갖고 있는 특수성이기도 하거니와 현재 제기되고 있는 교육의제가 계급정치와 결합시키기에는 치열함이 부족하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당당히 별정직 공무원들이 된 이들의 사고에는 교육의제가 계급을 뛰어넘는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는 식의 사고가 자리 잡고 있는 듯하다. 결국 이들에게는 교육이 바뀌어야 세상이 바꾼다는 생각이 지배적인 것이다. 그러나 미안하게도 세상이 바뀌지 않는 한 교육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

경험적으로 소위 ‘진보정치’가 빠지는 늪 중 하나는 의회정치에서 입법활동이고, 다른 하나는 지방정부 차원에서의 행정만능주의이다. 입법활동(법안을 통과시키는 것)에 빠져 원래의 독자법안을 수정해 소위 타협안을 만들다가 게도, 구럭도 모두 잃는 일이 허다했었다. 단병호 의원이 비정규직 법안에 수정안을 제출했다가 사실상 정치경력이 마무리되었던 일이 단적인 예다. 그런가하면 공무원파업 때 시원하게 공무원징계를 거부한 이갑용구청장의 예가 모범사례로 회자될 만큼 진보정당 출신의 지자체 장이 행정에 눌려 정치를 잃어버리는 예가 흔했다. 

민중의 자치역량이 교육문제 해결의 중심

행정에 대한 사회주의자, 아니 적어도 대안사회를 지향하는 사람들의 기본적인 태도는 모든 것을 권력의 문제로, 그것도 민중과 노동자계급의 권력, 즉 자치역량을 강화하는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점이다.

사회주의자들에게 국가에 대한 기본전략은 국가소멸, 즉 행정의 소멸에 있다. 우리가 국가의 소멸을 말할 때 우체국이나 소방서를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폭력적인 국가기구를 없애겠다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남은 행정기구에 관료기구를 그대로 답습하겠다는 것도 아니다. 민주적인 통제와 참여, 그리고 민주적 의사결정을 확대하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보수정당이 집권하고 있는 지자체나, 교육청에 참여해서 무언가를 도모하는 행위는 사람들에게 보수정치 하에서도 교육문제만 똑 부러지게 이야기하는 놈만 있으면 교육문제는 해결된다는 식의 환상을 본인들 스스로가 제공하는 것이다. 만약 교육의제가 계급의 문제도 제치고 추구해야 하는 더 중요한 목표라면 그렇게 해야 하겠지만, 교육문제는 결국 계급투쟁의 문제로 귀결된다는 게 진실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교육문제에서 사태를 결정짓는 것은 민중의 자치역량이고 민중이 교육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든다면 함부로 늪과 같은 자리로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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