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 30일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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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정치세력화 삼켜버린 ‘야권연대’
박남일  ㅣ  2012년4월30일


이른바 ‘민주대연합’의 기치 아래 노란색과 보라색이 손잡고 빨간색에 맞섰다. 색깔이 뒤죽박죽된 선거였다. 그리고 죽은 핏빛을 뒤집어쓰고 정체성을 위장한 새누리당의 과반 의석 확보로 선거는 끝막음되었다. 당초 총선에서 초토화될 것으로 믿고 있던 여당은 야권 지지자와 항간의 예측을 비웃듯 극적으로 회생했다. 그로써 떠들썩하던 야권연대의 실험은 실패로 끝났고, 야권 지지자들은 충격에 쌓였다.

그런데도 정작 야권연대의 중심을 자처하는 민주통합당의 사령탑은 희희낙락이다. 예컨대 민주통합당 최고위원회의 4.11 총선 평가에서 문성근 당대표대행은 “정당득표에서 민주진보진영 득표수가 앞섰다, 이것이 희망”이라고 말했다. 진보통합당에서도 늘어난 의석을 은근히 즐기는 분위기다. 지지자들은 절망하고 있는데 정작 선거판의 야권 사령관은 느긋한 얼굴로 희망을 운운한다. 도대체 이 괴상한 풍경이 벌어진 까닭은 무엇일까.

19대 총선 결과는 자본가들끼리의 황금분할?

사실 이번 총선에서 새누리당 의석 수는 162석에서 152석으로 줄었다. 특히 정치 중심지인 서울과 수도권에서 새누리당은 112석 중 43석을 얻는 데 그쳤다. 초라한 성적이다. 반면 야권연대는 각각 80석에서 127석으로, 7석에서 13석으로 의석이 늘어났다. 또 정당투표에서도 야권연대가 새누리당을 약간 앞선 게 사실이다. 이를 두고 야권연대의 두 세력은 자만에 빠져 있는 모양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과반수 의석을 차지한 새누리당의 명백한 승리다. 선거 전문가들마저 100석도 건지기 어려울 것이라던 예상치를 150% 초과했으니 이만한 승리도 없다.

반면 과반을 확보하여 한미FTA 체결과 같은 중요 사안을 뒤집겠다던 야권연대는 기대치를 훨씬 밑도는 의석에 그쳤다. 비록 서울과 수도권에서는 선전했다고 하지만, 민주통합당은 충청도와 강원도에서, 그리고 통합진보당은 울산과 창원 등 노동자 밀집 지역에서 완패를 당했다. 노동자들의 호된 심판을 받은 셈이다.

그럼에도 야권연대 측에서는 이에 대한 통렬한 자기비판이 없다. 오히려 이들은 의석수 과반에 못 미친 결과에 만족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야권 140석과 새누리당 152석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황금분할”이라던 민주통합당 박지원 최고위원의 발언은 그래서 음험하다. 한미FTA의 ‘재재협상’이나 ‘폐지’와 같은 골치 아픈 공약을 얼버무릴 핑계를 얻게 되어 다행으로 여기는 뉘앙스마저 풍기기 때문이다.

더불어 그것은 300석의 의회 권력을 골치 아픈 노동자 의원에 한 자리도 내주지 않고, 노골적인 자본가정당이나 친자본적 정당 세력이 적당한 지분율로 독점한 데 대한 안도감으로 들리기도 한다.

어쩌면 야권의 수뇌부는 처음부터 과반 의석을 기대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노동자계급과 기층민중의 절실한 문제를 풀어나갈 동기나 의지도 없는 그들로서는 야권의 과반의석보다는 개개인의 당선이 더 중요한 일일 것이다. 그 때문에 무소속도 불사하고 선거전에 혈안이 되지 않던가.

민주대연합과 야권연대는 노동자계급에 대한 기만

지난 20여 년간 기회주의 세력들이 외쳐 온 민주대연합론은 줄곧 노동자계급의 능동적 정치세력화 운동을 삼켜버린 블랙홀이었다. 그런 양상은 곳곳의 현장에서 움터 오르는 계급투쟁의 전열을 흩트린 뒤, 고작 몇몇 활동가들만의 계급상승으로  귀결되었다. 

이들 기회주의 세력은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에도 줄곧 해묵은 민주대연합론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며, 대중의 반MB 정서를 날것으로 이용하는, 이른바 ‘이명박 심판’을 주문했다. 그리고 몇몇 지방 선거에서는 그런 정서가 결집되어 야당에 승리를 안겨주기도 했다. 거기에 맛들인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은 이번 총선에서 아예 야권연대라는 정치 쇼를 벌이며 ‘닥치고 MB 심판’을 외쳤다.

하지만 그들의 저급한 정치선전술이 그다지 먹혀들지는 않았다. 차기 대선을 노리는 박근혜가 MB와 차별화 전략을 펼치는 순간, 야권연대의 MB심판론은 허공에 울리는 메아리가 되어버린 것이다. 게다가 이명박이 박근혜의 그림자 뒤로 숨어버리자 야권연대는 표적을 잃고 허둥댔다. 더불어 세계대공황의 칼바람을 맞으며 스스로 각성되어 온 노동자계급과 민중에게도 그 구호는 식상한 소음으로만 들렸다.

그들이 자본가의 편이 아니라면, 그래서 진정으로 노동자 민중의 편에 섰다면, 세계대공황에 빠진 자본주의의 틀을 넘어서는 고민을 했을 것이다. 따라서 정치공학적인 ‘MB심판’이 아니라 인간해방을 위한 ‘자본주의 심판’을 외쳤을 것이다. 선거 기간 직전까지 줄줄이 이어진 쌍용차 해고노동자의 죽음을 보며 공공연하게 사회적 타살을 말했을 것이다. 그것이 최소한의 상식이기 때문이다.

또 그들은 선거용 ‘민생'의 바탕이 제반 노동 문제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터놓고 말했어야 했다. 쌍용차, 재능교육, KEC, 유성기업, 코오롱 등 현장 노동자들이 정리해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해 시청광장을 점거하는 현실을, 그밖에도 수많은 사업장이 생존을 건 계급투쟁의 전선으로 변해 가는 현실을 직시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노동자계급과 선을 그었다. 뿐만 아니라 부패와 무능으로 조합원을 배신한 몇몇 노조 관료를 총선 후보로 공천하며 새누리당 흉내를 내다가 유권자 대중의 냉소를 자아냈다. 민주와 진보라는 허울을 쓰고 그간 요란하게 떠들던 야권연대 세력이 실은 스스로 자본가계급에 편입되기를 꿈꾸는 기회주의 세력임을 명백히 보여준 것이다. 물론 그것은 현장에서 절규하는 노동자계급의 목소리를 외면한 채 민주노동당의 분열과 진보통합당 창당을 강행해온 일련의 과정에서 이미 예고된 일이었다.

잡초를 뽑아내고 새로운 노동자정치세력화의 씨앗을!

이번 총선 결과를 놓고 온갖 평가가 떠돌고 있다. 야권연대가 진 게 지역주의 때문이라는 사람도 있고, 젊은 층의 투표 이탈로 야권이 패했다는 평가도 있다. 모두 피상적인 인식이다. 이에 비하면, 야권연대 세력이 좀 더 혁신적이고 참신한 정책을 내놓았어야 한다는 나름대로 진지한 평가도 있다. 하지만 그것도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야권연대의 중심축인 민주통합당은 물론이고, 통합진보당 내 국민참여당 세력은 지난 정권의 담당자들이었다. 그들은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 한미FTA나 강정해군기지와 같은 지금의 주요 문제들을 입안한 세력이었다. 이처럼 자본가계급의 이해를 충실히 따르며 권력을 향유한 이들에게서 노동자계급의 요구에 합당한 정책이 나오기는 애초부터 글러먹은 일이었다. 

더구나 야권연대에 매달린 이른바 ‘진보’ 정당 세력은 자본가정당과 야합하기 위해 자신의 존재 기반을 자본가계급 쪽으로 확실히 옮겨갔다. 그것은 통합진보당과 민주통합당이 내놓은 <국민승리를 위한 범야권 공동정책합의문>에 잘 드러난다. 또 <대한민국을 변화시킬 20개 약속>에서도 그들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 불법파견 금지 따위의 자본가정당 정책을 그대로 따랐다.

어쨌든 ‘민주대연합’이라는 허구 아래 시도된 선거용 야권연대는 실패했다. 더불어 그 과정에서 노동자정치세력화의 대열은 철저하게 무너졌다. 한마디로 이번 선거는 범 자본가정당에 승리를, 노동자계급과 민중에 패배를 안겼다. 이래저래 노동자정치세력화 운동은 다시 위기에 빠지게 되었다. 하지만 뒤집어보면, 노동자계급은 늘 존재 방식 자체가 위기였다. 그런 위기를 견디며 지배 자본가와 직접 투쟁한 결과 세상은 조금씩 변해왔다. 

더 이상은 기회주의자들의 민주대연합 따위 슬로건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노동자계급의 주위에서 양분을 빨아먹으며 자라는 잡초임이 분명해졌다. 이제는 무성한 잡초를 뽑아내고 새로운 씨앗을 뿌려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자본주의 체제 이후를 대비한 노동자정치세력화에 나설 때다. 노동자계급이 기회주의 세력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능동적 주체가 되어 사회주의정당 건설에 굳건하게 나서야 할 때는, 바로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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