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1일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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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엄한 비극, 초라한 희극] ′세월호′와 함께 침몰한 자본가 국가
박남일  ㅣ  2014년 5월 1일


1993년 10월 10일, 악화된 기상 여건을 무릅쓰고 서해 위도를 출발한 여객선 ‘서해훼리호’가 침몰했다. 그리고 탑승자 가운데 292명이 희생당했다. 물살이 거센 해역에서 급히 방향을 바꾼 게 사고의 직접적 계기였다. 그러나 사고의 주된 원인은 승선정원 141명 초과, 무자격업체를 통한 안전 검사 등이었다. 구조와 사고 수습 과정에서 해양경찰과 정부당국은 지휘체계도 없이 우왕좌왕했다.

2014년 4월 16일. 악화된 기상 여건을 무릅쓰고 인천에서 제주로 가던 화물여객선 ‘세월호’가 진도 부근에서 침몰했다. 그리고 300명 이상의 무고한 인명이 희생되었다. 조류가 급한 해역에서 급히 방향을 바꾼 게 사고의 직접적 계기였다. 그러나 사고의 주된 원인은 화물적재량 초과와 부실한 화물 적재 등이었다. 사고 직후 현장에 가장 먼저 출동한 해양경찰은 우왕좌왕하면서 적극적인 승객구조를 하지 않아 인명 구조의 적기를 놓쳤다. 또한 정부 재난 구조 당국은 세월호 탑승자 수를 477명에서 462명까지 수차례 번복하며 불신을 자초했다.

마르크스는 “역사적 사건은, 한번은 비극으로 다음엔 소극(笑劇)으로 반복된다.”고 했다. 그런데 반복되는 대형 참사를 보면 마르크스의 이 명제는 바뀌어야 할 것 같다. “역사적 사건은, 한번은 비극으로 다음엔 더 큰 비극으로 반복된다.”고. 그렇다. 21세의 ‘세월호’ 참사는 여러 면에서 지난 20세기 ‘서해 훼리호’ 참사의 확장된 비극이었다. 그간 남한 자본주의 체제는 진화했지만, 그것이 곧 안전관리의 진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세월호’ 침몰케 한 것은 자본주의 시스템 그 자체

세월호는 무게가 무려 6800여 톤에 달하는 국내 최대 ‘화객선(화물선+여객선)이었다. 세월호는 1994년 일본에서 건조되어 운항되던 것을 18년이 지난 2012년에 ‘청해진해운’이 인수했다. 선박운항 유효기간 20년이 다 된 배였으나, 때맞추어 해운법 시행규칙이 개정됨에 따라 수명을 최대 2018년까지 연장할 수 있게 되었다. 세월호는 취항을 시작한 순간부터 참사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이처럼 낡은 배를 구입하는 데에 산업은행은 100억 원을 2년 거치 후 5년 분할 상환 조건으로 대출해주었다. 그로써 청해진해운은 고물선 가격 116억 원 가운데 대부분을 대출금으로 충당했다. 국책은행의 자금이 사적 자본을 위해 쓰이는 자본주의 체제의 실상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편 세월호는 애초에 5997톤으로 진수되었다. 그러나 이 배를 인수한 일본의 해운사가 589톤에 해당하는 시설물을 증설했다. 이어 청해진해운도 승선인원을 늘리기 위해 239톤의 무게에 해당하는 객실을 증축했다. 영업 이윤에 대한 해운자본의 욕망에 따라 세월호는 건조될 당시보다 무려 800톤 이상이나 무거운 배가 되었고, 이는 곧 사고 위험의 증가를 뜻했다. 그럼에도 세월호는 등록검사를 무난히 통과했고, 2013년 3월에 인천-제주 항로에 취항했다.

세월호는 상습적으로 화물을 과적(過積)하고, 결박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승객의 목숨을 건 모험을 모험 항해를 이어왔다. 그간 무시무시한 괴물 하나가 백 수십 차례나 승객의 목숨을 담보로 모험적 항해를 이어왔다. 이번 4월 15일에도 고교생 수학여행단 포함 500명 가까운 승객과, 적재량을 두 배나 초과한 화물을 대충 싣고 안개 자욱한 악천후에도 인천항을 출발했다. 이러한 과정에 아무도 공식적인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세월호는 진도 인근 해역을 지나다가 침몰했다. 자본가국가는 위험한 물길에서 이윤을 건져 올리는 해운업체의 욕망에 브레이크를 걸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자본가국가에서는 해운자본가들의 사적 이윤이 개인들의 생명보다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세월호를 침몰케 한 것은 자본주의 체제 자체였던 것이다. 

재난을 상품화하는 자본 앞에 무기력한 국가

한편 국내 최대 여객선이 침몰하는 긴박한 상황에서 어이없는 일들이 일어났다. 비정규 계약직 선장과 일부 선원들 통상적인 구조 매뉴얼도 지키지 않고 가장 먼저 배에서 탈출했다. 긴박한 상황을 스스로 판단하여 조치해야 할 선장은 SOS 신호도 보내지 않은 채, 수백 명의 학생들은 침몰중인 배의 선실에 묶어놓고, 자신의 고용주인 청해진해운과 대처방안을 협의하느라 승객의 생명과 맞바꿀 구조 시간을 허비한 것으로 보인다. 선장과 선원은 수백 명의 목숨보다 배를 먼저 생각했을 것이다.

일선에서 해난 구조 임무를 맡은 해양경찰의 대응도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해경의 진도VTS는 코앞에서 승객 476명 이상을 실은 대형 여객선 세월호가 멈춰 섰지만, 전혀 알아채지 못하다가 해양수산부 제주VTS로부터 연락을 받은 뒤에야 겨우 조치를 취했다. 해경은 또 침몰 현장에 도착해서도 누구하나 선체에 진입하지 않았고, 선실 유리창을 깨서 학생들을 구출하려는 시도도 하지 않았다. VTS의 역할과 특수구조 활동의 매뉴얼을 어느 것 하나 실행하지 않았다. 외부에서 어떤 힘이 작용하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다.   

국가 재난 당국도 허둥댔다. 애초에 재난에 대비한 일사불란한 지휘체계는 없었다. 구조 현장은 통제되었다. 구조를 도우러 왔다는 외국의 선박이나 헬기도 현장에 투입되지 않았다. 진도 현장을 방문한 대통령과 정부 관료들은 부적절한 언행을 이어가며 실종자 가족을 광분케 했다. 사고 현장의 구조 상황에 대한 거짓 보고가 이어졌다. 그러자 온갖 의혹이 불거져 나왔다. 이에 대한 정부의 유언비어 사냥도 어김없이 이루어졌다.  

사실상 생존자에 대한 기대가 사라진 뒤에 벌어진 현장 수색활동도 사회적 상식으로 이해가 가지 않은 것이었다. 사고를 수습해야할 정부 당국은, 자발적으로 사고 현장을 찾은 수백 명의 민간 잠수부들의 투입을 막았다. 그리고 사고 선사인 청해진 해운과 계약한 구난업체 ‘언딘 마린 인더스트리’가 고용한 유급 잠수사들의 수색 활동에만 매달렸다. 그 때문에 적적한 수색 시간을 허비하기도 했다. 이는 결국 사고 수습 비용을 부담하지 않으려는 정부가 재난도 거래의 대상임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그로써 대한민국이라는 자본가국가는, 역대 최악의 해양 참사를 맞아, 스스로 배를 탈출한 174명의 생존자 외에는 배 안에서 단 한 명의 생존자도 구조하지 못했다. 그리고 배에 갇힌 300명 이상의 아까운 생명은 고스란히 희생되었다. 더구나 그 희생자 대부분이 꽃다운 나이의 고교생들이라는 사실에 온 나라가 충격에 휩싸였다. 세월호 참사는 썩은 자본에 의해 썩은 배로 시작되어, 썩은 선원에 의해 현실화 되고, 썩은 국가의 썩은 정권에 의해 확대된 비극이었다. 

국가가 국민의 안전을 책임진다는 착각에서 벗어나는 계기 되어야
 

선박회사는 ‘최소 비용’ 차원에서 썩어가는 헌 배를 헐값에 구입했고, 재난구조 장비와 선원교육 훈련비를 절약했고, 비정규직 선원 채용으로 인건비를 절감하고, 적재 화물 결박을 생략하여 화물 관리 인건비를 절감했고, 긴급 상황에서도 선원들에게 인명보다는 배를 먼저 살리도록 조치했을 것이다. 또한 선박회사는 ‘최대 이윤’ 차원에서 낡은 배를 개조하여 승선 인원을 늘렸고, 안전을 위한 각종 규제를 교묘하게 피했고, 적정량을 초과하는 화물을 실었고, 안개 속에서도 출항을 강행했고, 연료비 절감을 위해 짧은 항로를 모색했을 터이다. 자본가 정부가 노래를 불러온 '규제 혁파'의 효과가 잘 나타나는 셈이다.

재앙은 여러 가지 원인이 맞물려 발생하지만, 그 근원은 늘 ‘최소 비용 최대 이윤’이라는 자본주의 경영원리에서 비롯된다. 안전은 곧 비용의 문제이다. 참사를 예방하는 비용보다, 참사를 수습하는 비용이 적게 드는 국가제도가 위험을 방치하기 때문이다. 재난구조기구의 답답한 구조 활동도 결국은 비용의 문제와 직결된다. 따라서 끔찍한 사고가 되풀이 되는 것은, 관련자들의 안전불감증이 문제라기보다는, 사람의 목숨보다 사적 이윤 추구를 중시하는 사회제도의 문제이다. 세월호 참사는 인재가 아니라 금재(金災)이다. 국가가 국민의 안전을 책임진다는 것은 착각이었다. 이번 참사가 그 착각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슬퍼하고 분노하다가 세월이 흐르면 ‘세월호’도 기억에서 멀어질 것이다. 사람들은 또 평온해보이는 일상을 이어갈 것이다. 무력한 개인들의 한계이다. 하지만 그 한계에 갇히는 순간 ‘저비용 고효율’이니 ‘최소 투자 최대 이윤’이니, ‘대박’이니, '규제혁파'니 하는 슬로건과 함께 사적 이윤을 향한 자본가국가의 항해는 이어질 것이다. 그래서 미래는 늘 끔찍하다. 침몰한 배 안에서 단 한 명이라도 살아 돌아오기를 바라던 간절함은 이제 자본주의라는 위험한 체제를 변혁하려는 의지로 승화되어야 할 것이다. 그로써 세월호의 침몰이 곧 자본가국가의 침몰로 이어져야 한다. 그것만이 억울한 주검들에 대한 참된 도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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