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14일 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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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들 하십니까?” 그 이후
주현우  ㅣ  2014년 3월 14일


시작은 그저 한 편의 대자보였습니다.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상투적인 인사로 시작한 한 편의 대자보. 철도 민영화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수 천 명이 직위해제 되고, 마을 한 복판 초고압 송전탑에 주민이 음독자살을 하는“ 하수상한 시절
에 어찌 모두들 안녕하신지 모르겠습니다!”란 외침은 단 한 달 만에 천 여 장의 대자보로 이어졌습니다. 도무지 안녕할 수 없는 세상에서 안녕치 못하다면 무슨 내용이든지‘ 외치지 않을 수 없다’란 호소에는 그 어떤‘ 강제’도‘ 계몽’도 없었습니다. 그저 수많은 우리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물음만이 있었을 뿐입니다.

“안녕들 하십니까?”의 확산에는 대자보를 쓴 사람들이 광장에서 자신의‘ 안녕치 못함’을‘ 성토’하는 실천이 또 다른 기폭제로 작용했습니다. 활자로 박제된 대자보만이 아닌 온라인의 아바타가 아닌 산사람이 등장하는 것. 이전까지 눈으로 확인하지 못했던 그러나 함께하고 있었던 공동체의 구성원이 자신과 비슷한 물음을 던지며“ 안녕치 못하다” 말하는 현실에서 이미 불씨는 한편으론 뜨겁게, 그리고 다른 한편으론 젖은 장작을 말리듯 번져가고 있었습니다. 물이 99도까지 끓어오른 상태에서는 단지 1도만 높아져도 기체가 된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안녕들 하십니까?”란 대자보가 한1도의 역할보다 우리가 중요히 봐야 할것은 턱밑까지 차오른 대중의 분노, 바로안녕치 못한 99도의 현실이었습니다.

12월 14일 토요일, 첫 성토대회 당일.정경대학 후문을 가득매운 350명의 사람들은 청소년, 고시생, 성소수자, 청년, 문학도, 노년의 주민 등의 가지각색의 우리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단지 그 자리에 나타나 자신의 이야기로 안녕치 못함을 토로했다 해서 지금껏 민중의 자기 정치를 막아왔던 정치와 비정치, 순수와 비순수의 족쇄가 깨진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정치적’이지 않겠다는 자세 역시 결국‘ 정치적’ 판단이었음을 확인하는 것이‘ 바로 내가 안녕하지 못하다’는 외침이었기에, 순수하게 사는 게 아니라 사실‘ 순진’하게 살아왔다는 데 대한 합당한 분노가 터져 나온 것이 대자보 열풍이었기에, 기득권과 보수 언론, 정치인의 ‘정치적’과‘ 비순수’란 재단에도 불구하고 대자보는 점점 더 많이 확산되었습니다.

“ 말하는 것은 허락받고 하는 것이 아니다”는 것과“ 자기 손으로 만들어 가는 "안녕”이란 구호에 막힘은 없었습니다.그러나 누군가는“ 정작 나는 안녕한데 당신들이 자꾸 안녕하냐고 물어서 안녕치 못하다.”고 하거나 대자보를 훼손하고‘ 안녕치 못한 이들’의 신상정보를 털기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의 안녕치 못한 대자보에‘ 밥숟가락을 얻는다.’는 식의 표현을 쓰며‘ 젊은 대학생들이‘ 순수’한 의기로 시작한 물음에 끼어들지 말라는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비록“ 안녕들 하십니까?”란 열풍이 사람들로 하여금 각자의 안녕치 못함을 공유하게 만든 계기임에는 틀림없으나 시절이 매서웠던 만큼 세상으로의 두꺼운 얼음을 녹이고 박차게 만드는 데에는 힘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열풍이 얼음을 녹이는 대신 젖어있는 장작을 말리는 역할이었다고 생각한다면‘ 안녕치 못한 현실’ 속에서 물음은 여전히 살아 있고 현재진행형입니다. ‘안녕하지 못한 사람들’이 바라마지 않았던 것은 한 사람의 영웅도, 대신 문제를 해결할 다른 누군가도 아닌,‘ 안녕하지 못함’에 분노하는 수없이 많은 자신이었습니다.“ 안녕들 하십니까?”란 물음이 지난 두 달간 주목 받았던 것 역시 그 물음이 박제화 되지 않고 전국을 뛰어 다니며 살아 숨 쉬고 서로 만났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안녕들 하십니까?”가 해야 할 일은‘ 안녕하지 못하다’는 외침의 대상도 자격도 제한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 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고백으로부터 자기 서사를 풀어내고 스스로의 실천을 고민하는 과정을 만들어가는 데 있습니다. 누군가는 그것을 학교 방송국의 영상 제작으로 풀어내고 누군가는 공부 모임과 대학 내의 학생회의 문제의식으로 가져갑니다. 하지만 개별적으로 물음을 던지는 것뿐만 아니라 앞선 실천의 내용들이 함께 모여 고민하고 힘을 합쳐 나갈 수 있도록 연결되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회에 널려있는 수없이 많은‘ 안녕치못함’들을 한데 묶어 나아가는 것.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진 이들이 모여 목소리를 모으고 실천으로 나아가는 것. 요즘 다시 떠오르고 있는 인문학을 통한‘ 자기 힐링’이 아닌 실제로 문제가 무엇인지 명확히 지적하고 진짜‘ 자기 정치’를 해나가는 것. 그 길이 무엇일지, 어떻게 될지는 아직 저로썬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대자보 한 편에서‘ 10시간의 1인 시위’와‘ 성토대회’,‘ 전국 나들이’라는 기획들이 그 때 그 때의 상황에서“ 더 많은 우리들과 함께 하자.”는 원칙을 통해 나왔듯이 그 초심을 버리지 않고 이어나간다면 분명 더 많은 가능성이 더불어 자리하리라 믿습니다. 이제 준비운동은 끝났습니다.“ 안녕”이란 단어의 의미가 이전과 달라진 상황에서, 우리 스스로의 자기정치를 막아온 족쇄의 허약함을 확인한 상황에서, 99도를 넘어 들끓는 현실 속에서 나아가길 주저할 순 없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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