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24일 78
해방 > 78호 > 쟁점

“을”을 위한 자본주의는 없다
김광수  ㅣ  2013년 6월 24일

온통 서열로 도배가 되어있는 나라

남양유업부터 승무원 폭행까지 상전들인 갑이 부리는 횡포에 치가 떨린 사람들은 적어도 한 가지는 깨달았다. 있는 놈들이 벌어야 없는 자들도 떡고물이 생긴다는 낙수효과란 위에서 떨어지는 게 먹거리가 아니라 모욕이고 인간적 모멸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김남주 시인은 3.8선은 3.8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지만, 갑-을, 혹은 악성서열은 재벌과 자영업자, 혹은 원하청 관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들의 아이들은 서열 속에 살고 서열 속에서 죽고 있다. 서울대라는 슈퍼갑외에는 모두가 을이 되는 추악한 대학서열화와 이를 반영하는 고등학교에서 특목고, 자사고, 일반고의 서열화, 이제는 국제중학교까지 등장해 중학교에도 서열이 번뜩인다. 나라에서도 불평등을 권장하는 근로계약을 맺은 노동자들이야 말해서 무엇하랴? 그나마 을도 다양해 정규직“을”, 비정규직“을”로 갈려 있고, 갑들도 슈퍼갑 독점자본에서 미력한 갑 영세자본까지 서열이 있어 노동자들은 누가 진짜 갑인지도 모르게 살고 있다. 

견디기 힘든 자본주의 위계와 서열

독점재벌의 횡포에 시달리는 편의점주들은 7월이 되면 심기가 불편해진다. 해마다  최저임금이 발표되기 때문이다. 알바청년들에게 주는 시급이 최저임금에 연동되어 있기에 비용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독점재벌에겐 눈곱의 때보다 못한 편의점주지만 알바들에게는 속 좁은 갑이 된다. 알바청년들의 노동에 의존하는 자영업자들 모두가 한통속이다. 그래서 골목상권투쟁에 민주노총이 연대해주기를 바라는 맘도 있지만 최저임금 인상하라고 하는 민주노총은 불편한 세력이기도 한 것이다. 촘촘히 엮어지는 갑-을 관계의 사슬은 그 어떤 사람도 피해 갈 수 없게 만든다. 경제위기가 깊어지고 슬슬 본격화되면서 양극화의 극단적 표현인 갑-을 사회 문제가 이제야 터져 나오고 있을 뿐이다.

사태가 사람 사는 세상에 있을 수 없는 지경을 넘어서자, 늦게나마 갑-을 사회 대책 입법들이 우후죽순으로 올라온다. 모두가 공정한 관계를 해치는 불평등한 계약관계나 관행들을 금지하는 법들이다. 그래도 재벌과 서민 모두에 공정하신 청와대에서는 대책입법이 과잉이라고 점잖은 충고가 나온다. 노무현 정부때 “삼성 니가 갑이다”고 주저앉던 것과는 달리 재벌 몇 명 손을 봐서 본인이 슈퍼갑 질을 하는 마당에 찔리는 모양이다.

자본주의하에서의 분업이 위계를 낳고, 서열로 발전한다. 그전 봉건사회에서 신분으로 서열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과 다르게 자본주의하에서는 자유로운 개인의 계약관계로 위장하지만 거기에는 철저한 상하 위계가 존재한다.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기 위해서 필요한 위계는 자본주의에서도 여전히 지배적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 위계를 못 견뎌하면서 자본주의 체제가 사람들을 이 체제의 생존에 필요한 분업과 서열로 밀어 넣는 것이 힘들어지고 있다. 자본주의는 이제 사람들의 인내를 넘어서는 체제가 되고 있다. 

갑-을이 없는 나라? 개가 똥이 싫다고 해라

갑-을 사회가 문제가 되니, 아예 계약서에서 갑-을이라는 말을 없애자는 대책도 등장했다. 용어로 없앤다고 사회적관계가 없어지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지만, 이 사회가 과연 갑-을 자체를 없애거나 완화시킬 가능성이 있는 걸까? 한국자본주의는 주식시장에 대기업이 상장을 하고, 주식가격이 회사의 가치를 결정하고, 이에 따라 기업이 은행에서 빌릴 수 있는 돈의 양과 이자의 크기를 결정하는 시대가 된 지 오래다. 독점재벌은 실적이 중요해진다. 그러나 이미 이 나라의 자본의 평균이윤율은 나날이 떨어진 시중금리에도 못 미친다. 상장사들의 불문율이 된 영업이익율 15%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달성이 불가능한 목표다. 물론 가끔 기적이 일어나는 대박이 일어나긴 하지만 그런 건 로또와 마찬가지다.

이제 골목상권부터 하청업체들까지 독점재벌의 수탈이 불가피한 상황이 만들어진다. 수탈이 가능해지려면 경제외적 강제가 필연적으로 따른다. 즉 아담스미스가 상상하는 상거래에서 구매자와 판매자의 평등한 관계는 성립되지 않는다. 계약은 처음부터 불평등계약이어야 하거나, 한쪽의 수탈을 용인할 수밖에 없는 불평등관계가 전제되어야 한다. 따라서 갑-을 관계는 필연적이다. 만약 이것을 허용하지 않으면 독점자본이 가져가는 평균이익율을 넘어서는 이윤은 불가능해진다. 주식시장은 붕괴하고 은행도 덩달아 망한다. 결국 자본주의가 움직일 수 없게 되어있다.  

갑-을 논란 덕에 삼성, 현대 때문에 나라가 먹고산다는 이야기는 쏙 들어갔다. 반대로 삼성, 현대, 그리고 재벌들 먹고살려면 대다수가 죽어야한다는 사실이 자명해졌다. 해법은 간단하다. 삼성, 현대를 비롯한 독점자본이 문제라면 이들을 죽여 대다수가 살면 그만이다. 독점재벌을 국유화하고 사회를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사회는 불가피하고, 가능성은 높아졌다. 사람들이 생각을 바꾸고 올바른 사고에 바탕을 둔 실천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관련기사

기사평쓰기
번호 제목 평점 작성자 작성일 조회수
등록된 게시물이 없습니다.

HTML코드 복사하기 (블로그나 카페에 바로 붙여넣기 하실 수 있습니다)


“을”을 위한 자본주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