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3일 73
해방 > 73호 > 쟁점

[칼럼] ‘계급’ 삼켜버린 ‘대중적 진보정당’의 역사
박남일  ㅣ  2012년9월3일

한국전쟁 이후 남한 사회에는 계급정당으로서 변변한 노동자정당이 없었다. 그 대신 ‘진보정당’이라는 명목으로 여러 가지 이름의 정당이 현실 정치 무대에서 초라한 명멸을 거듭해왔다. 그것은 노동자계급과 사회주의 정치세력이 말살된 황무지에서 허약하게 피었다가 곧 지고 마는 꽃이었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은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괴물로 성장한 국가와 자본이 시도 때도 없이 국가보안법의 칼을 휘둘러 온 까닭이다.
하지만 이런 외부적 요인만 작용한 게 아니다. 몸은 변혁운동 진영에 속해있으면서도 마음은 ‘금배지’라는 콩밭에 가 있던 의회주의자들의 역할도 컸다. 이들은 줄곧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 여정에서 ‘대중성’이라는 모호한 기치를 치켜들며 ‘계급성’을 발로 차버렸다. 하지만 계급성 없는 대중성은 번번이 한편의 비극, 또는 희극으로 막을 내렸다.
남한 진보정당사에 부침이 거듭된 것은 내적 오류에서 연유된 바가 크다. 물론 대중성 없는 계급성은 관념적 구호일 뿐이다. 하지만 계급성이 실종된 대중성은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 시도 자체를 무력화시킨다는 점에서 심각한 오류를 안고 있다. 그것은 결국 자본가계급과 그들 국가의 이해를 충족시키는 데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작금의 ‘진보’ 진영에서는 끊임없이 우경화의 길을 걸으며 노동자계급 정치세력화를 가로막고 있다. 역사에서 배우지 못했거나, 개인적 계급이동의 욕망에 사로잡힌 까닭일 것이다.   

 
진보정당에서 혁신정당으로

한국전쟁과 휴전을 계기로 남한 정치사에서 사회주의정당이 맥은 사실상 끊어졌다. 반공주의로 요약되는, 전후 파시즘적 국가자본주의 체제가 강고하게 들어서면서 서슬 퍼런 국가보안법의 칼날을 마구 휘두르기 시작한 까닭이었다. 그러던 1956년. 조봉암을 중심으로 ‘민주사회주의’를 표방하며 ‘진보당’이 결성되었다. 계급의식이 말살된 현실 정치에서의 좌파적 실험이었다.
그러나 1958년 2월 조봉암과 당 간부 7명이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되고, 당 등록은 취소되었다. 게다가 사형선고를 받은 조봉암은 이듬해인 1959년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일제강점기에 공산주의자로 활약하다가 해방 후 남로당과 결별하며 현실 정치에 뛰어든 조봉암. 그의 사민주의적 정치 실험은 비극으로 종결되었다. 
그 뒤 ‘진보’는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맥을 이었다. 조봉암과 진보당에 대한 살벌한 기억으로 현실 정치 무대에 선 인사들은 더 이상 ‘진보’라는 말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대신 1960년 4.19혁명을 계기로 ‘혁신’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진보당 계열인 김달호 등은 토착 자본가 세력인 한민당에서 이탈한 세력 등과 손을 잡고 '사회대중당‘을 창당했다. 심지어 한국노총의 전신 ‘대한노총’ 위원장 출신인 전진한을 중심으로 '한국사회당'이 혁신당의 탈을 쓰고 급조되는 촌극도 벌어졌다. 이른바 ‘혁신적 대중정당’들이 그렇게 등장했다. 그러나 선거에서 약간의 의석을 차지한 뒤 다양한 정치세력 간에 분열이 일어나면서 이들은 ‘통일사회당’으로 재 결집을 시도했다. 하지만 1961년 5.16 박정희 군사쿠데타로 인해 강제 해산되고 말았다.
그 후 박정희와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군부 파시즘 시대가 펼쳐지면서 진보는커녕 혁신 아류 정치세력마저도 모두 숨을 죽여야만 했다. 대중의 의식은 반공사상에 잠식당하였다. 이에 맞서 통일운동과 민중운동의 싹이 자라났다. 그러던 1987년 6월항쟁 이후 재야 명망가들을 중심으로 진보, 또는 혁신정당 창당 논의가 이루어졌다. 제도권 정당을 만들어 ‘기층민중’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명목이었다.
1988년에 이우재, 장기표 등이 '민중의 당'을, 한겨레사회연구소의 제정구, 예춘호, 김승균 등이 ‘한겨레민주당’을 결성하였다. 그리고 1990년에는 ‘민중의 당’과 ‘한겨레민주당’을 이끌어온 이우재, 장기표, 이재오, 김문수, 오세철 등을 주축으로 ‘민중당’을 창당하였다. 이들은 1991년 지방선거에서 13.3%를 득표를 얻어 고무되었다. 그러나 이듬해 제14대 국회의원선거에서 당선자를 내지 못하여 정당법에 따라 정당 등록이 취소되었다.
그런데 진보정당의 꿈은 사라졌어도 재야 명망가들은 살아남았다. ‘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주창하던 민중당의 지도부 대부분은 김영삼의 신한국당, 김대중의 민주당 등 양대 정치세력의 울타리 안으로 걸어 들어간 것이다. 특히 신한국당에 입당한 김문수, 이재오 등은 지금까지도 자본가계급을 대변하는 여당의 핵심 인사가 되어 반동적 행태를 벌이고 있다. 이른바 ‘독자적 진보정당’이 남긴 희대의 코미디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혁신정당에서 다시 진보정당으로

한편 1990년대 들어서면서 ‘전노협’ 결성되고, 1995년에는 ‘민주노총’이 깃발을 올리면서 노동조합운동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그에 따라 운동 진영의 축도 과거 학생운동 중심에서 노동운동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이동했다. 그러던 1996년, 국회에서 노동법 날치기 사건이 벌어지자 분노한 노동운동 진영은 노동자정치세력화의 필요성을 제기하며 1997년에 ‘국민승리21’을 창당했다. 연말 대선에 이른바 ‘진보’ 후보를 내기 위해서였다.
결국 민주노총위원장 출신 권영길이 후보로 추대되어 대선에서 ‘개혁과 진보’를 외쳤지만 306,026표(득표율 1.2%)를 얻는 데 그쳤다. 더불어 선거용으로 급조된 국민승리21은 결국 노동자계급과는 거리를 둔 시민단체 성격의 활동을 이어갔다. 그러다가 1999년 11월 15일에 간판을 내림과 동시에 ‘민주노동당 창당준비위원회’가 출범했다.
2000년. ‘민주노동당’이 창당되었다. 민주노총을 비롯하여 다양한 운동세력이 참여한 가운데 2000년에 창당된 민주노동당은 16대 총선에서는 원내 진입에 실패했다. 그러나 꾸준히 지지기반을 확대하여 2년 뒤인 2002년 지방선거에서 선전했다. 또 2004년 17대 총선에서는 지역구를 포함하여 10석의 의석을 확보함으로써 원내 제3당으로 부상했다. 양적으로만 보면 급성장세였다. 대중적 계급정당으로 자라날 가능성도 엿보였다.
그러나 잠깐이었다. 민주노동당은 겉으로 성장한 만큼 안으로는 부실해졌다. 특히 당권을 잡은 특정 정파 세력의 패권적 행태가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계급성은 퇴색되고 강령은 후퇴했다. 그에 따라 민주노동당은 점점 우경화의 길을 걸었고, 당내 민주화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어졌다.
그러던 2007년 대선에서 권영길이 다시 출마하여 참패를 했고, 이듬해인 2008년 초에 대선 책임론 공방을 벌이는 과정에서 갈등이 폭발하여 마침내 대거 탈당 사태가 벌어지고, 탈당한 일부는 ‘진보신당’이라는 새로운 당을 창당하기에 이르렀다. 그와 더불어 가까스로 이루어낸 노동자정치세력화의 성과도 반 토막이 되고 말았다. 
그런 뒤에도 민주노동당 당권파의 패권적 욕망은 무럭무럭 자라났다. 그 욕망이 자라는 만큼 당은 점점 우경화되었고, 당과 노동자계급의 사이는 멀어졌다. 급기야 민주노동당은 2012년 총선을 앞두고 야권연대니 민주대연합이니 하는 케케묵은 슬로건을 읊어대며 자유주의 부르주아 정당인 국민참여당과 야합하여 이른바 ‘통합진보당’을 결성했다. 하지만 그들의 부정한 동거는 몇 개월도 지나지 않아서 파탄 나고 말았다. 대중성을 입에 달고 다니던 정당에 대한 대중의 시선은 싸늘해졌다. 모든 게 폐허로 돌아갔다.
  
이젠 자본주의를 넘어, 사회주의정당으로 나아갈 때

최근 민주노총 중집위에서는 "현재의 통합진보당은 노동중심성 확보와 1차 중앙위 결의 혁신안이 조합원과 국민적 열망에 부응하는 수준으로 실현해야 한다는 조건이 성립되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지지를 철회한다.”고 결정했다. 이와 때를 맞추어 민주노동당에서 최고위원을 지낸 17명의 활동가들은 기자회견을 열어 "노동중심의 대중적 진보정당 건설의 길로 나아가자"고 했다.
대책 없이 우경화된 통합진보당에 대해 민주노총이 지지를 철회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들의 '노동 중심의 대중적 진보정당' 또한 미심쩍다. 이들이 ‘노동 중심’이라는 모호한 수식어와 ‘대중적’이라는 말을 굳이 붙인 이유는 노동자계급의 선진적 부대로서의 당의 역할을 피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이른바 진보정당의 실험이 끝났는데도 말이다.
언제부터인가 '노동자계급성'이라는 말 대신에 '노동 중심성'이라는 말이 우경화에 대응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 또한 ‘대중성’이라는 말을 전가의 보도처럼 읊어대며 '계급'이라는 말은 삼켜버렸다. 탈계급을 꿈꾸는 명망가들의 ‘몸조심’ 의도일 것이다. '반자본주의' 전선에 서지 않겠다는 꼼수로도 읽힌다. 그러나 '탈계급'의 선거전술로 파탄이 난 노동자정치세력화를 다시 '탈계급'으로 돌려막을 수는 없다. 자본주의 위기에 맞닥뜨린 이 시기 노동자계급에게 필요한 것은 모호한 ‘진보정당’이 아니라 바로 ‘사회주의정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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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의 직선제는 대의원대회 결정 사항이다
배타적 지지이든 지지 철회이든 야권연대는 변치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