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27일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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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어용사전
말은 ‘어용’의 가장 유용한 수단이다
정기우  ㅣ  2014년 6월 27일

몇 해 전 파이낸셜 타임즈가 “위기 속의 자본주의”라는 주제를 특집으로 하여 다양한 부르주아 전문가들의 기사를 게재한 적이 있다. 이를 본 적지 않은 사람들이 놀라움을 표시하였다. 그 이유는 이 특집에 실린 글들 때문이 아니라 파이낸셜 타임즈가 ‘자본주의’라는 용어를 전면에 건 특집을 내걸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왜 이런 반응이 나왔던 것일까? ‘자본주의’, 우리가 살고 있는 경제체제를 일컫는 말이다. ‘자본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수단을 사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지배계급을 일컫는다. 그런데 정작 자본가들은 자신들이 지배계급인 체제를 자본주의로, 자신들을 자본가로 불리는 것을 꺼린다. 특히 자본주의가 잘 나가는 호황 때에는 그 정도가 더해져서 자본주의라는 말을 쓰기 어려울 정도이다. 반대로 자본주의가 공황에 빠졌을 때, 부르주아 언론에서 자본주의라는 용어의 사용 빈도가 증가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발생하곤 한다. 이러다보니 파이낸셜 타임즈의 “위기 속의 자본주의” 특집이 신기하게 보였던 것이다.

이처럼 말은 객관적인 사실을 전달하고 가치중립적인 것이 아니다. 우리가 평소 당연한 듯 쓰는 말이 사실은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를 반영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어찌보면 당연하게 들리지만 쉽사리 인식 못하는 사실을 깨우쳐주는 책이 바로 어용사전이다. 어용사전은 우리가 주위에서 많이 접하는 200개가 넘는 용어들에 대한 재치와 해학, 그리고 날카로운 비판이 담긴 설명을 담고 있다.

특히 “국민과 인민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을 위한 철학적 인민 실용사전”이라는 이 책의 부제가 의미심장하다. 우리는 한국사회라는 공동체의 성원을 지칭하기 위한 용어로 “국민”이라는 표현을 즐겨쓴다. 그러나 어용사전에 따르면, ‘국민’이라는 말은 사회구성원을 주체로 보지 않고 “국가를 구성하는 사람인 동시에 국가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로 보는 용어이다. 다른 나라와 다르게 유독 한국만 국민이라는 말을 무시로 쓰는데, 이는 언어생활 속에서 우리가 국가에 종속된 존재라는 생각을 주입받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처럼 지배의 언어는 강력한 것이다.

그러나 언어는 사회의 변화와 함께 변화한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된다. 이 책이 제목으로 쓰고 있는 ‘어용’이라는 용어 자체를 한 번 보자. 우리나라에서는 100년 전까지만 해도 어용이라는 말은 매우 좋은 의미이고 심지어 명예로운 것이었다. 우리나라가 왕이 지배하는 나라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어떤 명사에 어용이라는 형용사가 붙는다면 매우 부정적인 의미를 담게 되었다. 현재 우리가 민주주의 체제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현재 긍정적인 의미로 쓰는 용어의 상당수도 이런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지배적 사고를 담고 있기 때문에 긍정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의 사회를 변화시킨다면 현재 긍정적 용어는 완전히 반대의 의미를 지닐 수 있다. 어용사전은 우리가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쓰는 용어들이 사실 ‘어용’성을 담고 있다는 것을 보임으로써, 이런 가능성을 우리에게 미리 보여준다. 여러분들도 편한 마음으로 차근차근 한 단어씩 읽고 새겨보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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