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14일 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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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자본주의 생산의 실패
문창호  ㅣ  2014년 3월 14일

 
[자본주의 생산의 실패] (2012)는 2008년 공황과 1970년대 이래로 세계경제의 상대적 정체를 이윤율저하의 관점에서 분석한 마르크스 경제학 책이다. 저자인 앤드루 클라이먼은‘시점 간 단일체계 해석(TSSI)’의 주창자이며, TSSI는『 자본론 3권』에서의 이른바 가치에서 생산가격으로의‘ 전형문제’에 대한 백년이 넘는 긴 논쟁에 획기적인 해법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책에서 만난 인상적인 주장은 다음의 두 가지였다. 첫째는, 신자유주의론 비판이다. 주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신자유주의가 공황과 침체의 원인이라는 좌파의 통념에 대한 비판이다. 흔한 분석틀에서 신자유주의란 한 마디로 1%를 위한 모듬 정책이다. 이들 정책들은 99%를 수탈하여 1%를 더욱 부자로 만들어줄 뿐이고, 이로 인한 심각한 양극화 때문에 경제가 절뚝인다는 게 널리 알려진 주장의 요점이 다. 이런 분석은 과소소비론과 일맥상 통한다. 과소소비론이란 부족한 소비수요가 경제위기를 불러일으킨다는 이론이다. 금융자본의 수탈이나 노동착취의 강화로 99%의 형편이 더 열악해지고 있는 현상에서 위기의 주된 원인을 찾아낸다. 그런데 저자가 보기에 과소소비론의 논리적 결론 즉, 노동계급의 더 많은 소득과 소비가 경제를 회복시킨다는 아이디어는 노동계급의 이익과 자본주의 경제의 안정이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터무니없는 생각이다. 그리고 터무니없는 생각에 기반을 둔 투쟁과 운동은 실패와 반동을 부른다.

이러한 논박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둘째) 주장은 우리가 진정으로 싸울 대상이란 나쁜 자본주의 같은 게 아니라 바로 자본주의 자체라는 것이다. 클라이먼이 자신의 견해를 뒷받침하기 위해 제시하는 건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법인부문의 이윤율 추이이다. 이윤율이란 투자한 자본과 이로부터 발생한 이윤 사이의 비율이다. 벌어들인 이윤을 소비하지 않고 생산적으로 투자한다면 자본 총액이 늘어날 것이다. 더 많은 자본은 대개 더 많은 생산과 고용, 소득을 의미한다. 즉 경제가 성장한다. 그리고 이윤율이 높을수록 경제는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저자가 각종 통계로부터 추출해낸 자료에 의하면, 1970년대에 이윤율이 대폭 하락하고, 그 이후로 현재까지 거의 회복되지 않고 있다. 이런 L자형의 이윤율 곡선은 다음과 같은 명제들의 강력한 증거이다. 신자유주의가 본격화된 80년대 이전에 이미 미국경제의 상대적 정체가 시작됐다. 70년대 경기후퇴는 단지 케인즈주의의 위기가 아니라 대침체의 시작이었다. 신자유주의에 의해서 이윤율이 회복된 적이 없다. 긴 침체와 빈번한 공황의 구조적 원인은 바로 이윤율 저하이다.

그렇다면 이윤율이 떨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저자는 마르크스가 정식화한‘ 이윤율 저하 경향 법칙’을 정교한 통계처리와 함께 내세운다. 자본주의에서 상품 가치는 궁극적으로 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에 의해 규제되기 때문에, 자본가가 비용 절감을 위해 노동자를 기계로 대체하는 기술혁신은 결과적으로 상품가치를 떨어트려 이윤율을 낮춘다. 노동생산성 향상과 비용절감 노력이 이윤율 저하로 귀결된다는 아이러니와 반(反)직관성이 -직관적으로 비용이 줄면 이윤은 는다-‘ 법칙’의 특징인데, 이점 때문에 마르크스주의자이면서‘ 법칙’을 부정하는 연구자들도 적지 않다. 이와는 반대로 클라이먼은‘이윤율 저하 경향 법칙’에서 현대 자본주의의 어제와 오늘을 발견한다. 또한 자본이 자본이기 위한 조건(비용절감 경쟁)과 경제위기 사이의 필연에 대한 확신도 건져 올린다. 물론 다음과 같은 확신도 가능해보인다. 우리가 자본에게 모든 걸 양보할지라도 체제를 수렁에서 건져낼 수는 없다. 자본의 한계는 바로 자본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본은 스스로를 파괴하면서만 다시축적에 박차를 가할 수 있다.

클라이먼의 결론은 이렇다.“ 전면적인 자본가치의 파괴는 수익성의 회복과 새로운 호황에 이르게 할지도 모르지만, 1930년대에 자본주의의 자기교정 기제는 너무 허약해서 그런 호황이 자동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또한 회복은 대규모의 국가개입과 세계대전의 파괴성을 필요로 했다. 이번에도 회복에 이르기 전에 우리가 혼돈, 파시즘 혹은 군벌주의로 빠져들 것이라고 상상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상상이 끔찍하다면 자본주의가 아닌 사회주의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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