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29일 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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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주도 성장론은 우리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유승민 세미나네트워크 새움 회원  ㅣ  2015년 4월 29일



최근 정부도 야당도 “임금을 올리자!”, “소득을 증대시키자!”라는 구호를 연일 외치고 있다. 어찌 보면 늘 각을 세우던 사람들이 한 목소리를 낸다는 것이 이상하게 보이기도 하겠지만, 다르게 보면 한국 경제가 매우 어렵다는 위기감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봐야할까? 소득을 올려준다는 것을 마냥 반겨야만 할까? 이것은 늘 그렇듯 허울좋은 명분일 뿐이지 않을까? 그리고 이것은 노동자 대중에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인가?
 
1. 소득주도 성장론이란 무엇인가? 

우선 소득주도 성장론이란 어디에서 나온 것이며 무엇을 주장하는 것일까? 이것은 ILO(국제노동기구)에서 2012년에 발표한 보고서에서 본격화되었다고 한다. 이 보고서에서는 임금에  기반한 성장이 지속적이고 안정적임을 주장하였다. 소득 분배가 잘 되면 경제 성장에도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즉 임금 상승으로 소득 분배가 개선되면, 이것은 소비의 증대로 이어지고, 이것은 기업의 수익성도 개선시켜 경제가 성장할 수 있다.(자세한 내용은 한국노동연구원 국제노동브리프 2012년 12월호 참조) 

이러한 선순환 구도의 핵심은 바로 소득 분배의 개선이다. 우리가 늘 접하는 낙수효과와 같이 “경제가 성장해야 분배도 좋아진다.”라고 하며, 자본가 측을 옹호하는 주장과는 정반대인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분배 문제를 강조하는 소득주도 성장론은 포스트-케인즈주의 경제학을 그 이론적 근거로 삼고 있는데, 이것은 성장과 분배의 관계에 주목하여 자본주의의 불안정성을 강조하는 비주류 경제학계의 일파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이러한 소득주도 성장론이 본격적으로 제기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

바로 2007년에 미국에서 시작되어 세계적으로 여전히 진행 중인 경제 위기 때문이다. 이들은 경제 위기의 원인을 신자유주의 체제 하에서 분배 불평등이 심화되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즉 신자유주의 시대에 노동시장의 파괴적인 자유화로 인해,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은 거의 오르지 않아서, 소득분배가 악화되고, 이로 인한 총수요 부족은 기업의 투자와 수익성을 악화시켰다. 다른 한편 경제의 금융화로 인해 소비지출을 위해 빚내는 것이 쉬워지면서, 부채는 날로 늘어나고 더불어 금융 산업의 수익성이 높아졌다. 그런데 이것은 금융 산업으로 자본이 과도하게 몰리게 되는 원인이 되었으며, 결국 생산 부문의 침체는 더욱 심화되었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분배의 불평등은 기업의 수익성 악화와 경제 침체로 이어지는 (선순환의 반대인) 악순환의 핵심 고리였고, 금융화로 인한 부채 증가는 이 악순환을 더 심각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즉 소득 주도 성장론은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한 대안으로서 이런 악순환을 바로 잡는 정책으로 제시된 것이다.
 
 

2. 소득주도 성장론의 이론적인 문제점


소득주도 성장론의 경제 위기 진단과 처방은 한편에서는 그럴듯하게 보인다. 자본주의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점인 불평등이 위기를 낳았고, 이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불평등을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하니 말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이것은 경제 위기에 대한 진정한 설명이 아니며, 따라서 위기에 대한 진정한 대안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러면 소득주도 성장론의 논리적 문제는 무엇일까?

우선 그것의 위기 진단의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다. 소득의 불평등이 경제 위기의 원인이라는 주장은 ‘과소소비 공황 이론’의 핵심적인 주장으로서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과소소비 공황 이론’은 일부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을 비롯하여 여러 입장의 자본주의 비판가들이 주장해 온 이론이다. 말 그대로 공황의 원인은 소비 부족이며, 소비 부족의 원인은 소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임금 노동자들이 일한 만큼 벌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불평등, 즉 노동자들이 일한 만큼 벌지 못하는 일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며, 우리가 보기에 이것은 자본주의의 고질적인 문제점이다. 그렇다면 경제는 항상 위기 상황에 빠져있게 된다. 즉, 과소소비 공황 이론은 ‘영구적인 공황 상태’를 주장하는 것으로서, 반복적이고 폭발적으로 일어나는 공황의 원인을 해명할 수는 없다. 따라서 크게 보아서 소득주도 성장론의 위기 진단 역시 이런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이번 위기에 대하여 불평등이 원인인가에 대해서는 반대로 그렇지 않다는 실증 연구들도 많이 제시가 되어있다. 즉, 자본의 축적률이 독립 변수이며 임금은 종속변수라는 마르크스의 설명대로, 경제위기의 원인은 자본 축적의 부진이며, 불평등은 이러한 축적 부진의 결과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 성장은 자본이 주도하는 것이지, 사람들이 소비를 많이 해서 주도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자본주의적 위기의 본성 역시 자본의 과도한 축적 경쟁의 결과이며, 소비 부족은 그로 인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3. 소득주도 성장론의 가능성


소득주도 성장론과 더불어 최근에 여러 입장에서 불평등 문제를 강조하는 사람들의 공통점 중 하나라면, 바로 1960년대 자본주의를 이상적인 모델로서, 불평등의 감소와 경제 성장이 선순환을 이루었던 시기로서 보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앞에서 말했듯이, 이 시기의 소득 증대 역시 2차 대전 이후 경제의 비약적인 성장의 결과였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의 경험 및 냉전이라는 조건하에서 자본가에 대한 노동자 계급의 힘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노자타협’을 통한 임금 상승이 가능했다는 점이다. 즉 60년대의 좋은 시절이란 단순히 소득의 증가가 경제 성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때문이 아니라, 아주 특수한 역사적 조건하에서 가능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특수한 상황에서 가능했던 것을 일반화할 수는 없는 일이다.

(위기 진단의 문제점과 함께) 이러한 소득주도 성장론의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현재와 같이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임금 인상은 노동자 대중에게는 좋은 대안이 아닐까? 하지만 문제는 어떻게 임금을 올릴 것인가 혹은 현재 임금을 올릴 수 있는 조건이 되는가라는 점이다. 현재 한국 경제의 상황에서 말하자면, 정부에서 연일 소득주도 성장을 외치며 각종 정책들을 내어 놓고 있지만 기업이 그것에 따르지 않는다면, 혹은 임금을 올렸는데 내수가 살아나지 않는다면, 그 정책은 허울뿐일 것이 되지 않겠는가? 가계 부채의 부담이 늘어가는 상황에서 부채를 부담하면서 소비도 늘어나기 위해서는 얼마만큼 임금 인상을 해야 할까? 기업이 임금인상을 하도록 여러 유인 정책을 펴고 있는데, 기업들이 앞날이 캄캄한데도 과연 임금을 올려줄 것인가?  

이러한 여러 가지 당면한 현실적인 문제들과 더불어 생각해보아야 할 더 중요한 문제는 이미 언급했듯이 임금 인상이란 문제는 계급 문제라는 점이다. 이미 소득주도 성장론을 정부가 발표했을 때, 주류 언론들의 비판은 어떤 면에서는 사유재산(사적 이윤)의 침해에 대한 분노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우리가 마르크스를 따라 생산에 만들어진 부가가치는 노동의 산물이며, 임금은 그 일부로서 노동할 수 있는 능력을 재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부분이며, 기업의 이윤이란 바로 노동자의 잉여노동(착취)이라는 사실을 인식한다면, 임금 인상이란 정부의 유인 정책으로도, 어떤 선한 자본가의 노자 상생 경영의 산물일 수 없다. 이것은 바로 빼앗긴 것을 다시 되찾아오는 재분배의 문제이자, 가치가 생산되는 생산과정을 장악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는 더 나아가 자본의 과도한 이윤 추구 경향을 제약하는 문제와 관련되어 있기도 한 것이다.

자본주의 경제의 위기는 자본주의의 내적인 모순에 의한 것이며, 그 위기의 대안은 그 모순을 일시적으로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것에 있다면, 임금 인상이란 문제를 단순히 재분배를 통한 경제 회복(성장)의 수단으로서 여기는데 그치지 말고, 자본주의를 넘어갈 수 있는 반(反)자본주의적인 대안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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