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27일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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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창극의 망언에서 또 다른 제국주의를 읽는다.
방세진  ㅣ  2014년 6월 27일

우리는 축구 한일전에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이겨야 되는 국민정서를 가진 나라다. 월드컵에서도 한국 경기 다음으로 일본(이 지길 바라는) 경기가 관심있다. 하지만 식민사관 교학사 교과서에 친일파 후손 대통령... 이런 자기부정이 넘치는 미친 사회에서 우리나라의 식민주의 성격을 부인할 수 있는가? 우리는 여전히 식민지 사회, 혹은 그에 준하는 사회, 그런 논리가 통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몇 일전, 총리 후보자가 내던진 말,

“하나님은 왜 이 나라를 일본한테 식민지로 만들었습니까, 라고 우리가 항의할 수 있겠지, 속으로. 아까 말했듯이 하나님의 뜻이 있는 거야. 너희들은 이조 5백년 허송세월 보낸 민족이다. 너희들은 시련이 필요하다.”

“일본으로부터 기술을 받아와가지고 경제개발할 수 있었던 거예요, 지금 우리보다 일본이 점점 사그라지잖아요,그럼 일본의 지정학이 아주 축복의 지정학으로 하느님께서 만들어 주시는 거란 말이에요.”(연합뉴스)

우익 기독교적인 표현이 들어있긴 하지만, 그의 말은 종교와 큰 상관없이 현세적인 한국 자본주의 기득권세력의 인식과 별반 다름이 없다.

보통의 경우, 식민지에는 제국의 자본과 기술과 문화가 직접 들어와 그 사회를 지배하고, 그러한 직접 통치가 먹히지 않을 경우 식민 제국은 자신의 입맛에 맞는 세력(식민지근대화론자)들을 찾아 지배한다. 그러다 식민지에서 독립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면 잠깐 멈칫하다 독립을 허용하지만, 이내 곧 식민 모국의 영향 하에 있는 식민 토착 지배세력이 식민모국의 언어와 근대화 논리, 기득권을 들이밀어 사회를 지배한다.

대개 해방된 나라라 해도 자본이나 기술력이 떨어지고 경제구조는 그대로이기 때문에, 독립 이후의 자본주의 발전은 옛 식민제국 및 그에 협력했던 세력이 합세해서 사회를 지배한다. 아프리카, 아시아의 독립 이후의 근현대사는 이에 크게 다를 바 없다. 식민지 국가는 독립을 해도 종주국들에 여전히 예속적인 경우가 많다. 한국 시민사회가 대안으로 여기고 있는 프랑스 사민주의 사회가 있는데, 아프리카 국가들의 각국 지배세력들은 프랑스의 정치-군사력에 매우 예속적이다. 즉, 프랑스는 미국에 버금가는 제국주의 세력이다.

그런데 우리는 약간 궤가 달랐다. 우리는 형식적으로 일본 식민지로부터 독립했다. 그러나 해방이후 냉전시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일본 식민지에서 미국의 영향권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미국은 일제에서 영향을 받았던 한국 지배층들을 그대로 불하받았다. 그래서 우리에게 조금 더 퇴행적인 부분이 존재한다. 한국의 지배층들은 일제 식민사관을 유지했다. 여기에 더해 미국의 정치, 경제뿐 아니라 정신적 지배 하에 놓이게 된 것이다. 그래서 해방 60년이 지났지만 식민 역사 청산도 한 번 없이, 지금껏 어처구니없는 일제 식민사관 + 미국 찬양론을 주입받은 지배계급이 한국을 지배해온 것이다. 총리후보자 문창극의 말에서 그들의 인식을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은 겉으로는 반일을 외치지만, 뼛 속 깊은 곳까지 친일-친미적 식민사관, 즉 그들이 외세 지배자들에 순응했던 논리를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독립운동가들의 피어린 투쟁에서 해방의 논리를 찾지 않고, 민족비하 외세찬양 사관에 젖어있는 것이다. 대한민국 자본가들이 이야기하는 한국 자본주의 신화(박정희 신화)는 실상 따져보면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 개발론 + 미국 마셜 플랜'의 한반도 버전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기독교는 그럴싸한 양념으로 논리를 제공하는 것 뿐.

이런 식민사관은 강한 자의 지배와 강한 자에 대한 굴종을 정당한 것으로 말한다. 이런 사고를 따르면, 강자만이 최고이고 그렇지 못한 자들은 ‘루저’로 전락하고 만다. 그리고 쉽사리 또 다른 지배의 논리로 바뀌고 만다.

이제 한국의 자본주의로 넘어가보자. 삼성, 현대, LG 등의 한국 자본은 이미 미국 제국주의가 주도하는 세계 자본주의 질서의 하위 동맹자로써 이익을 보고 있다. 전세계 곳곳에 팔리는 한국 백색가전, 자동차, 선박 등을 떠올려보자. 그리고 동남아에서 갖은 노동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한국자본들을 떠올려보자. 국지적으로는 더 강한 제국의 눈치를 봐야하지만, 세계경제질서에선 한국의 자본들은 이미 제국주의 논리에 순응할 뿐 아니라 경쟁력을 바탕으로 여기서 이익을 보고 있다.

문창극 총리후보자의 옛 일본제국주의 옹호론 이야기가 지금 또다시 나와서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실상 현재 한국 자본주의 시스템이 과거의 제국주의를 이미 실현하고 있다. 문창극의 사고에서 또 다른 제국주의를 엿본다. 끔찍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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