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18일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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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버의 ‘공유경제’를 떠받치는 주문형 노동자들
오승은 서울대 인류학과 대학원  ㅣ  2015년 4월 29일

 


작년 한 해 미국에서 가장 화제가 된 기업을 꼽으라면 단연 ‘우버(UBER)’일 것이다. ‘차량 공유’ 앱 서비스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이다. 여기서 ‘차량 공유’란 자기소유의 차량이 없이도 스마트폰 앱으로 가까운 차량 소유자를 호출해 원하는 운수서비스를 받는 경험 과정을 이르며, 이때 호출자이자 승객이 지불한 운임의 20%가 우버의 중개료로 떨어진다. 공유의 아이디어보다는 앱 하나로 주문과 결제, 차종과 운전자 선택까지 가능하다는 점이 기존 택시 이용자들을 우버로 끌어들였다.

2009년 설립된 우버에게 2014년은 공격적인 몸집 불리기의 해였다. 진출한 도시 수가 전 세계 60여개에서 250여개로 늘어나는 동안 우버의 행보는 작은 인터넷매체와 지역신문에서부터 유력 일간지, 비즈니스 잡지에 이르기까지 매체와 섹션을 가리지 않고 줄줄이 보도되고 또 논평되었다. 그 정점은 연말에 타전된 돈잔치 소식이었다. 우버가 구글벤처스, 골드만삭스, 대형헷지펀드들의 투자를 유치하면서 비상장기업으로 기업가치 401억 달러(약 43조 원)를 기록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택시사업은 경영자 및 종사자 자격, 수급조절, 안전관리, 요금 등과 관련해 당국의 관리감독과 법의 규제를 받는다. 교통 공공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 때문이다. 그러니 간단한 앱 등록만으로 차량 소유자가 사실상의 택시영업을 할 수 있게 한 우버의 사업모델은 2012년 뉴욕을 시작으로 미국, 유럽, 아시아의 진출 도시들마다 불법성 논란을 야기했고, 2014년 그 중 많은 도시들에서 소송, 벌금, 영업금지 결정이 이어졌다. 서울시도 우버 영업 차량에 대한 신고포상제를 시행 중이다.

불법성 논란이 해소되지 않은 가운데 자금조달에 성공해 자신감을 얻은 우버의 공동설립자 겸 CEO 트래비스 칼라닉은 지난해 우버 반대 목소리가 가장 뜨거웠던 곳인 유럽에서 2015년 5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공언했다. 참고로 최근 우버의 데이터를 제공받아 작성된 프린스턴대 경제학자 앨런 크루거의 보고서는 정기적인 영업 상태가 확인된 우버기사가 미국에 16만 명이 넘는다고 발표했다. 16만이라면 과연 자랑할 만한 규모가 아닌가. 그런데 2014년 1월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CEO 칼라닉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했다. 당시 우버의 고용규모가 550명이며, 연말까지 직원 수를 천 명까지 늘릴 계획이라고 밝힌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그렇다면 16만 명은 어떻게 된 거지?

눈치챘겠지만 이때의 우버 직원은 우버 사무실에서 일하는 공공정책 및 홍보 담당자, 마케터, 소프트웨어 개발자 등의 엘리트 노동자들을 말한다. 이들과 달리 전 세계에서 우버에 실질적 수익을 가져다주는 수십만 명의 우버기사들은 우버에 정식 고용되지 않는다. 우버가 프로그램화한 규정과 하달하는 정책에 따라 영업을 하고, 실적 미달 시(승객 별점 4.7 미만) 해고(앱 이용 ‘비활성화’)되기까지 하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우버에게 우버기사는 무엇인가? 실제 처지는 어떠한가? 일단 우버기사들은 우버 사업모델의 공공연한 불법성 때문에 제도 바깥에 머무는 생산부대의 처지라서, 이들의 수익과 노동조건 등의 문제는 통계나 법망에 유의미하게 잡히지 않는다. 우버기사의 이야기는 ‘새 경제의 선구자’로 칭송되며 우버 관련 데이터를 독점하는 CEO의 입을 통해 발표될 때 가장 주목을 받기도 한다. 이 모든 상황은 우버기사의 수익이 부풀려지고 현실이 그럴싸한 말로 은폐되는, 그리하여 계속해서 새로운 우버기사를 끌어 모으는 배경이 된다.

먼저 수익과 관련해 최근 우버가 발표한 미국 우버기사의 연간수익은 북동부 4분기의 실적을 기준으로 계산되었는데, 이 기간은 명절휴일과 기상여건 탓에 해당지역의 교통수요가 가장 많은 기간이자 이를 이유로 우버가 요금인상 정책을 펴는 호기이므로 연간수익이 부풀려졌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순수익이 계산되는 방식도 베일에 가려져있다. 한편 우버기사들이 모인 인터넷게시판(특히 구직자를 위한 기업평가사이트)에서는 긴 계산목록과 함께 각종 비용 공제 시 손에 쥐는 돈이 하루 6~12달러 선이라는 풀타임 기사의 경험담이 쉽게 발견된다. 이러한 수익 공개는 ‘우버기사가 되면 시간당 25달러를 번다’는 홍보문구를 직접 겨냥하고 있다.

우버는 우버기사를 ‘우버의 파트너’이자 ‘마이크로 기업가’라고 부른다. 그러나 저 근사한 호칭은 우버기사들이 피고용자가 아닌 개인사업자로 분류된다는 사실을 나타낼 뿐인 언어 곡예에 가깝다. 개인사업자라는 분류는 기업 측을 최저임금, 기본급, 보험, 유급병가, 퇴직금의 부담은 물론 까다로운 해고와 노조로부터도 해방시켜주는 법적 근거가 된다. 한국에서 학습지교사, 택배기사, 덤프트럭기사 등이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과 유사하다. 우버의 경우, 회사는 앱 프로그램과 각종 정책을 통해 우버기사들을 효과적으로 지휘통제를 하면서도 이들의 개인사업자 지위를 이용해 사업의 귀찮은 문제들을 이중삼중으로 떠넘긴다.

이러한 열악한 처우에도 불구하고 앞서 소개한 크루거의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에서 우버기사의 증가폭은 계속 커지고 있다. 우버 투자자들이 불법택시 스캔들을 무시할 수 있었던 이유도 이 점에 있다고 해야겠다. 노동력이 풍부하다면 무엇도 걱정할 게 아니다. 우버와 에어비엔비의 ‘공유경제’ 테크놀로지는 2008년 금융위기의 덫에 빠진 미국사회에서 정체된 가계소득을 벌충할 기회로 부상했으며, 이러한 상황은 고용지표의 회복에도 불구하고 평균임금이 감소한 최근에도 유효하다.

그렇다면 ‘공유경제’의 테크놀로지가 청소 대행을 중개하는 ‘핸디북’이라든가 세탁물 회수와 개 산책 같은 허드렛일의 대행을 중개하는 ‘태스크래빗’의 서비스로 변주되었다는 사실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제 법률서비스와 의료상담서비스에도 ‘공유경제’의 테크놀로지가 이용되고 있으며, 컴퓨터 작업을 자잘한 디지털업무 단위들로 쪼개 여러 작업자에게 저가에 할당하는 ‘아마존 메키니컬 터크’는 아마존의 가장 유명한 서비스로 자리 잡았다. 이쯤 되자 ‘공유경제’ 예찬자들은 기존의 이름표에 더 미련을 두지 않고 ‘주문형 경제’라는 새 이름표를 달아 새롭게 미래를 낙관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현실에서 우버가 매달 2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우버의 자화자찬은 ‘공유경제’를 소유냐 공유냐의 문제가 아닌 노동 유연성의 진화 문제로 이해할 것을 요구한다. 말하자면 ‘공유경제’의 확산은 실질임금이 감소한 사회에서 자본가가 다음과 같이 노동자를 다그치는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너에게는 일할 수 있는 시간이 하루 24시간이나 있지 않느냐고. 수입이 부족하다면서 왜 휴식시간을 갖느냐고. 돈을 더 벌 수 있는데도 왜 너의 집을 생면부지의 관광객들에게 나눠주지 않느냐고. 그리고 이 다그침들은 자본가의 다음의 속마음에 기인할 것이다. 왜 노동자를 하루 8시간씩 365일 내내 고용해야 하지? 필요한 순간들에만 고용하자. 아니 노동시간이란 개념을 없애자. 급료는 월급과 시급의 개념이 아니라 주행거리나 화장실 청소와 같이 작업성과에 따라 주면 된다. 가격은 철저히 수요공급에 맡기자. 

이렇게 ‘공유경제’의 계획은 전통적인 일자리의 의미를 깨부술 준비를 한다. 이 새로운 노동경제에는 일자리는 있어도 커리어와 수익예측이 없고 노동시장에는 주문형 생산부대가 부유한다. 뉴욕대 경영대학원의 아르준 순다라얀 교수는 “노동력 한 조각이 수익을 발생시키는 하나의 포트폴리오가 되는 미래”에 우리는 우버기사인 동시에 에어비엔비의 호스트이고 태스크래빗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미국의 일부 주문형 노동자들은 이제 그러한 미래를 완강히 거부하고 나섰다. 거부 방식은 그들이 이용하는 테크놀로지에 비해 매우 전통적이게도 바로 집단소송이다. 이들은 우버, 핸디북, 그리고 디지털업무 대행을 중개하는 ‘크라우드플라워’를 상대로 집단소송을 걸어 피고용자 지위 인정과 최저임금법 준수를 요구하고 있다. 특히 우버기사들의 집단소송은 2014년 요금인하 정책에 항의해 시위와 파업을 조직하고 LA와 시애틀에서 노조를 설립한 경험을 발판삼고 있다.

아직 한국의 우버 논쟁은 ‘택시 대 우버’의 대결구도에 머물러있다. 유념할 것은 ‘공유경제’가 벌이는 싸움을 산업 대 산업, 자본 대 자본의 싸움만으로 봐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가령 미국에서는 빈곤한 유색인 이주자가 많은 택시기사들이 택시사업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고 그에 맞선 투쟁도 이어가고 있다는 상황에서 택시업주 대 우버의 싸움은 택시기사들의 싸움을 은폐하고 기만하는 ‘백만장자 대 억만장자’의 싸움이 되기도 했다.

끝으로 우버 논쟁이 노동자들간의 갈라치기가 되어서도 안 된다. 현재 우버의 사업모델은 스마트폰과 신용카드를 소유한 노동자들이 ‘차량 공유’를 즐기는 승객이 되고, 수입 벌충을 위해 우버기사로 나선 노동자들은 별점평가를 의식해 승객에게 필요 이상으로 봉사하면서 적은 급료만을 받는 구조로 짜여있다. 이러한 우버의 구상 속에서 우버기사와 승객 간의 연대는 원천 차단된다. 그러나 우버기사들의 열악한 처우는 결코 테크놀로지 발전에 따른 불가피한 결과가 아니다. 우리는 우버와 같은 기업들에게 첨단기술을 더 많은 정규직 일자리를 창출하고 실질임금을 높이며 소비자들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사용하라고 함께 요구해야 한다. 우버기사들이 허울뿐인 파트너가 아니라 대화와 상생의 파트너가 되어야 하고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점을 우버가 배울 때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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