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1일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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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뢰찾기 게임 같은 최저임금살이에서 벗어나자
문창호  ㅣ  2014년 5월 1일

2010년에 처음 구한 직장이 한 공공기관의 시설관리 용역업체였는데, 월급은 이것저것 떼고 나면 110만원 정도 였던 것 같다. 중간에 대형마트로 직장을 옮기기는 했지만, 그 뒤로도 2년 넘게 시설관리 용역으로 일했다. 교대근무가 일상이라 밤샘작업도 적지 않게 하면서 전등 달기와 전원선 포설, 타일 교체, 변기 뚫기, 도장, 제초 등 온갖 일들을 해보았다. 이렇게 번 돈으로 매달 20만원씩 2년 만기 적금을 부어 500만원을 모을 수 있었다.


처음 모아본 저금이라 기쁠 줄 알았지만, 막상 한숨이 앞섰다. 다행히 큰 돈 나간 적 없고, 옷 한 벌 안 사 입고, 만성피로에다 피부에 자꾸 뭐가 놔도 병원에도 안 다녔는데, 2년 동안 모은 돈이 500만원이었다. 그사이 어디 집값이 몇천만원이 오르고 억을 버는 고액연봉자들은 십 몇만명이 늘어났다. 이대로는 월세신세 벗어날 길 없어 갑갑하고, 2년간 겨우 모은 돈이 누군가 한 달 벌이의 반에도 못 미친다는 생각에 한심스러웠다.


2014년 최저임금이 시간당 5,210원이고 주40시간 기준 1,088,890원이니 최저임금보다는 조금 나은 월급을 받아 왔다. 같은 장소에서 나보다 못한 월급을 받았던 이들은 청소용역업체 직원과 보안용역업체 직원, 비정규 판매직 정도나 됐던 것 같다. 청소에는 50대 여성, 보안에는 20대 남성, 판매에는 40대 여성이 많았는데 그 아주머니들과 동생들은 말 그대로 법이 정해준 임금을 받았다. 그중에는 가족의 생계를 도맡는 어머니나 학자금대출을 갚아야 하는 청년도 있었을 텐데, 짐작만으로도 아찔해 보인다. 저축은 생각하기도 힘들고 사고나 질병 같은 게 덮치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한발자국만 벗어나도 살아갈 길 없는 낭떠러지 위의 삶이 아닐까? 그런데 이런 삶을 버티고 있는 이들이 한 둘이 아니다. 노동자 4명 중에 1명은 아무리 일해도 빈곤을 면할 수 없다는‘ 워킹푸어’라고 한다.


워킹푸어가 이처럼 많은 이유는 법정 최저임금이 부당하게 낮아서이다. 세금 떼고 나면 백만원 남짓한 돈으로 생활해야 하는데, 이보다 조금 많은 월급으로도 지뢰찾기게임과 다를 바 없는 생활이었다. 가난은 감내해내더라도 실수나 사고로 큰 돈 드는 일이 생기는 순간 끝이 나버린다. 인생의 지뢰들을 다행히 피하더라도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는 그 사이에 물가도 최선을 다해 오른다. 마침내 운이 다하면 가난보다 무서운 실업과 병원비, 채권추심 같은 게 찾아온다. 실제로 최저임금이 자기 임금인 노동자들 다수가 비정규직이고 영세사업장 노동자라는 점에서 고용불안과 산업재해, 질병 같은 위험요인들에 심각하게 노출돼있고, 이런 현실을 외면하면서 노동자의 생활안정에 형편없는 노릇하고 있는 게 최저임금제도의 실상이다. 최저임금을 동결하라는 주장은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일이다.


최저임금위원회에서 2015년 최저임금을 심의하고 있다. 최저임금연대의 요구는 올해보다 28.6% 인상된 6,700원이다. 월급 기준으로는 1,402,000원이다. 노동자의 생활안정이라는 제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최저임금의 생활임금 수준으로의 현실화가 시급하다. 최저임금 현실화는 빈곤완화는 물론 양극화와 비정규직 축소에도 긍정적일 것이다. 저임금이 개선되면 비정규직을 사용할 유인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불평등이 경제발전을 가로막는다는 인식이 점차 널리 공유되고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최저임금 인상이 사회 이슈로 부상했다. 이러한 흐름을 더 넓고 깊게 만들어가야 하며, 사회를 바꾸는 새로운 상상과 요구로 도약하는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 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이 있듯이 기업 임원들에게는 최대연봉이 있어야 할 것이며, 생활임금을 보장해줄 수 없는 자본가는 소유와 경영을 내놓아야 할 것이고, 최저임금뿐만 아니라 다른 경제현안들도 전사회적으로 논의해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자, 이제 최저임금위원회 앞으로 모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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