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8일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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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사회주의, 그 길을 묻다 (2)] 노동자계급 속의 사회주의 조직을 향하여
이용덕 혁명적노동자당건설현장투쟁위원회 회원  ㅣ  2015년 4월 8일
편집자주 ㅣ 자본주의의 위기가 심화되고, 자본주의가 노동자 민중의 인간다운 삶과 더 이상 양립할 수 없게 되어가고 있다. ‘사회주의냐 야만이냐’는 사회주의의 오랜 구호가 절심함을 얻고 있는 엄중한 역사적 시기인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한국의 사회주의 운동은 미력한 상태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사회주의자들 사이의 활발한 토론과 소통 역시 드물어진지 오래이다. 사회주의 정치신문 <해방>은 이러한 상태를 타개하고 사회주의자들의 다양한 고민을 자유롭게 개진할 수 있는 지면을 마련하였다. 이 지면은 조직에 속해 있든 개인으로 활동하고 있든 상관없이 “한국 사회주의, 그 길을 묻다”라는 주제로 다양한 사회주의자들의 목소리를 담고자 한다. 우리의 시도가 사회주의 운동의 일보 전진을 위한 계기가 되길 바란다.

다가오는 기회

현재의 쇠퇴기 자본주의는 여러 사회 부분에서 야만적 퇴보를 보여주고 있다. 세월호 참사는 극명한 사례다. 어떤 전망도 찾을 수 없는 일부 젊은이가 IS 같은 반동적 집단에 기대를 걸고 있는 모습도 쇠퇴기 자본주의의 야만성을 매우 잘 보여준다. 깊어지고 있는 경제위기, 팔리지 않고 산더미처럼 쌓인 채 낭비되는 재화, 단지 자본주의 사회의 반동성 때문에 생산의 도구로 사용되지 못한 채 고철더미가 되어 가는 무수한 생산 설비, 수많은 실업자 등은 자본주의가 이제 낡았다는 사실을, 다시 말해 사회주의 사회에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는 점을 명백히 보여준다. 이 점을 부정하는 사회주의자들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사회주의 변혁은 오직 노동자계급이 그들 고유의 계급적 이익을 위해 의식적으로 투쟁함으로서 성취될 수 있다. 사회를 부양하고 있는 노동자계급만이 사회 혁명을 수행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 노동자국가를 다른 사회세력들이 창조할 수는 없다. 노동자계급은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투쟁에서 다른 사회계급, 집단들과 동맹을 맺는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은 자신의 고유한 이해관계를 자각해야만 한다. 만일 사회변혁의 결과를 사회주의 방향으로 이끌고자 한다면, 반드시 노동자계급의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투쟁을 지도해야 한다.

노동자계급 혁명정당은 그러한 변혁을 위한 첫 번째 전제조건이다. 역사상 그 어떤 계급도 운동을 조직하고 지도할 능력이 있는 정치적 지도자들, 자신의 선진적 대표자들을 배출하지 않고 권력을 획득한 적은 없다.

한국의 사회주의 조직들은 혁명정당 건설을 위해 분투해 왔다. 하지만 우리가 보기에 사회주의 정치세력들은 노동자계급 속에서 충분한 영향력을 획득하지 못했고 어렵게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회주의자들은 민주노동당, 통합진보당의 실패를 얘기해 왔지만 그동안 가장 철저히 실패한 세력은 혁명정당 건설을 주장했던 사회주의자들이 아닌가.

물론 97년 총파업 이후 계속된 계급투쟁의 침체가 혁명정당 건설 운동에 부정적 영향을 크게 미쳤다. 계급투쟁이 가라앉아 있는 시기에는 선진노동자들의 사회주의 자신감과 용기도 약해질 수밖에 없고 따라서 당건설 운동도 탄력을 받기가 어렵다. 그동안 민주노조운동은 조합주의, 실리주의에 깊게 물들어갔다.

이러한 객관적 요인들이 진정한 혁명적 노동자당 건설을 가로막고 있다. 그러나 객관적 요인들만을 탓할 수는 없다. 사회주의 조직들은 객관적 조건이 만들어 낸 어려움에 맞서기 위해 지금까지 펼쳐왔던 시도보다 훨씬 더 많은 시도를 해야 한다. 지금은 야만이냐, 사회주의냐의 문제가 회피할 수 없이 던져지는 위기의 시대다. 기존의 실천을 반복만 하고 능동성을 발휘하지 않는다면 위기의 시대에 그냥 휩쓸려 갈 것이다.

자본가계급이 노동자계급을 향해 점점 더 공격을 강화할 수밖에 없도록 자본주의 체제 자체가 몰아붙이고 있기 때문에 이곳저곳에서 노동자투쟁이 부활하고 있다. 최근 노동자계급은 중국, 남아공, 방글라데시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자신의 잠재력을 드러내왔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자본가계급 편에 서 있는 개량주의 정치세력은 이 잠재력을 억누르려 애쓴다. 경제위기가 심각해 자본가계급이 ‘개량’조차 쉽게 허용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개량주의 세력은 더 빨리, 더 노골적으로 노동자계급을 배신하고 있다. 이러한 노동자투쟁의 부활과 개량주의자들의 배신을 보며 점점 더 많은 대중이 새로운 대안을 찾을 것이다.

작지만 의미 있는 대안으로 서기 위하여

명실상부한 노동자 계급정당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첫째, 노동자계급의 해방을 달성하고 노동자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노동자계급적 강령을 마련해야 한다. 사회주의자들에게 유일하게 현실적인 강령적 기초는, 1917년 러시아혁명의 전통 및 볼셰비키 지도자인 레닌과 트로츠키의 전통 속에 있는 맑스주의 사상이다. 이 사상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강령을 정립하려고 노력해 온 사회주의 조직들이 있다. 사회주의 조직들 사이의 강령 논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 논쟁은 정체 상태다. 강령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더 높은 이론적 능력만이 아니라 노동운동 속의 실천 경험이 더 많이 축적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여전히 약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혁명적 투사들이 노동운동에 미치는 범위와 영향력은 아직 대단히 협소하다. 조합주의 압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속에서 자신의 정치를 숨기며 노동조합 뒤로 숨는 일이 많다.

그러나 이런 어려움을 이유로 혁명적 이론을 갈고 닦지 않는다면, 정치적 강령에 입각하여 노동자 투쟁에 개입하지 않는다면 사회주의 세력은 노동운동에 대한 즉자적 개입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결국 조합주의 세력으로 퇴보할 것이다. 지금도 사회주의자들이 크고 작은 투쟁을 이끌고 있고 중요한 투쟁에 개입도 하고 있지만 그 경험을 이론적이고 정치적인 방식으로 일반화시키는 사례는 많지 않다. 당면한 계급투쟁의 수위, 사회주의 운동이 노동대중 속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의 정도를 침착하게 고려하면서 뜬구름 잡는 허황된 논의가 아니라 현실적인 방식으로 강령에 대한 논의를 활성화시킬 필요가 있다.

둘째, 현장투쟁 및 일상적 삶에서 노동자다운 원칙과 면모를 일관되게 실현하는 최상의 노동자투사들을 결집시켜야 한다. 현장투쟁에서 배신을 저지르거나 최소한 존경을 불러일으킬 수 없을 만큼 약점을 드러낸 사람들이 당건설 운동의 구심이 될 수는 없다. 수 년 때로는 수십 년에 걸쳐 일관된 헌신성과 희생성을 발휘하며 노동대중의 존경과 지지를 끌어낼 수 있는 헌신적인 노동자 투사들이 노동계급의 정당을 건설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에선 극소수의 선진노동자들만이 사회주의 운동에 뛰어들고 있다. 사회주의 활동가들의 다수는 인텔리출신이기도 하다. 현장의 많은 노동자들은 아직도 사회주의 운동을 현장과 분리된 소수 인텔리들의 운동으로 받아들이곤 한다. 이 약점을 극복하지 않는다면 당건설은 불가능하다. 현장 노동대중 속에서 노동자의 힘을 발전시키기 위해 분투하는 투사들을 노동해방의 노선아래 결집시키지 않고 당건설 일정을 짜는 것은 엔진도 없는 자동차를 출발시키려는 무모한 계획이다.

셋째, 사회주의 조직은 노동대중과 긴밀히 결합하고 노동자투쟁을 계급투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실천적 지도력을 갖춰야 한다. 노동자운동의 실질적 발전과 분리된 정치운동은 결국 선거주의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노동자의 계급적 단결과 투쟁을 조직하고 승리로 이끌 수 있는 지도력이 필요하다. 물론 지금 당장은 그 지도력이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노동자투쟁의 모범을 조금이라도 창출하고 실질적인 총파업을 비롯해 노동자계급의 총단결투쟁을 조직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준다면 선진노동자들은 사회주의자들을 다르게 볼 것이다. 지금 강력한 힘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아무런 현실적 실천 전망도 갖지 못한 세력은 아니라고 존중하기 시작할 것이고 혁명정당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시작할 것이다.

사회주의자들의 진정한 단결을 위해

“작은 오류들이 하나로 모인다고 진실이 되지는 않는다. 노동해방 경향이 노동운동 내의 극소수로 남아있는 시기가 있다. 그러나 이 시기는 소규모 그룹들이 서로의 죄를 덮어주면서 협잡을 부리는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진정한 노동해방 사상에 입각하여 올바른 전망을 수립하고 중핵들을 교육시키는 두 배나 비타협적인 투쟁을 요구한다. 이 길을 통해서만 승리가 가능하다.”(1929년, 트로츠키)

우리는 여전히 트로츠키가 말한 이 원칙을 견지해야 한다고 믿는다. 당장 오늘 내일 눈에 보이는 성과와 화려함의 유혹에 빠지지 말고 긴 호흡으로 사회주의 운동의 토대를 닦고 노동대중 속에서 진지하게 활동할 수 있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말이 한 두 조직의 힘만으로 당건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거나 노동해방 경향을 종합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또한 대중에게 다가가는 길을 찾지 않고 고립 속에서 자족감을 느끼는 써클주의를 의미하지도 않는다.

사회주의 정치를 더욱 분명히 하고 투사들의 조직을 건설해 나가면서 원칙적 통일성에 의해 서로가 연결될 수 있는 길을 찾아나가야 한다. 그 일의 중심에는 사회주의 대의에 헌신할 수 있는 선진노동자들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현장과 분리된 상층 중심의 당건설 운동을 바꾸어 낼 수 있고 나아가 사회주의 조직들 간에 존재하는 원심력도 노동자대중 속의 실천과 검증으로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수많은 탄압과 고난을 이겨내며 침체의 시기를 버텨 온 사회주의자들의 힘은 결코 작지 않다. 위기의 시대에 요구되는 노동운동의 새로운 과제를 기꺼이 떠맡을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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