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18일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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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갑과 을”, 그리고 “잉여”의 시대 : 노동계급은 어떻게 악마화 되는가?
『차브(CHAVS) : 영국식 잉여 유발사건』을 읽고
현수  ㅣ  2015년 3월 18일


차브』는 영국에서 마가렛 대처 이래 영국의 하층 노동계급이 어떻게 악마화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리포트다. 먼저 ‘차브’라는 단어는 ‘급증하는 무식쟁이 하층계급’이란 뜻으로써 노동계급을 가리키는 모욕적인 단어에 해당한다. 굳이 한국의 상황에 예를 들자면 과거 “OO폐인”이라든가 최근의 “잉여”라는 단어가 이와 유사한 위치일 것 같다. 저자 오언 존스는 이와 같은 모욕적인 언어의 사용이 그저 우연한 현상이 아니라 뿌리 깊은 불평등으로부터 비롯되었음을 증명하고 추적하고 있다.

당장 특정 계층을 악마화하여 불평등한 사회를 정당화하려 한 행위는 역사에서도 비일비재하게 나타나지 않는가? 출생의 우연에 따라 최상층과 바닥이 좌우되는 사회의 불평등을 감추는 데 있어 한없이 경멸해야 할 대상이 있다는 건 지배계급으로서 너무나도 효과적이고 합리적인 은폐수단이다. 문제는 이런 인식을 조장하는 데 함께한 이들을 눈 여겨 봐야 한다는 것이다.

오언 존스는 단도직입적으로 중간계급의 당으로 전락한 영국 노동당이 이와 같은 악마화에 동참해왔음을 지적하고 있다. 즉 강력한 대처리즘의 철퇴 아래 노동조합 중심의 집단적 행동에 대한 뿌리깊은 적대감이 포퓰리즘과 함께 등장하며 노동계급의 부정과 악마화로 연결되었다는 거다. 자수성가와 경영을 중시하고 기업가의 나라(칠레의 아옌데 정권을 무력으로 전복시킨 피노체트의 구호)로 향하는 신자유주의적 질서 아래 영국 노동당은 노동계급의 전사이기를 포기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마가렛 대처가 꿈꾼 ‘스스로 책임지는 개인’이란 이데올로기가 영국 전역을 뒤덮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연장선 상에 바로 ‘차브’가 존재한다. 과연 영국 노동당만이 이러한 이데올로기에 편승하였을까? 오히려 주요 언론과 미디어를 장악하고 있는, 실제 스스로를 중간계급이라 생각하는 이들의 강력한 적대감이 강경하고 집단의 힘으로 행동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혐오감을 증대시켰다. 언론과 정치 및 사회를 움직이는 문화적 힘까지 모든 것이 노동계급의 적이었다.

저자의 말처럼 영국은 조작되었고 산산조각 났다. 대처리즘의 여파 속에 탄광이 폐쇄된 지역은 “그냥 죽어버렸”다. 공동체는 붕괴하였고 거대한 불황 앞에 노동계급의 삶 자체가 파탄지경으로 내몰렸다. 탄광에 의지한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고 불안정한 직업이 증대함에 따라 인간관계가 파탄 났으며 반사회적 행동과 비관주의, 절망감이 영국에 넘쳐 흐르게 되었다.

그러나 이를 두고 데이비드 캐머런과 같은 보수당 정치인은 이런 종류의 사회문제가 산업의 붕괴가 아닌 정부의 지나친 비대로부터 비롯되었다 비난하며 개인적 책임의식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회의 문제는 개인이 문제로부터 비롯되었고, ‘차브’가 나타난 건 사회구조의 문제가 아닌 개별 성품과 자질, 개인적 특성으로 비롯됐다는 주장 앞에 우리는 묘한 기시감을 느껴야 한다. 청년들이 실업에 놓여있는 건 높은 눈높이 때문이라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발언과 청년들이 뭘 할 줄 몰라서 스펙 만드느라 시간 낭비한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이 딱 그 짝이다.

요즘 유행하고 있는 ‘갑과 을’, 그리고 ‘잉여’라는 표현으로 돌아와 보자. 끝없이 사회적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치환시키고 심지어 스스로를 비하하는 방식으로 고통을 체내화하는 이 사회의 현실이 ‘차브’란 단어로 엿볼 수 있는 영국의 상황보다 낫다고 볼 수 있을까?
2013년 기준 근로소득이 있는 1636만 명 중 31.3%가 세금을 낼 정도로 돈을 벌지 못하는 등 저임금이 만연하고 양극화가 심각하다는 건 언급하지 않은 채, 세원 기준이 높아 돈을 못 걷는다는 언론의 말장난을 꿰뚫어 보자. 청년을 위한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노동유연화를 하되 월급은 올려주겠다는 지배계급의 말 뒤에 산산이 쪼개져서 각개격파 당했던 앞선 노동계급의 패배를 상기하자. 저자의 말처럼 우리가 짚고 넘어갈 건 ‘갑과 을’, 그리고 ‘잉여’라는 편견이 아니라, 그러한 편견을 낳는 근원, 편견이 뿜어져 나오는 연못 그 자체다. 우리는 그것을 다른 말로 ‘자본주의’라고 부른다. 문제는 ‘자본주의’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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