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10일 75
해방 > 75호 > 쟁점

희망도 보여주지 못한 채 실패한 노동자대통령 후보 전술
황정규  ㅣ  2013년1월10일

해방연대는 전례없는 자본주의 위기의 시절에 노동자계급과 민중이 겪는 삶의 고통을 극복하고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반자본주의, 사회주의를 분명히 지향하고 이를 실천하는 사회주의정당의 건설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일관되게 주장해왔다. 이미 사회주의정당으로 발전하지 못한 채 퇴보하게 된 민주노동당의 경험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이러한 시대가 요구하는 과제에 부합하는 실천을 하지 못할 경우 결국, 퇴보하여 실패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러한 시대적 과제를 실현하기에 사회주의자들의 주체적 역량이 매우 취약하다는 점이었다. 따라서 해방연대는 2011년 <사회주의정당건설 대안계획>을 수립하면서, ‘사회주의적 내용없는’ 사회주의정당건설 운동이, ‘사회주의운동’으로 치장한 조합주의적 운동이 과거와의 단절 없이 사회주의운동을 자처함으로써 오히려 진정한 사회주의운동의 전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평가하였다. 또한 사회주의 운동을 형성하려는 새로운 세력이 아니라 낡은 세력을 규합하는 방식으로는 당건설은 사실상 무망할 뿐만 아니라 이렇게 해서 형성되는 당건걸운동은 퇴보하는 노동운동전반과 똑같이 무기력한 운동을 결코 극복할 수 없으며, 이를 재생산하게 될 뿐이라고 보았다.
해방연대는 이러한 평가를 토대로 성숙하는 객관적 조건에 조응하지 못하는 주체적 역량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을 주요한 운동의 과제로 삼고 실천해왔다. 해방연대가 대선 후보전술을 결정하게 된 것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였다. 즉 취약한 주체적 조건의 극복이라는 과제가 충분히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에서 대선에 뛰어드는 것은 “역량이 취약하여 심각한 역량 낭비만을 초래할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18대 대선에서 노동자대통령 후보전술을 평가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이다.



 

태생적 퇴행으로 실패가 이미 예견되었던 노동자대통령 후보전술

이번 노동자대통령 후보전술을 주도한 주체들의 시도는 통진당 창당으로 인한 민주노동당 소멸과 5월 통진당 부정선거 사태 이후 발생한 정치적 공백을 차지하기 위한 정치적 공학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운동의 내용과 형식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15년전, 민주노동당을 처음 시작했을 때 했던 논의들을 축소된 역량 속에서 다시 반복하였을 따름이다.
반자본주의, 사회주의를 내걸기는 부담스럽지만 현장에서 뭔가 정치적 행보는 보여주어야 하는 조합주의 활동가들에게 대선시기 우리도 무언가 한다는 자족감을 제공해주었다. 사회주의 조직들에게도 이는 퇴행으로 나타났는데, 일년전만 해도 “사회주의정당” 건설을 주장하던 조직들이 이제는 “노동자계급정당”의 건설을 운운하고 있다. 노동자계급 정치세력화의 대중적 열망과 힘이 이러한 퇴행 속에서 나올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아울러 “노동자대통령” 역시 이미 그 진보적 역할을 마무리한 낡은 것이었다. 10여년간 이루어져왔던 “노동자대통령” 후보전술은 민주노동당의 소멸과 통합진보당의 창당으로 파산났다. 1996-97년 총파업 이후 대통령 선거에서 노동자계급의 대표적 대중조직 민주노총의 지지를 받고, 민주노동당의 후보로 출마했던 권영길 후보는 노동자대통령 후보였다.
따라서 후보전술을 전개한다면 단순히 노동자가 정치의 주체가 되어야 하고 국회의원, 대통령도 되어야 한다는 수준의 문제의식을 넘어서 자신의 급진적인 이념적 지향을 더욱 분명히 하는 것이 필요하였다. 그러나 이번에 나온 노동자대통령 후보는 이러한 진전을 이루지 못하였다 다만 보다 “투쟁하는” 노동자 출신 대통령 후보라는 점에서의 차이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반자본주의를 분명히 하지 못하고 야권연대에 곁눈질하던 선거‘투쟁’


노동자대통령 선거투쟁을 한 동지들은 현재 노동자민중이 겪고 있는 심각한 고통의 원인이 바로 ‘자본주의’에 있음을 분명하게 밝히지 못하였다. 선거투쟁과정에서 노동자계급의 반자본주의 의식을 고양시키거나, 새로운 투쟁의 근거를 형성하는 역할을 해내지 못하였다. 단순히 노동자민중의 절박한 요구들을 외치는 수준에 머물렀을 뿐이다.
조용한 선거를 한 김순자 후보는 말할 것 없이 선거슬로건에서 자본주의를 뛰어넘자고 하던 김소연 후보의 경우에도 후보토론회나 연설, 선거공약 등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반자본주의가 선본의 핵심적 내용을 이루지 못하였다. 오히려 공황극복의 모범사례로서 아이슬란드를 거론하거나, 공약에는 정당명부식 비례제, 결선투표제 등 정치개혁(!) 요구를 충실하게 반영하는 등의 모습을 보여, 반자본주의를 염원하는 사람들을 매우 실망스럽게 하였다.
또한 김소연 후보 지지자들 사이에서 나온 “경제민주화에 노동이 부재하다”, “김소연이 없으면 문재인 공약은 현실화되지 않는다”는 식의 주장, 문재인 후보 찬조연설을 한 정혜신 박사에 대한 불필요한 논평 제출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은 자유주의 부르주아 세력과 단절된 독자적 정치세력의 모습이 아니라 그들을 계속 의식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것이 자본주의에 맞서 싸우는 세력의 모습이라고 하기에는 어려웠다.

노동자계급 대표성을 획득하지 못한 노동자대통령 후보들

노동자대통령 후보들은 노동자계급의 후보라는 대표성을 획득하지 못하였다. 민주노총이 민주대연합 노선을 끈질기게 관철시켜왔고 직선제 무산으로 지도부가 사퇴하였기에 이번에 출마한 노동자대통령 후보들이 민주노총 지지후보가 되기는 어려운 조건이었다. 민주노총에 한계가 있다면 대중 투쟁 속에서 노동자계급에게 대표성을 사실 상 인정받아야만 했는데, 그 또한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러한 한계는 득표결과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처참한 결과로 돌아온 노동자대통령 후보전술

18대 대선은 박근혜의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정권교체와 야권연대에 희망을 걸고 있었기에 박근혜의 당선은 큰 충격을 주는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대통령의 득표결과를 본다면 박근혜 당선에 좌절과 절망을 하는 것조차 사치스러운 일처럼 보인다. 현상적으로 박근혜 51.6%, 문재인 48% 득표로 남은 0.4% 중 0.3%가 못되는 득표율을 두 명의 노동자후보가 나누어가졌다.
노동자대통령을 투쟁이니 완주니 하는 말로 포장하였던 사람들의 승리적 관점을 무색하게 만드는 이 득표 속에는, 노동자밀집지역이라고 해서 더 득표하고 하는 예외적 상황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러한 처참한 득표 결과를 두고, 원래 투표로 뭔가를 기대한 것이 아니었다느니, 투쟁을 하려는 것이었다느니 하는 말은 핑계일 뿐이다. 득표가 전부일 수는 없지만, 선거‘투쟁’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정말 의미있는 정도로 이 힘을 집결시켰다면 그것은 득표로도 나타났을 것이다. 그러나 울산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투쟁에 열심히 결합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울산북구에서 나온 80여표를 보면, 득표가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조차 처량하게 한다.
이러한 결과는 박-문 양자대결이라는 객관적 조건에 기인하는 것만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노동자대통령 후보전술의 퇴보적 성격 때문에 노동자들에게 새로운 세력으로 부각되지 못하였기에 나온 결과이기도 하였다.


썩은 나무는 조각을 할 수 없고, 썩은 벽엔 칠할 수 없다

그동안의 노동자정치세력화는 87년과 96년을 경과하면서 축적해온 노동자투쟁의 성과를 단지 소비해왔을 뿐이었다. 10여년간 정치세력화의 중심에 있었던 민주노동당의 역사 역시 스스로 자신의 이념과 지향, 정책과 투쟁을 생산해내지 못한 채, 과거의 성과를 소비해왔다. 그리고 민주노동당이 사라진 자리를 비집고 들어서려고 했던 소위 노동자대통령 선거 투쟁 역시 그나마 남은 역사적 성과마저도 탈탈 소비해버리고 말았다.

사회주의란 이름을 내걸고 사회주의정당 건설을 주장하던 혁명가들이 어느날 갑자기 “노동자계급정당”이라는 간판을 내걸기 시작했을 때, 자본주의를 뛰어넘자는 선거슬로건이 무색하게 아이슬란드를 국난극복의 사례로 이야기할 때, 선거‘투쟁’을 한다더니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나 결선투표제 같은 쌩뚱맞은 공약을 아무 생각없이 내걸었을 때, 이 운동흐름은 새로운 내용과 운동을 생산해낼 능력과 기세가 없는 빈약한 뿌리를 그대로 드러내었다.

대선이 끝나고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여전히 노동자대통령 선거‘투쟁’을 전개한 동지들로부터 제대로 된 선거평가를 접할 수 없는 실정이다. 만약 현실을 외면한 채 비슷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을 규합하는 것에 의의를 두고, 이를 성과로 내세운다면 그곳에는 희망이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의 희망은 자본주의 하에서는 희망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천명하는 데에서, 자본주의에 맞서 그 질서와 절연하고 전면적이고 총체적인 싸움을 만들어가는 데에서, 이를 위한 노동자정치세력화는 사회주의정당의 건설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는 데에서 비로소 존재하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 “‘일시적막(一時寂寞)’을 택할지언정 결코 ‘만고처량(萬古凄凉)’의 길을 가지 않을 것”이란 각오가 있다면, 사회주의 운동은 재 속에서 새롭게 부활할 것이다.

관련기사

기사평쓰기
번호 제목 평점 작성자 작성일 조회수
등록된 게시물이 없습니다.

HTML코드 복사하기 (블로그나 카페에 바로 붙여넣기 하실 수 있습니다)


희망도 보여주지 못한 채 실패한 노동자대통령 후보 전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