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15일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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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무(無)파업과 무장해제 노린 노사정 야합의 덫
- 박원순 표 노사민정협의회의 본질 -
박남일  ㅣ  2012년6월15일

박원순 표 노사협조주의에 시동이 걸렸다. 지난 4월 서울시는 민주노총 서울본부 측에 ‘서울시 노사민정협의회 운영활성화 계획’을 전달했다. 기존 노사민정협의회의 형식적인 운영과 구조, 그리고 민주노총의 참여 거부 등의 한계를 인정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구조적 변화를 시도했다는 게 서울시의 입장이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 서울본부는, 노사민정협의회가 정부 산하의 노사정위원회와는 성격이 다르다며 다소 고무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조건부 제한적 참여’라는 모호한 결정을 내렸다. 이번 박원순 표 노사민정협의회를 정부 산하 노사정위원회나 이전의 오세훈 표 노사민정협의회와 다른 것으로 보는 분위기다.

하지만 단적으로 말하자면 박원순 표 노사민정협의회 역시 지난 오세훈 시절에 유명무실하게 운영되었던 노사민정협의회의 틀은 유지한 채 덩치만 조금 키운 것이다. 이 또한 이미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어온 자본가 계급의 기만적인 노사협조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역대 자본 권력은 자본주의의 공황에 따른 경제 위기에 몰렸을 때마다 노사협조주의, 즉 노사 야합 전략을 적극적으로 구사해왔다.


자본의 덫에 걸린 1998년


그 표본으로 김대중 정권 때 출범한 ‘노사정위원회’를 들 수 있다. IMF구제금융 사태로 심각한 경제 위기에 빠져 있던 1998년 1월. 김대중 정권은 노동자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기 위해 제 1기 노사정위원회를 대통령 자문기구로 발족시켰다. 여기에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구조개혁과 이에 따르는 고통분담 방안’이라는 명분을 달고 노사야합이 시도되었다.

당시 민주노총 2기 집행부는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투쟁 없이 노동자의 요구를 관철할 수 있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적 협약’에 합의해주었다. 노동자, 사용자, 정부가 고통을 서로 분담하자며 10가지 주제를 정하고 그에 따른 90가지 세부 과제 추진에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 협약으로 자본가계급은 정리해고제, 파견노동 합법화 등의 선물을 얻었다. 편리하게 부려먹다가 마구 해고할 수 있는, 저 악명 높은 노사관계 로드맵의 법적 근거를 얻게 된다. 그것은 날로 악화되는 비참한 노동 시대를 알리는 서막이었다.

한편, 노동자 측에서는 공무원노조 합법화, 구조조정 사전 합의, 공공요금 감시와 견제, 기업경영 부실에 대한 경영진 책임 강화, 사회보장제도 확충, 사교육비 절감 등을 약속 받았다. 하지만 어느 것도 지켜지지 않았다. 노사정위원회의 드문 성과로 알려진 ‘공무원노조 합법화’는 그해 2기 노사정위원회가 열릴 때까지도 이행되지 않았다. 공무원 노동자들은 그 후 스스로 지루한 투쟁을 벌인 뒤에야 겨우 합법화를 이루었다. 그나마 단결권도 없는 반쪽짜리 합법화였다.

노사정위원회는 결국 남한 노동자계급의 무장해제를 불러왔다. 자본가계급의 완벽한 승리였다. 물론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노사정위원회의 합의안은 부결되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지도부가 이미 합의한 내용을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뒤늦게 쓰라린 마음으로 땅을 쳤다. 그리고 1999년 2월. 민주노총 대의원 대회에서는 노사정위원회를 탈퇴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고, 그 후 노동자들은 자본가들이 저지른 경제위기의 책임을 온전히 뒤집어써야 했다.


노동자 팔아먹은 양대 노총 관료들


노무현 정권 시절인 2006년에 노사정대표자회의가 다시 열렸다. 그리고 9월 11일, 한국노총과 자본, 그리고 정부가 야합한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는 필수공익사업자 대체근무 허용, 부당해고 사용자에 대한 형사상 처벌 조항 삭제, 경영상 해고의 사전 통보 기간 단축 등을 골자로 하는 노사관계 로드맵에 서명했다.

노동 쪽 대표로 참가한 한국노총은 복수노조 허용과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금지 시행을 3년간 유예하는 것 말고는 모두 정부 요구대로 퍼주었다. 그리고 12월 국회에서는 개악된 노동 관계법이 통과되었다. 이로 말미암아 비정규직 양산에 가속도가 붙게 되었다. 더불어 노동조합의 파업권도 크게 침해를 받게 되었다. 노총 관료들이 정부와 자본에 두 번째 노동관계법 개악이라는 승리를 안겨준 것이었다.

이처럼 한국노총이 노동자들의 집단적 권리를 팔아먹는 노사관계 로드맵에 들러리를 서는 동안 민주노총은 노사정대표자회의 참가여부를 놓고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결국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하지 않았다. 엄밀하게 말하면 정부와 자본가계급의 적극적인 초대를 받지도 못한 것이다. 자본가계급은 이미 한국노총만으로도 노사정위원회를 운영하는 데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민주노총이 당시의 노사야합 국면에서 면죄부를 받을 수는 없다. 오히려 근본적 책임은 노동자 투쟁의 주체인 민주노총에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노사정대표자 회의가 열린 6월말부터 9월초 사이에 민주노총은 노사관계 로드맵을 분쇄하기 위한 대정부 투쟁을 벌이지 못했다. 노사야합을 주도한 자본가계급과 노무현 정부에 대한 정면 투쟁을 벌여야 할 마당에 모든 투쟁을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다.

심지어 민주노총은 그해 8월에 경찰 폭력으로 숨진 하중근 열사의 죽음에도 변변하게 대처하지 못했다. 당시 민주노총 위원장은 검은 추모 리본을 단 채 노사정회의 주변을 기웃거릴 뿐이었다. 그해 9월 11일의 노사정 야합이 충분히 예상되었음에도 민주노총은 강력한 투쟁을 조직하기는커녕 정치적 흥정에만 매달렸다. 그 결과 노동자들은 투쟁의 손발이 꽁꽁 묶인 채, 자본의 횡포에 좌절해야 했다. 그 점에서 당시 민주노총 집행부는 노사야합에 대한 역사적 책임을 뼈저리게 느껴야 할 것이다.


노사협조주의는 노동자계급의 무장해제를 뜻한다


이른바 ‘기업 프렌들리’를 내세우고 등장한 이명박 정부는 현장의 무파업 방침을 국정과제로 추진했다. 그에 따라 2009년 초까지 서울시를 비롯한 16개 광역자치단체에 ‘지역노사민정협의회’를 출범시켰다. 하지만 노동자계급의 무장해제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냄으로써 비웃음거리로 전락했다.

그러던 2011년 7월 28일, 오세훈이 시장으로 있던 서울시는 ‘서울특별시 노사민정협의회 설치 및 운영조례’를 제정, 시행하기 시작했다. 기구 운영 목적으로는 △지역 일자리 창출 및 인적자원 개발 등 노동시장 활성화 △노사관계 안정 △지역경제 발전 △기타 지역 노사민정 협력증진 등을 내세웠다. 보다시피 기구 운영의 목적 가운데 노동자계급의 지위를 인정하는 내용은 한 대목도 없다. 따라서 민주노총의 불참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런데 박원순으로 시장이 바뀌면서 상황이 혼란스러워졌다. 서울시는 ‘노사민정협의회 운영활성화 계획’을 발표하고 기구의 기능 확대와 재구성을 꾀하고 나섰다. 더불어 민주노총 서울본부에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서울본부는 그 손을 잡았다. 그렇다면 관연 박원순 표 노사민정협의회는 오세훈 시절의 그것과 다를까.

박원순과 오세훈은 다르다. 하지만 유독 노동이라는 의제 앞에서 그 둘은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 노무현과 이명박의 노동정책이 차이나지 않았듯이 말이다. 사실 이번 서울시의 지역노사민정협의회는 오세훈 표 협의회의 틀과 기능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여전히 노동계를 ‘들러리’ 세워 자본의 의도대로 노사관계 로드맵을 끌고 가려는 것이다.

여기에 민주노총 서울본부는 ‘노정 협의 통로가 막혀있는 현재 상황에서 노사민정협의회가 일정부분 소통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순진한 기대를 하며 조건부 제한적 참여를 결정한 상황이다. 하지만 노동자계급이 하나를 요구하면 저들은 둘을 요구한다. 한쪽은 칼자루를, 다른 한쪽은 칼날을 잡고서 그것을 소통이라 여기는 건 억지다.

‘노사협조’, 또는 ‘상생’이라는 이름으로 횡행하는 노사야합의 본질은 노동자들의 무장해제에 있다. 오세훈에서 박원순으로 상표명이 달라졌다고 해서 그 본질이 달라지지 않는다. 그들은 ‘노사관계 안정’이라는 이데올로기를 퍼뜨리며 무파업과 노동자계급의 무장해제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파업이야말로 사회적 생산의 담지자인 노동자계급의 존재가치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수단이다. 더불어 그것은 자본가계급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기도 하다. 평소에 사납게 짖어대던 자본권력도 파업이라는 신성한 무기 앞에 서면 비로소 꼬리를 내리게 마련이다. 자본 권력이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파업의 무력화를 시도하는 까닭이다. 그럼에도 민주노총 서울본부는 이 소중한 무기를 또 다시 자본가들에게 갖다 바치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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