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17일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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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야, 문제는 자본주의야!
김광호 (강원비정규센터)  ㅣ  2013년 12월 17일

  자유주의자는 거리에서 걸인을 보면 체제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마르크스주의자는 거리에서 걸인을 보면 체제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빌 리번트 (‘마르크스와 A학점을’ 중에서)


  지난 11월 17일, 정리해고에 맞서 77일간 장기파업을 벌인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에게 회사에 33억여원과 경찰에 13억여원 등 모두 46억여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회계조작과 살인진압, 24명의 죽음은 이 판결에서 보이지 않았다. 또 다른 죽음이 이어질까 두렵지만 사회적 분노는 민주주의 후퇴, 유신부활에 분노하는 목소리에 가려졌다, 아니 가려진 것이 아니라 아예 보이지 않았다.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다. 정치와 경제가 완벽하게 분리된 모습이다. 국정원의 대선개입으로 불붙은 정치적 격랑이 대통령의 퇴진을 주장하는 수위로까지 발전했지만 삶의 가장 기본이 되는 생존권에 대한 분노가 보이지 않는다. 

  요즘 공안탄압이나 민주주의의 후퇴, 유신부활 등등의 이야기들이 대중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딱히 비판할 생각은 없었는데 가면 갈수록 자꾸 이런 것들이 운동권 내에서도 확산되고 있다. 결정적으로 지난 노동자대회에서 이 구호가 등장했다는 것이다.

  현 시국을 정의하는 위의 개념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틀렸다. 왜냐하면 현상을 마치 본질인 것처럼 호도하기 때문이다. 즉 자본주의의 위기에 따른 계급적 갈등과 대립이라는 것을 감추는 몰계급적인 구호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게 ‘대중적으로 먹힌다.’ 라면서 이러한 구호를 제기하고 커다란 문제의식 없이 받아들이기도 한다. 그런데 대중적인 받아들이는 것이 항상 올바른 것도 아니고, 모든 대정부투쟁이 계급적인 것도 아니라는 것이 문제다. 이러면 일부 좌파들은 '노동부문'의 의제가 계급적이라고 바로 갔다 붙이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 또한 경제주의적인 몰계급적 태도이다.

  더 화끈하게 못 말리는 개념 없는 주장은 박근혜가 아버지를 닮아서 그렇다거나 뭐 혈족 운운하는 주장들이다. 어떻게 박정희하고 박근혜가 같은가? 미치겠다. 박정희와 박근혜는 생물학적으로도 다르고 결정적으로 시대적 조건이 다르니 박정희의 딸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이야말로 본질을 호도하는 비과학적인 주술적 태도가 아닌가? 

  박근혜정권이 이렇게 막무가내로 나가는 것은 이 자본주의체제가 그렇게 밀고 나가기 때문이다. 자본가계급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고 있는 행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국가란 자본가계급의 이해를 대변하는 위원회에 불과하다는 마르크스의 정의를 빌리지 않더라도 말이다. 물론 가끔 자본가계급과 행정부권력이 갈등을 들어내면서 마치 정치가 경제, 정확하게 말하면 자본주의체제와 무관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자본주의가 성숙한 사회일수록 그런 갈등은 아주 적을 수밖에 없다. 간간히 들어나는 갈등도 그들이 공조로 쌓아 놓은 체제가 깨질정도로 막 나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체제가 작동하고 있는 현실에서 행정부 권력의 꼭대기에 누구를 세워도 별 수 없다는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이미 말하지 않았나?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뒤늦었지만 그 순진한(?) 사람도 그걸 알았던 것이다. 그런데 마치 권력이 자본가계급과 별개의 관계인 것처럼 이런 식으로 말하면 곤란하다. 왜냐하면 이런 주장의 결론은 빤하게 모든 노동대중을 죽음으로 내 모는 자본주의체제의 변화가 아니라 행정권력(대통령)의 변화가 답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건 세상을 바꾸기 위해 투쟁해 왔던 모든 사람에게 역사적으로 명백하게 '사기'이다. 

  ‘디플레이션 소용돌이’라는 공황에 대한 경고가 보수적 진단을 할 수밖에 없는 KDI에서조차 나오고 있을 정도로, 한국자본주의에겐 여유가 없다. 박근혜정권의 행보는 전적으로 심각한 위기에 처한 자본가계급을 구하는 것에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공공부문의 시장화가 바로 이것을 입증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이 사회는 민주주의 타령이나 하고 있다. 민주주의? 이 땅에 민주주의가 단 한 번이라도 존재했었나? 4년에 한 번씩 형식적으로는 비밀투표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가?  이건 민주주의의 한 형식일 뿐이며 그것조차 사기라는 것이 이번 국정원 대선개입 사태로 밝혀지지 않았나? 그런데 무슨 민주주의가 후퇴씩이나 했고, 유신이 부활했는가? 

  물론 정치가 밥 먹여줘야 한다. 그렇지만 삶을 지켜내지 못하는 정치는 진짜 정치가 아니다. ‘배가 고프다’며 자결한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의 장례를 아직 치르지 못했다. 정리해고에 맞서 투쟁했던 쌍용자동차 노동조합에 46억원이라는 손해배상 판결이 내려졌다. 그렇다면 우리의 투쟁은 절차적 민주주의를 훼손한 박근혜정부 따위가 아니라, 그러한 박근혜정부를 만들어 낸 이 자본주의체제에 분노를 모아내고 투쟁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바로 ‘자본주의가 문제’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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