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27일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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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민중의 저항의 월드컵에 연대하자
김광수  ㅣ  2014년 6월 27일

축복에서 재앙으로 바뀐 브라질 월드컵

20세기 후반부터 올림픽이나 월드컵은 천문학적 비용이 발생하고 이에 따라 지방정부파산을 일으키고 있다. 국제대회 유치를 국격에 연결시키고 싶은 지배계급에겐 불행한 일이고, 이상한 일이지만 사실은 매우 자연스럽고 당연한 결과다. 대회를 유치하며 경제성장이 촉진되고, 국격이 상승한다는 이데올로기는 왕성한 잉여(착취)수취를 해서 이것이 건물이나 시설에 고착되는 시기와 맞아 떨어지는 몇몇 나라를 제외하고는 새빨간 거짓말이 되었다. 올림픽이나 월드컵을 유치했던 거의 모든 도시나 나라가 재정적 부담을 안고 있다. 사실 전 세계 대부분 나라가 국민총생산 대비 나라 빚 규모가 100%가 훌쩍 넘어가는 상황에서 대규모 국제행사 주최는 민중들에겐 재앙을 초래할 뿐이다. 경기장이나 부대시설 건설은 택지를 필요로 하고, 그 택지를 우리 같으면 강남에서 확보할리 만무하기 때문에, 도심외곽의 허술한 동네가 표적이 되고, 그 표적에는 당연히 민중들의 거주공간이 있기 마련인 것이다. 없는 살림에 수십조를 쓰는 대회유치는 물가고와 주거비의 상승을 초래하고, 민중은 앉아서 도둑질을 당하는 기분인 것이다. 연인원 수백명의 저항의 월드컵은 일찍이 시작되었고, 대회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민중의 저항은 지속되고 있다.  

빚더미 국제대회가 자주 열리는 이유는?

사실 국제행사가대회가 정기화된 것은 박람회가 최초이다. 그리고 유럽에서 박람회가 개최된 이래, 국제적인 행사를 유치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부르주아에겐 유용한 결과를 안겨주었다. 기술은 부르주아의 휴대무기고, 과학은 부르주아의 연금술이었던 시절이었다. 박람회가 부르주아에게만 축복은 아니었다. 제 1인터내셔날 창립은 런던에서 열리는 박람회를 기회로 프랑스와 독일의 노동자가 영국을 방문하면서 시작되었으니 노동자도 국제 행사의 덕을 아주 안 본 것은 아니다. 
 
그런데 국제대회, 특히 스포츠 국제대회가 자주 열리게 된 것은 스포츠 자본의 성장과 TV중계를 빼 놓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파시스트들이 주도했던 무솔리니 시절의 이탈리아 월드컵과 히틀러 치하의 베를린 올림픽은 영상매체의 위력을 확인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특히 베를린 올림픽은 불세출의 다큐멘터리 감독인 레니 리펜슈탈을 등장시켰고 그녀는 스포츠를 가장 열광적인 영화의 주제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히틀러가 이를 이용해 나치 정권을 위한 선전도구로 썼던 건 당연한 귀결이었다. 이제 파시스트 정권을 대신해 막강한 자금력을 갖추게 된 거대 매스미디어는 광고주들을 유치하는데 스포츠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올림픽과 마찬가지로 상업화된 스포츠 경기는 홍보효과를 노린 기업들의 광고비 지출을 토대로 수지타산을 맞추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 이 와중에 특히 한해 수억달러를 지출하는 메머드급 스포츠클럽을 다수 보유한 피파는 노골적인 상술을 부려 천문학적인 소득을 올렸다. 그런 돈자치 굿판을 차리는 것은 역시 막대한 비용을 치루는 것임에도 나라마다 이 국제행사를 유치하기 위해 안달이었고, 그 동기는 무솔리니나 히틀러와 마찬가지로 국가주의의 강화다. 전쟁이 부르주아들이 일국내의 민족적, 국가적 반목을 부추겨 지배력을 강화하고 계급투쟁을 왜곡하는데 일조하는 것처럼, 운동장의 전쟁이나 마찬가지인 국가대항 스포츠를 유치하는 것도 그 만한 성과를 예상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건설업자, 지주들, 스포츠흥행사들, 광고회사들, 방송사, 이벤트 기획사 등이 연합해 유치활동에 몰두하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 

저항의 월드컵을 향해


브라질 월드컵은 우민화의 상징인 축구경기가 이에 수반되는 사회적, 경제적 비용을 감당하기 힘들어 사회 전체를 뒤흔든 최초의 사례는 아니다. 최근 소치 올림픽도 환경적 재앙을 우려하는 국내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고, 올림픽이나 월드컵 자체를 이러저러한 이유로 포기한 도시나 국가도 나오고 있다. 사적자본들이 국가의 조세를 수탈하고, 민중의 삶을 유린하는 일은 자본의 이윤율이 감소할 때 일어나는 당연한 현상이다. 그리고 이에 저항하는 민중의 투쟁이 날로 격화될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이제 월드컵이 끝나고 110억달러에 이르는 대회비용이 브라질 민중의 고혈을 뽑아 방탕한 축제의 안주거리가 되었다는 자각은 그것을 가능케하고, 강요하는 체제에 대한 저항과 투쟁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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