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10일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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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라는 판을 흔들어야 희망이 보인다
김광호 (강원 비정규센터 소장)  ㅣ  2013년1월10일

  선거가 끝났다. 투쟁했던 많은 노동자들조차 멘붕에 빠진 이유는 무엇일까? 박근혜의 당선이 공포였을까? 치를 떨만큼 잔혹했던 군사독재정권 시절에도 노동자들은 투쟁을 했고, 87년 7,8,9월 투쟁으로 당당한 ‘노동자’라는 자신의 이름을 찾았다. 96년 노동법개정투쟁으로 노동자들이 투쟁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도 얻었다. 그런데도 멘붕에 빠진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박근혜의 당선보다는 문재인의 패배가, 문재인으로 대변되는 자유주의자들에게 자신의 운명을 위탁했던 것이 원인이다. 스스로 희망을 만들지 못했으니 그 절망감은 더 했을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는 대중의 ‘삶’이 정치적 쟁점으로 떠오르지 못했다. 자유주의자들과 진보연하는 자들은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에 갇혀 먹물들이나 관심을 가질법한 ‘역사적 심판’에 매달리는 낡은 프레임에 스스로를 가뒀다. 야권연대의 효과를 배가시키기 위해 박근혜를 악마로 묘사했다. (이것은 현실을 올바로 판단하기는커녕 계급독재라는 자본주의의 본질을 감추는 역할을 했다.) 더군다나 자본가계급을 향한 충성도에서 2등을 하라면 서러워할 자유주의자들에게 자신들의 미래와 신념을 위탁하는 상황이라니. 좌절과 절망을 불러온 것은 박근혜의 당선이나 자유주의자들의 패배가 아니라 갈 길을 찾지 못한 운동이 자초한 것이다. 박근혜라는 공포가 ‘야권연대’라는 이름으로 자유주의자들과 진보연하는 자들에 의해서 조작된 것이다.

  이 상황은 누구의 탓도 아니다. 온전히 노동운동이 책임져야 할 상황이다. 이번 대선에서 많은 민주노총의 전, 현직 간부들이 문재인과 안철수 캠프에 합류했다. 민주노총은 자신의 독자적인 정치방침을 팽개치고 ‘진보적 정권교체’를 주장하며 사실상 야권연대를 공공연하게 주장했다. 뻔뻔스럽게 노동자대중에게 자신의 운명을 자유주의자들에게 위탁하라고 입을 놀렸다. 준비되지 못한 상황에서 노동자후보가 출마했지만 조직된 노동자들조차 노동자후보를 외면한 상황이 벌어졌다. 세상을 어떻게 바꾸겠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현실적 요구를 나열한 순간, 선거라는 블랙홀에 빠져들면서 스스로의 바람과는 다르게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은 존재할 수 없었다. 희망은 스스로 건설할 때 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박근혜로 상징되는 자본가계급의 지배는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 10년의 역사처럼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을 것이다. 이명박정권에서 보았듯이 더욱 노골화되고 폭력적인 모습을 보일 것이다. 그렇지만 ‘자본가계급의 독재’라는 본질적인 측면에서 노동자대중의 삶은 조금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계급전선은 노동자계급의 단결과 투쟁에 의해서만 변화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 상황을 돌파하는 것은 유일하게 노동운동을 계급적으로 다시 세우는 것 말고는 답이 없다. 잘해야 고작 전투적일 수밖에 없는, 계급적 타협을 밥 먹듯이 할 수밖에 없는 조합주의(실리주의)로는 자본주의에 맞서는 투쟁을 건설할 수 없다. 근본적인 희망을 건설하지 못하는데 부르주아에게 온전히 자신의 운명을 위탁하는 것 말고는 대체 무슨 희망이 있을까?  자본주의라는 판을 흔들어야 한다. 박근혜의 당선은 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어설픈 ‘노동중심’이나 ‘반자본’ 따위가 아니라, 자본주의에 맞선 노동자계급의 독자적인 사회주의적 정치활동이라는 것을, 노동운동이 근본적으로 혁신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박근혜정권은 그저 자본가계급의 한 모습일 뿐이다. 자유주의자들이 집권에 실패한 것으로 우리가 좌절할 이유도, 공포를 느껴야할 이유도 없다. 자, 이제 자신의 생존권적 요구, 개별 자본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판을 뒤흔드는 ‘사회주의 정치활동’을 제대로 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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